맥락 없는 울음

장기하와 얼굴들의 < 그 때 그 노래>를 들으며

by 희다

벤치의 고양이 옆에 앉아 문득 누군가가 내가 우는 것을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눈물이 많은 것도 자랑인 듯이 남들이 봐주길 원했던 것도 같은데, 지금은 쓱쓱 닦기도 전에 공기에 날아가도록 멍청이처럼 끔뻑이지도 않고 우두커니 있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누가 울라고 떠다 민 것도 아닌데 갑자기 무맥락으로 눈에 힘을 풀어버리는 것이 스스로도 웃길 만큼 납득이 되지 않아서일지도 모릅니다.


우는 것도 맥락을 따지는 어른이 될 것 같아 씁쓸합니다. 언젠가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다가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하얀 화면에 울컥 울음을 놓았을 때, 카페 한복판에서 사연 있는 여자가 되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커피가 짜게 느껴질 때가 돼서야 비로소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아이도 울 만한 상황이 되어야만 우는데, 다 큰 내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하고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다시 돌아보면 아무런 이유 없는 울음이 아니었던 것도 같습니다. 울만한 상황에만 울어버리는 아이가 그 상황을 애써 넘겨버리고, 누르고 짓누르고 덧누르고 하는 그런 울음을 짓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쁜 물감으로 서너번 덧칠했을 뿐인데 벌써 다 덮여버렸구나 하며 웃었는데, 알고 보니 오래된 예배당 천장을 죄다 메꿔야 하는 페인트장이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렇지. 너무 빨리 잊어버렸다 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지. 하며 고양이 옆에서 눈물 한 방울 글썽이고야 말았을 때, 오늘은 그래도 조금 흐르게 두다가 쓱쓱 닦아버렸습니다. 상황을 따져가며 우는 것에 죄책감 가지지 맙시다. 그것은 나의 안보다 바깥 돌아가는 세상에 눈을 더 두고 있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니까요. 눈은 안으로, 눈물은 밖으로 흘리는 어른이 되고 싶어진 밤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A1Przdo0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