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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여, 인풋을 쌓아라! 기록하라!

아 근데 그렇게 말고… - 진현지

 정확히 7개월 전, 필자는 지독한 고갈의 끝을 경험하고 있었다. 서울대학교 디자인과 실기고사를 딱 하루 앞두고 있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그 말은 즉 실기고사를 위한 입시미술학원 정시특강의 절정을 달리던 중이었다는 뜻이다.

여느 입시생들과 다름 없이 이때 나는 하루에 12시간을 그림을 그리는 데 썼다. 번아웃이야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달고 사는 것이니 정시특강이라고 해서 특별히 힘들 건 없지 않을까 했던 건 내 착각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 자체는 힘들지 않았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진부해지는 내 그림을 보기가 싫었다. 내가 그리는 그림은 왜 늘 뻔하게 느껴질까? 내가 그린 그림을 보는 건 왜 이렇게도 지치는 일일까? 열아홉살의 나는 이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꽤나 명료했다. 내가 산출하는 아웃풋(output) 대비 투입하는 인풋(input)의 양이 현저히 적다는 것. 일주일의 반을 그림을 그리는 데 태우면서 전시 감상이나 독서는 고사하고 음악이나 영상 따위, 심지어는 일상의 짧은 장면들을 즐길 여유조차 없었던 것이다. 당연히 창작의 재료는 말라갔다. 부족한 재료로 매일 서너 장의 그림을 그리니 이미 사용한 재료를 또 쓰고 또 쓰기를 반복했다. 그러니 창작자인 내가 스스로의 창작물을 보며 진부하다 느끼고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다

-지치지 않고 창작하기 위해 인풋을 쌓아야 한다


맛있는 걸 먹어봐야 맛있는 걸 만들고 싶어지는 법


 영감과 창작이라는 것은 대개 복잡하고, 쉽사리 얻거나 이뤄낼 수 없는 어려운 것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그 메커니즘은 간단하다. 인풋을 쌓아야 하는 이유는 결국 창작하기 위함이다. 우리 창작자들은 여기서 우리가 왜 창작이라는 걸 하기 시작했는지 그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누군가는 큰 뜻 없이 창작과 디자인이라는 진로를 택했을지 모른다. 그것 틀린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대부분의 미술학도들은 소위 말하는 ‘그림쟁이’였던 과거를 거쳐 창작과 미술, 디자인의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림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지만 창작에 관심을 갖게 해준, 창작을 하고 싶다고 느끼게 해준, 그래서 결국 창작이라는 길을 선택하게 해준 어떤 감상 경험이 있었을 거란 이야기다. 우리는 우리가 이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건 아니건, ‘어딘가 느낌 좋은 것’을 지속적으로 경험해왔고 그것이 주는 그 ‘좋은 느낌’을 찾으려 창작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게 그림이든 영상이든 책이든 물건이든, 느꼈을 때 설명하기 어려운 그 좋은 느낌은 우리 안에서 ‘왜 좋을까?’하는 의문을 낳았고 창작은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의 일환이었다. 결국 좋은 느낌을 주는 그 좋은 것, 그 인풋이 우리를 창작하도록, 그러니까 아웃풋을 내도록 하는 것이다.


재료가 없다면 요리할 수 없는 법


 창작에는 내용이 있고 형식이 있다. 어떤 종류의 창작을 하느냐에 따라 어떤 내용을 담을지 또 어떤 형식을 택할지는 달라질 수 있고 거시적으로는 둘 중 어떤 것을 더 중시할지까지 달라질 수 있다. 디자인이라는 창작 활동은 다른 창작 활동에 비해 내용과 형식이 분명한 경향이 있다. 어찌 되었든 내 디자인을 세상에 던져야 하는 이유, 정확히는 내 디자인이 세상에 태어난 상황 맥락이 있어야 하고, 내가 던진 디자인을 받고 열어 보는 사용자의 존재를 항상 전제해야 한다.

디자이너는 디자인이 태어난 그 맥락에 따라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어떤 매체로 이야기 할 것인가?‘와 같은 기본적인 것들부터 심지어 앞서 내 디자인을 세상에 던진다고 했지만 실은 ’어떻게 내 디자인을 제시할 것인가? 던질 것인가. 공손히 손에 놓아드릴 것인가. 아니면 앞구르기를 한 다음 점프해서 두 발로 착지해 사용자 앞에 놓을 것인가?‘ 같은 것들까지 상상하고 세심하게 질문하며 답을 내려야 한다. 이렇게 많은 것을 결정해야 하는 디자인 작업에서 삶의 경험과 통찰이라는 인풋 없이는 불가능하다. 먼저 경험이 있어야 무언가를 창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디자이너여, 인풋을 쌓아라! 근데 그렇게 말고…

-무한 핀터레스트 스크롤링을 멈춰라


 아마 대부분의 디자인학도들은 핀터레스트가 되었든, 전시가 되었든 레퍼런스를 보는 데 이미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남들 다 많이 하는 것 말고, 정말 질 좋은 아웃풋을 내기 위해서, 그리고 창작자가, 디자이너가 이렇게나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나다운’ 아웃풋을 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핵심은 인풋에 한계를 두지 않는 것, 그리고 언어화된 형태로 인풋을 쌓는 것에 있다.


기록해야 기억한다, 기억해야 반응한다

  필자는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의 기록 중독증을 앓고 있다… 흔히 끊임없이 무언가를 읽는 이를 보고 활자 중독이라고 하는데,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쓰는 종류의 활자 중독을 앓고 있다. 아래는 내가 올해 아이패드 굿노트에 남긴 기록 중 일부를 모아 본 것인데, 매일매일의 일기부터 기말 과제로 낼 보고서를 쓰며 남겼던 메모, 1학기 과제전을 위한 개인 작품을 그릴 때 고민했던 것들, 동아리 전시를 준비하며 쓴 작업일지, 읽은 책을 필사하고 생각을 덧붙인 독서일지, 앨범을 감상하고 적은 기록 등 정말 잡다한 것들을 기록했다. 


‘인풋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웬 기록?’ 싶을 순 있겠지만, 내가 인풋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이 기록, 구체적으로는 잡다한 것들에 대해 언어화된 기록을 남긴 덕분이다. 


인풋에 한계를 둬서는 안된다. 내가 디자인을 하거나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글을 쓸 때 내가 지금껏 써온 기록 중에 어떤 종류의 기록을 가장 많이 참고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멋진 작품이나 전시를 감상하고 남긴 기록이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을 적은 일기라고 답하겠다. 내가 감각하는 모든 순간이 내게 나만의 인풋이 될 수 있다. 오히려 작품들을 통해 느낀 공감보다 일상에서 느낀 날 것의 감정들이 때때론 더 위트있고 센스있는 창작의 재료가 될 수 있다. 


또 기록하는 행위는 우리로 하여금 내가 기록한 대상과 내가 기록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만든다. 인풋을 보고 기록을 하는 일은 우리가 기록한 인풋과 내가 그 인풋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기억을 가진 우리는 비슷한 인풋에 반응할 수 있게 된다.

최근 김이나 작사가가 작곡가 정재형의 유튜브 채널에 게스트로 나와 한 말에 많은 공감이 갔다.

제가 되게 왜 덕질 피가 있잖아요. 되게 하드하게 뭘 좋아하는 스타일이잖아요. 좀 집요하고. 근데 그러다 보니까 뭐가 좋은 게 있으면 호들갑스럽게 그 디테일을 탐닉을 해요. ‘저게 예술이다. 저게 예술이다.’ 하는 부분들 (…) 저는 어떤 작사가나 어떤 작곡가의 음악이나 가사가 왜 좋은지 혼자 막 써놓고 혼자만의 아카이빙이 있었거든요.

 어떤 것을 단순히 감상하고, 혹은 경험하고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나의 언어를 통한 내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계속해서 인풋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정확히는 인풋 그 자체가 아니라 인풋에 반응하는 나의 눈을 길러야 하고 그것들을 해석하는 나의 소양을 쌓아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보기 좋게 정리된 메모나 일기가 아니라 보통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여길 사소한 디테일들을 예리하게 알아채는 습관이다. 기록물은 따라올 뿐, 사실 기록해야 하는 이유는 기록하지 않으면 흘려보냈을 디테일을 알아채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록은 삶을 이루는 자질구레한 경험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도구다. 


 언어화된 기록을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습관으로 커먼플레이스 북(commonplace book)을 만드는 걸 추천한다. 커먼플레이스 북은 미국의 작가이자 마케터인 라이언 홀리데이(Ryan Holiday)가 사용하는 독서 방법이기도 한데, 쉽게 말하면 일상 속 떠오른 아이디어, 들은 것, 읽은 것, 겪은 일화들, 관찰한 것들 따위를 수집하고 간단히 내 생각이나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글로 덧붙이는 것이다. 일기보다 형식적인 제한이 덜하고 파편화된 인상이나 기록들을 남기기에 부담스럽지 않아 인풋을 수집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추천하고 싶다. 실물 노트에 일상의 인풋을 수집해도 좋고, 이미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 메모 앱이나 일기 앱을 이용해 기록해도 좋다. 라이언 홀리데이의 웹사이트에 커먼플레이스 북에 기록하는 자세한 방법이나 커먼플레이스 북의 효과에 대한 글을 읽어볼 수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방문해 보는 것을 권해본다.


언어화해야 소통한다, 소통해야 공감한다


 창작자는 자신의 창작을 감상자에게, 대중들에게 이해시켜야 하는가? 디자이너는 자신의 창작을 이해시켜야 한다. 이렇다 할 형체가 없다고 느꼈던 것들을 알맞은 언어로 잡아 표현할 때 우리는 서로 일정 수준으로 공유된 형체를 느끼고 공명한다.

디자이너가 언어를 잘 다룰 줄 안다는 것은 굉장한 무기다. 물론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되겠지만 디자인에 붙는 명료한 설명과 의도에 맞게 적절한 언어를 사용해 자신의 디자인을 세상에 전달하는 일은 디자인만큼 중요한다. 또 디자인은 디자이너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하나의 디자인을 완성도 있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또 도움이 필요하다. 디자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커뮤니케이션이며 디자인 프로세스는 커뮤니케이션을 필요로 한다. 디자이너인 나와 내 디자인을 완성하기 위해 도움을 주는 협업자들, 내 디자인을 경험할 사용자들 사이에 의도치 않은 모호함이 내 디자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의도한 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내 계획을 알맞게 표현해야 한다.

나와 타자 간의 소통뿐만이 아니다. 기록된 아이디어와 스케치를 다시 보는 일은 ‘영감이 떠오른 시점의 나’와 이를 미래에 ‘다시 들여다 보는 나’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경험하는 일이다. 차곡차곡 쌓은 인풋을 똑똑하게 활용하기 위해선 내가 느낀 무형의 인상을 알맞은 언어로 잡아 기록하는 일이 필요하다. 언어는 스스로를 이해하게 하고 디자이너와 협업자, 사용자가 서로를 이해하게 한다. 그러니 만약 ‘느낌 좋은’ 인풋을 핀터레스트나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해 저장하고 캡쳐하는 식의 레퍼런스 수집만 하고 있다면, 그만 두는 게 좋을 거다. 한 문장 혹은 몇 개의 단어로라도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 덧붙여라.


학습해야 나만의 포뮬러를 만들 수 있다


 창작자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미국의 문학 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저서 <영향에 대한 불안>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느 시인의 작품을 너무 사랑하지만 그 시인에게 너무 강한 영향을 받아 그를 모방하려는 창작은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그 시인의 아류작을 남기는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창작자를 베끼는 창작은 좋은 창작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 영향에 대한 불안에 따라 우리는 결국 ‘나’의 것을 이야기 해야 하고, 끊임없이 나를 찾아 내가 사랑하는 그 창작자의 영향에 저항해야 한다.

디자이너는 ‘무엇을 디자인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경험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결국 무언가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사용자에게 어떤 경험을 전달하기 위함이고, 디자이너는 경험의 시퀀스를 설계해야 한다. 즉, 포뮬러를 제작해야 한다.

타인의 창작 포뮬러를 그대로 모방하는 방식으로는 좋은 창작을 남길 수 없다. 윤리적인 이유를 둘째치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그 작품을 나만 사랑한다고 단언할 순 없다. 내가 만약 그런 창작을 남긴다면 누군가는 내 창작을 아류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단순히 느낌을 수집하는 것 이상으로 인풋을 잘게 뜯어 분석하고 꼭꼭 씹어 소화하는 집요함이 필요하다. 좋은 느낌을 이루는 포뮬러를 그대로 갖다 쓰는 게 아니라 그 포뮬러를 이루는 요소들을 찾고 그 요소들 간의 시너지를 학습해야 한다. 그렇게 나만의 포뮬러를 만들어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단색화의 거장이자 미술교육자였던 윤형근 화백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자주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우선 사람이 되어라.”

필자는 그의 이런 가르침이 서둘러 창작을 할 게 아니라 먼저 자신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고 생각한다. 창작자와 디자이너가 이렇게나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더욱 인풋의 중요성을 알아야 한다. 인풋은 창작의 재료를 넘어 나를 알게 해주는 힌트고, 기록은 나를 알게 해주는 도구다. 우선 사람이 되자. 우선 삶을 살자. 내가 어떤 것에 반응하는지, 어떤 걸 좋다고 여기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인간인지를 알자. 꾸준히 쌓은 인풋은 켜켜이 쌓인 취향에 깊이를 만들어주고, 그 깊이는 이렇게 많은 디자인 중에 굳이 나의 디자인을 봐야할 이유가 된다.



서울대학교 디자인 연합(SNUSDY) 인스타그램 | @snu_sdy.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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