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구집
비가 억수같이 매일 쏟아지는 꿉꿉한 장마철이면 동생들과 나는 영락없이 집에만 꼼짝없이 있어야 했다. 비닐로 천막을 만들어서 문방구 장사를 하고 있던 우리 집은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만 있었으니까 집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억지스럽긴 하다. 그냥 문방구집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10평 남짓한 공간에 사방으로 문구류들이 진열되어 있고 그 가운데 공간에서 우리 다섯 식구가 살아야 했다.
문방구집은 여름이 제일 고욕이다.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격이니 낮 동안 뜨거운 열을 머금은 문방구집은 밤에도 숨통이 막힌다. 이러니 며칠 동안 삼 남매가 밖을 못 나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지루한 시간인가. 다행히 그나마 내가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이니 두 살, 네 살 터울인 동생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 모르는 것 같다. 그냥 못 나가서 괴로운 거다.
문방구집이 영 불편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남들은 창밖으로 즐기는 비를 우리는 발 앞에서 실물로 물이 튀는 4D로 비 감성을 즐겼다. 비닐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입체적인 소리와 영화관에서만 들을 법한 짱짱한 번개 스테레오, 빗방울들이 만들어낸 바닥구멍들을 보면 그나마 지루한 이 시간들이 잠시 잊어진다.
빨간 빈대떡
이런 날에는 어김없이 엄마가 먹음직스러운 빨간 빈대떡을 담아 오신다. 항상 그랬기 때문에 이상하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이게 어디서 온 건지 궁금해졌다. 문방구집에는 요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데 도대체 이 빈대떡이 어디서 온 거지? 그리고 비 오는 날에만 빨간 빈대떡을 가지고 오셨다. 빈대떡이 빨간 것도 다시 생각하니 신기하다.
식구들이 맛있게 먹고 있는 내내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봐도 요리한 흔적이 없다.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니 순식간에 내 궁금증은 태산이 되었다.
빈대떡에 젓가락도 안 간다.
도저히 못 참고 물어봤다.
“엄마, 이 빨간색 빈대떡이 어디서 온 거야?”
엄마는 건조하게 되받아치신다.
“비 오는 날에는 하늘에서 빨간 빈대떡이 떨어져. 그걸 담아 온 거야”
나는 엄마의 간결하고 명확한 답변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내 관찰이 정확히 맞았다는 희열과 빈대떡의 출처까지 알게 되어 꽉 막힌 답답함이 해소됐다.
다시 젓가락을 드는 순간 이성적인 뇌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차가운 비가 내리는데 어떻게 따끈한 빈대떡이 만들어져서 떨어지지? ’
어린 나이임에도 눈치껏 알아챘다.
‘내가 너무 순진하게 엄마말을 믿었구나 ‘
이번에는 엄마 말이 거짓말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한번 물어봤다.
“정말이야? 하늘에서 음식이 떨어진다는 게?”
그때 바로 아빠의 능수능란한 연기력으로 나의 이성적 의심은 한순간에 불식된다.
“신기하지? 그래서 아빠도 비 오는 날이 신기해. 하늘에서 빨간 빈대떡이 떨어지잖아.”
장 떡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내가 유치원 때다. 문방구집에서 나온 이후 중학생이 될 때까지도 빨간 빈대떡 사건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학교에서 요리실습도 했었고, 과학시간에 비의 순환도 배웠는데. 심지어 엄마가 빈대떡 만드는 걸 보면서도 몰랐다.
이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미스터리하다.
이 이야기의 진실은 우연한 날 아무도 모르게 나만의 에피소드로 일단락되었다.
중학생 때 학교 끝나고 집에 들어오는데 빨간 빈대떡 냄새가 났었다.
‘비 오는 날도 아닌데 왜 이 냄새가 나지?’ 냄새를 따라가다 충격적인 장면을 마주하게 됐다.
엄마가 빨간 반죽을 프라이팬에 한 장씩 부치고 있는데 그 빨간 빈대떡이었다. 순간 모든 것이 정리가 됐다. 엄마한테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중학생인 내가 말하기에는 너무 유치하고 창피한 말이었다.
엄마에 대한 배신감을 누르고 조용히 동생한테 물어봤다.
“너 빨간 빈대떡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거 거짓말인 줄 알았어?”
동생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나만 믿고 있었구나’
더 말하다가는 우리 집에서 바보로 낙인찍힐 거 같아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엄마가 빨간 빈대떡을 들고 오면서 말씀하신다.
“아빠 장떡 드시러 오라고 해라”
나는 그 빨간 빈대떡 이름이 장떡이라는 것도 7년 만에 처음 알았다.
어차피 나의 지난 과거는 아무도 모를 테니 태연한 척 맛있게 장떡이나 즐기자 했는데 갑자기 왜 빈대떡을 장떡이라고 하는지 쓸데없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엄마 근데 이름이 왜 장떡이야?”
질문이 끝나자마자 옆에서 듣던 동생이 세상에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를 보듯 한마디 한다.
“고추장을 넣었으니까 장떡이지. 근데 언니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거야?”
또 아차 싶었다.
그 빨간색이 고추장이었구나.
비 오는 날 빈대떡을 부치면서 딸내미한테 해 주는 이야기다.
어떻게 하늘에서 빈대떡이 떨어지냐며 듣는 내내 아이가 웃는다. 엄마의 순수했던 어릴 때 이야기를 들으면 동질감이 느껴지는 건지 마냥 신나 한다.
웃는 아이를 보면 나도 웃게 된다.
우리 엄마의 요리를 엄마가 된 내가 우리 아이한테 해 주고 있다. 우리 모녀들의 유전이 된 것이다.
사실 남편과 아이는 장떡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떻게 빈대떡에 고추장을 넣냐며 질색 팔색을 한다.
하얀 빈대떡을 해주고 마지막 남은 반죽에 고추장 한 숟가락을 넣으면 나만 먹는 장떡이 된다.
언제나도 참 먹음직스러운 요리다.
친정에 가면 가끔 엄마가 해 준 장떡을 먹게 된다. 간이 많이 세진걸 보니 엄마의 세월도 새삼 느껴진다. 그래도 맛있게 먹는 딸의 모습을 보면 흐뭇해하시니 나도 모르게 더 많이 먹어진다.
그 뜨거운 문방구집 어느 구석진 곳에서 엄마가 만들어 주셨던 장떡.
산타할아버지의 선물로 동심을 지켜주고 싶었던 부모님들의 마음이 이런 거겠다.
장떡은 나에게 그런 음식이다.
세차게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오늘은 엄마가 해 준 장떡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