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의 노래가 수능시험에 나온다면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 해석 - 근데 거기에 수능 한 스푼을 곁들인.

by 참새 목공소

꽤 예전부터 조용필의 노랫말이 한 편의 '시(詩)'라고 생각해 왔다.


유독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노랫말을 귀 기울여 듣게 되고, 가사를 곱씹어 보게 되고, 시(詩) 이상으로 함축적인 노랫말의 의미를 쫓아 나만의 감상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조용필 8집 엘범 재킷


여차저차 그래서 꼭 한 번 조용필의 노래, 특히 노랫말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실제로 공연을 볼 수 있을 그 언젠가를 기다리며... )




[ 킬리만자로의 표범 / 가사해석 ]

근데 거기에 수능 시험을 한 스푼 곁들인...


조용필의 수많은 명곡들 중에서도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가사에 대해 다뤄볼까 하는데,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


이 곡의 노랫말을 수능시험 언어영역에 나온 문학 - '시'라고 가정하고 이에 대한 풀이처럼 해석해 봤다.

(지금은 국어영역이라고 한다... 세월아)

누가 알아? 2099년 수능시험에 조용필이 나올지


그의 노랫말 자체가 한 편의 시이자 문학이기도 하거니와, 수능시험 언어영역 문학 파트 공부 방식으로 노랫말을 해체해서 분석하는 것이 이 명곡을 이해하고 즐기기에 너무도 좋은 ‘틀’ / ‘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수능 본 지 2N년, 이걸 이런 데에 써먹게 될 줄이야…)



다음의 시를 읽고 문제에 답하시오.

(재미로 한 번 풀어보세요ㅎ)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나면 위대해지고
자고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묻지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살아가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때
그것을 위안해줄 아무 것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건
사랑 때문이라고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고독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사랑만큼 고독해진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지

너는 귀뚜라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귀뚜라미를 사랑한다
너는 라일락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라일락을 사랑한다
너는 밤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밤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나는 사랑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있는
내 청춘에 건배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않는 것
그래야 사랑했다 할 수 있겠지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한 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메마르고 타버린 땅일지라도
한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꺽이지 않는 한 그루 나무되리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문제1) 위 작품 속에서 화자는 어떠한 사람인가?

1️⃣ 등산을 좋아해서 언젠가 킬리만자로에 오르고 싶어 하는 사람

2️⃣ 자연을 사랑하고 동/식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

3️⃣ 어떻게 살 것인지 답을 찾고자 고민하고 있는 사람

4️⃣ 사랑하는 사람과 실연의 아픔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

5️⃣ 21세기를 이끌어 갈 인재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



문제2) 위 작품에서 사용된 여러 상징 중 성격이 다른 하나를 고르시오.

1️⃣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

2️⃣ 빛나는 불꽃

3️⃣ 도시의 그 불빛

4️⃣ 한 가닥 불빛

5️⃣ 한 그루 나무



문제3) 이 시를 제대로 감상한 사람의 반응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 영호 - 역시 세상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이야. 살아남기 위해선 힘을 키워야겠어.

2️⃣ 영숙 -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해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르고야 말겠어.

3️⃣ 정숙 - 누구도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어. 혼자서 싸워 이겨내겠어.

4️⃣ 정호 -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며 그들과 즐겁고 행복하게 살 거야.

5️⃣ 명수 -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외로울지라도 내가 믿는 것을 끝까지 지키며 살겠어.




문제1) 정답 : 3️⃣ 어떻게 살 것인지 답을 찾고자 고민하고 있는 사람

1번 5번은 넌센스 퀴즈 모드 답



[ 화자(話者/말하는 사람) ]


시든 노랫말이든 문학 작품에서는 보통 ‘화자’가 존재한다. 이 화자는 문학 작품 속에서 ‘말하는 사람’으로, 글을 쓴 작가가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거나 혹은 주제를 표현하기 위하여 작품 속에서 만든 ‘가상의 전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화자는 누구일까?


바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 고독하게, 치열하게, 절실하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다.


화자는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면서 세속적 욕망 앞에서 스스로를 성찰하며 ‘어떻게 살 것인지’를 자신에게 고독하게, 또 절실하게 묻고 있다.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 ‘킬리만자로의 표범’에 비유하며 하이에나와 같은 세속적이고 비루한 삶을 거부하고 고독하더라도 숭고한 삶을 살겠다는 화자의 이상을 드러내고 있다.




문제 2) 정답 : 3️⃣도시의 그 불빛



[ 주요 상징 ]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그런데 왜 하필 백두산 표범도 아니고 ‘킬리만자로’의 표범일까?


그리고 왜 아무 표범이 아닌 ‘그(the) 표범’이라고 지칭하고 있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한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A. 헤밍웨이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 B. 양인자(작사가) → 김희갑(작곡가) → 조용필

(작사가와 작곡가는 부부사이다.)



A. 헤밍웨이의 단편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The Snows of Kilimanjaro, 1936)의 첫 구절


"Kilimanjaro is a snow-covered mountain 19,710 feet high, and is said to be the highest mountain in Africa... Close to the western summit there is the dried and frozen carcass of a leopard. No one has explained what the leopard was seeking at that altitude."
"킬리만자로는 해발 19,710피트(5,895m)의 눈 덮인 산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알려져 있다... 서쪽 정상 부근에는 얼어붙어 말라버린 표범의 사체가 있다. 그 표범이 그 높은 곳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A photo of the frozen leopard in 1926. (출처 : https://mattrickard.com/the-leopard-of-kilimanjaro)


초원에서 먹이를 사냥하며 살기에도 바쁜 맹수 표범이 왜 풀 한점 없는 수목한계선(통상 3,500m)을 훌쩍 뛰어넘는 높은 곳에 올라 죽은 체 발견되었을까?


실제로 킬리만자로에 올랐던 등반가들이 전한 이 범상치 않은 사실에 헤밍웨이의 작가적 상상력이 더해져 '자신의 나태한 삶과 재능 낭비를 후회하는 작가의 내면을 표현한' 이 소설 속 표범이 바로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으로,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 모티브가 여기서 시작된다.



B. 양인자('킬리만자로의 표범' 작사가)에서부터 조용필까지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의 '그 표범'은 소설가를 꿈꾸던 양인자에 의해 다시 연결된다.


“합격자 발표가 나는 정월 초하루 떨어진 걸 확인한 뒤, 또 1년을 어깨에 걸치고 버틸 수 있을지 걱정하며 소감을 미리 써봤던 거예요.”

작사가인 양인자는 원래 소설가 지망생이었는데, 신춘문예에 떨어진 직후 와신상담하며 일기장에 써놓은 '미래의 등단/수상 소감'이 그의 남편인 작곡가 김희갑에 의해, 그리고 결국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노랫말로 이 긴 이야기는 완결된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작사/작곡 - 양인자/김희갑 부부 (출처 : https://www.hani.co.kr/arti/culture/music/1227530.html)


결국 이 노래의 제목이자 노랫말에 쓰인 상징 중 가장 핵심인


'킬리만자로''그(the)' 표범.


이는 화자가 말하고 싶었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답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상징인 것이다.




다시 킬리만자로의 표범 속 [ 주요 상징 ]으로 돌아와서,


이 곡의 가사에서는 대비되는 두 가지의 상징들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세속적 욕망의 상징

-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 '야망에 찬 도시의 불빛' 그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상(理想)의 상징

-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

-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 '한 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 '한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 '꺾이지 않는 한 그루 나무'되리


이 곡의 노랫말에서는 대비되는 두 가지 상징 이외에도 더 입체적이고 다양한 상징들이 있다. 이런 부분들을 분석해 보고 음미해 보는 것도 이 곡을 더 풍성하게 즐기는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3) 정답 : 5️⃣ 명수 -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외로울지라도 내가 믿는 것을 끝까지 지키며 살겠어.



[ 주제 ]


이 곡이 발표된 지 40년(1985년 발표)이 훌쩍 넘었음에도 지금까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이자 조용필의 수많은 명곡 가운데에서도 백미인 이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노래가 위로와 용기가 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바로 이 지점이 이 곡의 주제와 연결되는 부분이다.


즉, 고통과 허무로 가득한 삶이지만 세속적 욕망과 타협하지 않고, 고독하더라도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아 숭고하게 살아가려는 삶의 자세가 바로 그것이다.


이쯤에서 LIVE 한 번 듣고 갑시다.


현실에서 우리의 삶은 어떤가?


삶에 작용하는 '외력'이나 '관성'은

성찰보다는 욕망 쪽으로 더 크게 작용하고, 삶의 의미보다는 당장의 생존을 더 시급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는 존재다.


저마다 그 답은 다를지라도 이 노래는 '인간이란 건 원래 그래, 굶어 죽을지라도 그 높은 곳을 오르는 표범 같은 존재야'라며 위로와 용기를 건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노래가 가장 위대한 점은


굳이 이런 설명 없이도 누구나 이 곡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이 모든 것들을 저마다의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작가의 이전글인생 대리체험 - 송승환 선생님 특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