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 해석 - 근데 거기에 수능 한 스푼을 곁들인.
꽤 예전부터 조용필의 노랫말이 한 편의 '시(詩)'라고 생각해 왔다.
유독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노랫말을 귀 기울여 듣게 되고, 가사를 곱씹어 보게 되고, 시(詩) 이상으로 함축적인 노랫말의 의미를 쫓아 나만의 감상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여차저차 그래서 꼭 한 번 조용필의 노래, 특히 노랫말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실제로 공연을 볼 수 있을 그 언젠가를 기다리며... )
[ 킬리만자로의 표범 / 가사해석 ]
근데 거기에 수능 시험을 한 스푼 곁들인...
조용필의 수많은 명곡들 중에서도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가사에 대해 다뤄볼까 하는데,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
이 곡의 노랫말을 수능시험 언어영역에 나온 문학 - '시'라고 가정하고 이에 대한 풀이처럼 해석해 봤다.
(지금은 국어영역이라고 한다... 세월아)
그의 노랫말 자체가 한 편의 시이자 문학이기도 하거니와, 수능시험 언어영역 문학 파트 공부 방식으로 노랫말을 해체해서 분석하는 것이 이 명곡을 이해하고 즐기기에 너무도 좋은 ‘틀’ / ‘툴’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수능 본 지 2N년, 이걸 이런 데에 써먹게 될 줄이야…)
다음의 시를 읽고 문제에 답하시오.
(재미로 한 번 풀어보세요ㅎ)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나면 위대해지고
자고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려진들 무슨 상관이랴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었는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묻지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살아가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때
그것을 위안해줄 아무 것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건
사랑 때문이라고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고독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지
사랑만큼 고독해진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지
너는 귀뚜라미를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귀뚜라미를 사랑한다
너는 라일락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라일락을 사랑한다
너는 밤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밤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나는 사랑한다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있는
내 청춘에 건배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지
모든 것을 거니까 외로운 거야
사랑도 이상도 모두를 요구하는 것
모두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
사랑이란 이별이 보이는 가슴 아픈 정열
정열의 마지막엔 무엇이 있나
모두를 잃어도 사랑은 후회않는 것
그래야 사랑했다 할 수 있겠지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한 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메마르고 타버린 땅일지라도
한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꺽이지 않는 한 그루 나무되리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구름인가 눈인가 저 높은 곳 킬리만자로
오늘도 나는 가리 배낭을 메고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문제1) 위 작품 속에서 화자는 어떠한 사람인가?
1️⃣ 등산을 좋아해서 언젠가 킬리만자로에 오르고 싶어 하는 사람
2️⃣ 자연을 사랑하고 동/식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
3️⃣ 어떻게 살 것인지 답을 찾고자 고민하고 있는 사람
4️⃣ 사랑하는 사람과 실연의 아픔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
5️⃣ 21세기를 이끌어 갈 인재가 되기를 꿈꾸는 사람
문제2) 위 작품에서 사용된 여러 상징 중 성격이 다른 하나를 고르시오.
1️⃣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
2️⃣ 빛나는 불꽃
3️⃣ 도시의 그 불빛
4️⃣ 한 가닥 불빛
5️⃣ 한 그루 나무
문제3) 이 시를 제대로 감상한 사람의 반응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1️⃣ 영호 - 역시 세상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이야. 살아남기 위해선 힘을 키워야겠어.
2️⃣ 영숙 -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해서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르고야 말겠어.
3️⃣ 정숙 - 누구도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어. 혼자서 싸워 이겨내겠어.
4️⃣ 정호 -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하며 그들과 즐겁고 행복하게 살 거야.
5️⃣ 명수 -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외로울지라도 내가 믿는 것을 끝까지 지키며 살겠어.
문제1) 정답 : 3️⃣ 어떻게 살 것인지 답을 찾고자 고민하고 있는 사람
1번 5번은 넌센스 퀴즈 모드 답
[ 화자(話者/말하는 사람) ]
시든 노랫말이든 문학 작품에서는 보통 ‘화자’가 존재한다. 이 화자는 문학 작품 속에서 ‘말하는 사람’으로, 글을 쓴 작가가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거나 혹은 주제를 표현하기 위하여 작품 속에서 만든 ‘가상의 전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화자는 누구일까?
바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고자 고독하게, 치열하게, 절실하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다.
화자는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면서 세속적 욕망 앞에서 스스로를 성찰하며 ‘어떻게 살 것인지’를 자신에게 고독하게, 또 절실하게 묻고 있다.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 ‘킬리만자로의 표범’에 비유하며 하이에나와 같은 세속적이고 비루한 삶을 거부하고 고독하더라도 숭고한 삶을 살겠다는 화자의 이상을 드러내고 있다.
문제 2) 정답 : 3️⃣도시의 그 불빛
[ 주요 상징 ]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그런데 왜 하필 백두산 표범도 아니고 ‘킬리만자로’의 표범일까?
그리고 왜 아무 표범이 아닌 ‘그(the) 표범’이라고 지칭하고 있는 것일까?
이를 이해하려면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한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A. 헤밍웨이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 B. 양인자(작사가) → 김희갑(작곡가) → 조용필
(작사가와 작곡가는 부부사이다.)
A. 헤밍웨이의 단편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The Snows of Kilimanjaro, 1936)의 첫 구절
"Kilimanjaro is a snow-covered mountain 19,710 feet high, and is said to be the highest mountain in Africa... Close to the western summit there is the dried and frozen carcass of a leopard. No one has explained what the leopard was seeking at that altitude."
"킬리만자로는 해발 19,710피트(5,895m)의 눈 덮인 산으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알려져 있다... 서쪽 정상 부근에는 얼어붙어 말라버린 표범의 사체가 있다. 그 표범이 그 높은 곳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초원에서 먹이를 사냥하며 살기에도 바쁜 맹수 표범이 왜 풀 한점 없는 수목한계선(통상 3,500m)을 훌쩍 뛰어넘는 높은 곳에 올라 죽은 체 발견되었을까?
실제로 킬리만자로에 올랐던 등반가들이 전한 이 범상치 않은 사실에 헤밍웨이의 작가적 상상력이 더해져 '자신의 나태한 삶과 재능 낭비를 후회하는 작가의 내면을 표현한' 이 소설 속 표범이 바로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으로,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 모티브가 여기서 시작된다.
B. 양인자('킬리만자로의 표범' 작사가)에서부터 조용필까지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의 '그 표범'은 소설가를 꿈꾸던 양인자에 의해 다시 연결된다.
“합격자 발표가 나는 정월 초하루 떨어진 걸 확인한 뒤, 또 1년을 어깨에 걸치고 버틸 수 있을지 걱정하며 소감을 미리 써봤던 거예요.”
작사가인 양인자는 원래 소설가 지망생이었는데, 신춘문예에 떨어진 직후 와신상담하며 일기장에 써놓은 '미래의 등단/수상 소감'이 그의 남편인 작곡가 김희갑에 의해, 그리고 결국 조용필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노랫말로 이 긴 이야기는 완결된다.
결국 이 노래의 제목이자 노랫말에 쓰인 상징 중 가장 핵심인
'킬리만자로'의 '그(the)' 표범.
이는 화자가 말하고 싶었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답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상징인 것이다.
다시 킬리만자로의 표범 속 [ 주요 상징 ]으로 돌아와서,
이 곡의 가사에서는 대비되는 두 가지의 상징들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세속적 욕망의 상징
-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 '야망에 찬 도시의 불빛' 그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상(理想)의 상징
-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
-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 '한 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
- '한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 '꺾이지 않는 한 그루 나무'되리
이 곡의 노랫말에서는 대비되는 두 가지 상징 이외에도 더 입체적이고 다양한 상징들이 있다. 이런 부분들을 분석해 보고 음미해 보는 것도 이 곡을 더 풍성하게 즐기는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문제3) 정답 : 5️⃣ 명수 -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외로울지라도 내가 믿는 것을 끝까지 지키며 살겠어.
[ 주제 ]
이 곡이 발표된 지 40년(1985년 발표)이 훌쩍 넘었음에도 지금까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이자 조용필의 수많은 명곡 가운데에서도 백미인 이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노래가 위로와 용기가 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바로 이 지점이 이 곡의 주제와 연결되는 부분이다.
즉, 고통과 허무로 가득한 삶이지만 세속적 욕망과 타협하지 않고, 고독하더라도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아 숭고하게 살아가려는 삶의 자세가 바로 그것이다.
현실에서 우리의 삶은 어떤가?
삶에 작용하는 '외력'이나 '관성'은
성찰보다는 욕망 쪽으로 더 크게 작용하고, 삶의 의미보다는 당장의 생존을 더 시급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는 존재다.
저마다 그 답은 다를지라도 이 노래는 '인간이란 건 원래 그래, 굶어 죽을지라도 그 높은 곳을 오르는 표범 같은 존재야'라며 위로와 용기를 건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노래가 가장 위대한 점은
굳이 이런 설명 없이도 누구나 이 곡을 들으면 자연스럽게 이 모든 것들을 저마다의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