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이 넘어 알게 된 출생의 비밀
1989년 4월 10일.
주민 등록 등본에서는 볼 수 없는, 주민 등록 초본에 찍힌 첫 줄이다.
등본이야 자주 열람하지만, 초본은 사실 들여다 볼 일이 없다. 대학 입학 때였나? 희한하게도 그 대학은 초본을 떼 오라 했다. 그것도 말소 기록까지 포함해서. 덕분에 알게 됐다. 부모의 재혼을.
그 이후 마흔이 넘어 이제야 다시 들춰 본 초본의 기록. 그들의 재혼 기록이 먼저 눈에 들어와서이기도 했지만, 내 출생신고일이 문제일거라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땐 몰랐다.
왜 나의 부모는 보릿고개 시절도 아닌 80년대에 애를 낳아 키우면서 아이가 7세가 되도록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던 것일까?
다만 명확한 점은 저 날짜가,
하필 4월 10일이라는 저 날짜가 썩어 빠질 내 부모의 결혼기념일이라는 것.
여자는 온 몸에 멍이 들도록 쳐 맞으면서도 <학교 하나 제대로 보내지 못하는 자식 새끼 만들면 어쩌나!>하며 기를 쓰고 남자에게 요구했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이는 엄마라는 사람의 몇 안 되는 사람 노릇 중 하나로 남았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두통약을 하나 입 안에 털어넣고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
"여보세요? 말해, 여보..."
"......"
"전화를 했으면 말을 해야지. 이 시간에 웬일이야?"
"...사십 년만에 이제야 알았어."
"뭐를?"
"나, 출생 신고 날짜..."
"뜬금없이 전화해서 무슨 말이야 그게?"
"나, 태어나고 7년이나 지나서 출생신고 한 거였드라..."
"뭐? 아니 그니까 아버님이랑 어머님이 당신 출생신고 7년이나 늦게 했단 얘기야? 어떻게 알았어?"
"그냥 잠깐 일이 있어서 등본 말고 초본을 좀 봤는데, 지금 자세히 보니까 그러네..."
"여보..."
"응..."
"지금 와... 집으로..."
머리가 깨질 것 같았는데 약발이 듣는 건지, 집으로 오라는 아내의 말이 위로가 됐던 건지 찌르르 하는 느낌이 조금씩 가시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여덟 살 국민학교 입학식 당시 남자의 반응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운동장 구령대에 올라가 <축 입학>이라 적힌 현수막 글자가 잘 보이게 똑바로 서 있으라는 여자의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기운 없어 보였다는 기억만 있다.
<찰칵!>
당시의 우울한 감정은 내 머릿속에만 있고
납작한 프레임에 갇힌 순간의 장면 속엔 아무 감정이 없다.
'......'
차라리 내 기억도 사진처럼 무감정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억은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