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의 예술론] 작품의 위대함은 창조자의 삶과 분리될 수 있는가?
프루스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단순히 한 작가 지망생(화자 마르셀)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여정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 무대인 19세기 프랑스 사교계의 대화와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화자의 첫사랑(질베르트)과 실패한 사랑(알베르틴) 이야기만 앙상한 가치처럼 남을 것입니다. 작품 안의 예술과 감각에 대한 이해는 작품에 대한 이해를 한결 풍성하게 합니다.
프루스트는 문학, 음악, 연극, 미술을 대표하는 네 명의 가상 예술가를 설정했습니다. 이들은 마르셀이 자신의 예술 세계에 눈을 뜨고 이해의 깊이를 더해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문학의 소설가 베르고트, 음악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뱅퇴유, 연극의 여배우 라 베르마, 미술의 화가 엘스티르가 바로 그들입니다.
작품은 빛나지만, 창조자는 그늘 속에 있다
프루스트가 설정한 이 네 명의 예술가에게는 공통된 역설적인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바로 작품 속의 위대함과 현실 개인의 초라한 삶 사이의 간극입니다. 이 대비를 통해 프루스트는 '작가와 작품은 분리된 존재이며,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자신의 예술론을 강력하게 뒷받침합니다.
1. 음악가 뱅퇴유 : 그의 피아노 소나타와 현악사중주는 마르셀에게 작곡가 고유의 서명이 담긴 악절의 위대함을 깨닫게 하지만 사적인 영역에서의 뱅퇴유는 자신의 딸과 그녀의 동성애자 애인에게 무시와 푸대접을 받는 비참한 대상일 뿐입니다.
2. 여배우 라 베르마 : 그녀는 무대 위에서 라신의 비극을 마치 자신을 위해 쓰인 것처럼 완벽하게 해석해 내는 대여배우입니다. 그렇지만 어머니로서의 그녀는 딸과 사위에게 버림받는 외로운 존재에 불과합니다.
3. 화가 엘스티르 : 그는 은유를 통해 사물을 새롭게 해석하며 마르셀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드는 중요한 인물이면서도 붓을 놓았을 때의 그는 상스러운 말을 일삼고 시시한 농담을 하는 속물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이러한 분리는 마르셀이 자신의 예술관을 정립하는 데 핵심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작은 일상이나 미세한 악절 하나로도 대작이 나올 수 있다는 깨달음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까지 깊은 영향을 줍니다.
마르셀에게 길을 가르쳐준 두 스승
작가 지망생인 화자 마르셀은 흥미롭게도 동업자인 소설가 베르고트가 아닌 화가 엘스티르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고 결국 작가가 됩니다.
프루스트는 시, 평론, 번역 등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한 끝에 소설이라는 형태의 문학을 최종적으로 선택했습니다. 베르고트는 바로 이러한 프루스트의 작품관과 문학에 대한 깊은 사유 및 이론적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창조된 인물입니다. 이에 반해, 화가 엘스티르는 마르셀에게 실질적인 창조 방법을 전수하고 가장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엘스티르는 프루스트가 창조해 낸 가상의 화가입니다.
마르셀은 엘스티르와의 깊은 대화를 통해 진정한 예술가의 임무를 깨닫고, 그의 그림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방법을 터득합니다. 엘스티르가 붓으로 표현한 진리를 자신은 문학에서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소명임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감각의 도약과 아이러니
화자가 감각적인 시각(미술)에서 추상적인 문학이라는 형이상학적 영역에 도달하는 이 과정은 일종의 '도약'입니다. 상징주의와 교감: 프루스트의 예술론은 물질세계와 정신세계, 인간과 자연의 교감으로 대표되는 상징주의(보들레르 영향)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는 이를 인간의 오감이 서로 교감하여 비의도적 기억으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변형시켰습니다.
시간의 초월
이러한 감각의 교차와 시간의 접합은 순간을 예술의 영원성과 연결시키며 시간의 제약을 넘어섭니다. 이처럼 위대한 예술적 성취와 통찰의 정점에서도, '작품'과 '작가'의 현실적인 삶 사이에서는 분리가 일어난다는 사실은 독자에게 가장 근원적이고 깊은 역설로 다가옵니다.
화자와 질베르트, 알베르틴과의 사랑, 스완의 사랑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것도 좋지만, 여기에 더해 프루스트의 예술론이라는 살을 붙일 수 있다면 마치 꿈처럼 펼쳐지는 이 길이 더 아름답게 다가오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