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와 어쩌다 보니 2주 반 만에 상담을 하게 됐다. 나는 요즘 감정적으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이다. 과거를 함께한 연인에 대해 헤어짐 이후에도 계속해서 느끼는 죄책감, 새로운 시작에 대한 불안감 등 마음이 심란했던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사라를 다시 만났다. 어떻게 지냈냐고 한 말에 많은 일들이 있었다며 업데이트를 했는데 사라는 내가 웃고 있지만 마음이 불편한 걸 알아차렸다고 한다.
오늘 사라와의 상담 세션에서는 크게 emotion과 boundary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1. anger라는 감정은 functional emotion 중에 하나로 늘 나쁜 것이 아니다. anger를 느낀 후에 우리는 '변화'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인간이 진화할수록 anger에서 다양한 감정들이 세분화됐다고 한다. frustration, guilt, shame과 같은 결이 조금씩 다른 많은 감정들을 느낀다고 나쁜 게 아니다. 내가 어떠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지금 frustrated라고 말했을 때 나는 스스로 다시 한번 내가 지금 이런 감정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감정은 주변 환경과 뗄래야 뗄 수 없지만,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결국 나의 '행동'과 '결정'이다. 감정에 매몰된 사람에게 현실적으로 내가 그 감정을 마주하고 나의 행동을 가져갈 수 있게 하는 아주 도움이 되는 말이었다. 그 감정의 주인은 나이고 그로 인한 선택과 결정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도 나이다. 지금 내가 꼭 들어야 할 말이었다.
감정과 바운더리는 서로 지독하게 얽혀있다. 내가 지금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바운더리의 침해에서 온다는 것을 사라가 이야기했고, 비주얼라이징을 좋아한다는 나의 상담사는 흰 종이를 들고 그 위에 조그만 개구리와 닭 모형을 올려두고 나에게 천천히 설명을 해주었다.
1. 문화적 차이를 배제하고 우리 모두에게는 boundary가 있다. 나를 죽이지 말아 달라는 것. 나의 물건을 훔치지 말아 달라는 것. 나의 동의 없이 나의 차에 타지 말아 달라는. 암묵적으로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바운더리가 있는 반면, 본인만의 가치와 스타일이 반영된 바운더리가 있다.
2. 내가 수용하고 포용할 수 있는 원의 경계는 단단하다. 우리 모두는 각자 원이 있고, 친구, 가족, 연인 모두 각자의 원을 가지고 함께 살아간다. 경우에 따라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어 나한테 들어올 수 있게 할 수 있다. 그 원을 다른 사람이 내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자신의 원을 가지고 비집고 경계를 넘는 순간 우리는 불편함을 느낀다.
3. 그렇다면 누군가 나의 바운더리를 침해해서 들어올 때 우리는 어떠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첫 번째는 그 사람을 밀어내는 것. 불편하다고 얘기하고 나의 바운더리를 존중해 달라고 말하는 것. 두 번째는 내가 그 사람을 피해서 움직이는 것. 하지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개인주의가 중요한 미국 사회에서 이러한 것이 더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 의견을 제시했다.
4. 사라는 문화적인 컨텍스트를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공동체주의가 중요한 아시안 사회에서는 내가 위 두 가지의 결정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을 고려한다고 한다. 우리가 같이 아는 사람들과 환경 그것에 나의 결정이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여 행동을 하는 반면, 미국은 그러한 판단보다는 자기 자신의 바운더리를 중시하여 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5. 이 말을 들으니 크게 와닿았다. 한국에서는 나의 성지향성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가치관이 많이 달라 쉬이 속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나는 미국의 이런 개인주의 문화 또한 깊이 와닿지 않았다. 그 어느 곳에도 낄 수 없다고 느끼는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님을, 그래도 내가 나의 주체로서 감정을 가지고 나의 바운더리를 온전하게 단단히 지킬 수 있기를 바래본다.
나의 20대 어릴 적 이별을 겪고 한참 아플 때 인상 깊어서 사진을 찍어둔 책의 한 구절이 더욱 와닿는 순간이다.
더 이상 방어적인 태도로 다시는 누구의 삶에도 끼어들지 않겠다는 소용없는 다짐을 하는 오기가 아닌, 타인과 나의 경계를 허물었다가도 여전히 나는 나대로 잘 살아갈 수 있는 튼튼한 마음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