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 읽는 엄마_'인형의 냄새'

방미진 글, 오윤화 그림 | 별숲

딸아이는 공포물을 좋아한다.

'애나벨'이나 '메간' 같은 공포영화 포스터를 연상케 하는 책을 가지고 와서는 '겁나 재밌다'며 읽어보란다.


"엄마, 읽어봤어?"

"어디까지 읽었어?"

"읽은 데까지 요약해 봐."


그래서 읽어봤다.

어? 그림체가 어디서 본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푸른 사자 와니니》의 일러스트를 맡았던 오윤화 작가님의 그림이었다.


글을 쓴 방미진 작가님은 여러 공포동화를 쓰셨다.

《인형의 냄새》도 그중 하나다.


KakaoTalk_20251022_233235169.jpg


딸아이의 생각
처음 미미가 엄마의 부탁으로 7년 동안 본 적 없었던 외할머니와 지내게 된다고 했을 땐 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외할머니가 정말 소중하게 여기는 밀랍인형 지원이를 보게 된 후 미미는 (밀랍인형인) 지원이 안에 미라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움직이고 말을 한다며 무서워해서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등골이 오싹했다.

또한 마지막에 지원이의 냄새로 환각이 오면서 미미는 지원이와 하나가 되었다고 망상을 해서 무서웠고 미미가 밀랍인형 지원이를 도자기 인형으로 가슴을 내리찍어 뿌셨을 때 충격적이었다.

이 책에선 외할머니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밀랍인형 지원이를 실제 사람처럼 대한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고,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기묘한 이야기였다.
KakaoTalk_20251024_000637833.jpg




열한 살 미미에게는 철없이 예쁘기만 한 엄마와, 그보다는 조금 낫지만 어른답지 않은 새아빠가 있다.

어느 날, 미미는 갑작스레 굉장한 부자인 외할머니 댁으로 보내진다.

돈이 궁한 미미의 엄마는 미미가 그곳에서 잘 지내면 돈 많은 친정엄마에게 빌붙을(?) 생각인 것 같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미미만 허락한 상태.

그런데 어릴 적 미미를 공주처럼 예뻐했다던 외할머니는 막상 만나보니 미미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


외할머니의 대저택에는 인형의 방이 아주 많다.

그중 2층에 있는 ‘지원이의 방’은 공주의 방처럼 꾸며져 있고, 미미에게 허락된 방이기도 하다.

그렇게 미미는 밀랍인형 지원이의 시중을 드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공포물이라는 전제를 두고 상상해 보았다.

'혹시 그 외할머니는 진짜 외할머니가 아닐지도 모른다.'
'무책임한 부모가 모종의 계약을 맺고 미미를 마녀에게 보낸 건 아닐까?'
'미미의 엄마 역시 그 마녀의 저택에서 탈출한 인형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상을 하며 책장을 넘겼다.


미미는 엄마를 '공주처럼 예쁘다'고 말했다.

반면 자신은 못생겼다고 생각한다.

눈치 없다고 엄마에게 구박받지만, 사실 누구보다 주변의 시선을 살피는 아이다.

무엇보다 자신감은커녕 자존감이 낮고, 외로움에 익숙한 아이였다.


외할머니는 그 집에서 가장 예쁜 밀랍인형 지원이를 무척 아낀다.

미미에게 방을 내준 것도 손녀를 위한 배려가 아니라, 인형이 머물던 공간을 빌려준 것처럼 보인다.

그 방의 주인은 미미가 아닌 인형 지원이었다.


외할머니의 친구들을 초대한 날, 외할머니는 인형인 지원이만 자랑했다.

미미는 소개조차 받지 못했다.

저택의 사람들 또한 미미에게는 무심했다.

그들은 오직 외할머니가 귀하게 여기는 인형에게만 정성을 쏟았다.

사진을 찍는 날도 인형인 지원이만 예쁜 옷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예쁜 인형이 되면 나도 사랑받을 수 있을까?

미미는 그런 생각을 한다.


미미는 점점 더 초라해지고 외로워진다.

그리고 인형에게 질투심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미미에게 인형 지원이의 목소리가 들리고,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사람처럼 생긴 인형과 함께 보내는 밤.

그곳에서 열한 살 미미가 느낀 공포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했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점점 흐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결국 미미는 지원이가 살아 있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밀랍인형은 외할머니에게 비싸게 팔린 ‘정교한 사기품’이었다.

인형이 깨졌을 때 그 안에서 나온 것은 미미가 상상했던 미라가 아니라, 동물의 가죽과 털이었다.


어랏?

이 부분에서 주술에 쓰인 영적인 물건이 아닐까 잠깐 상상했지만, 결국 인형의 냄새는 환각을 일으키는 ‘자연가스’ 때문이었다.


인형 지원이가 깨지고 외할머니가 방으로 들어온다.

외할머니 눈을 피해 숨은 미미가 지원이를 만지려 하는 외할머니에게 외친다.
“내 몸에 손대지 마!”

굉장히 비싼 인형인 지원이가 훼손되었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한 임기응변이었을 것이다.


이후 인형 지원이도, 사람 미미도 외할머니와 저택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다.
미미와 지원이의 영혼이 서로 연결된 걸까?
혹은 미미가 사랑받기 위해 ‘지원이’가 되기를 택한 걸까?




외할머니는 두 자녀가 있었다고 했다.
하나는 세상을 떠났고, 다른 하나는 집을 나갔다.
그 집을 나간 딸이 바로 미미의 엄마다.
그리고 놀랍게도, 미미의 본래 이름은 ‘지원’이었다.

어쩌면 미미가 지원이고, 지원이도 미미인 셈이다.


외할머니도, 미미도 결핍 속에 살아왔다.

두 자녀를 떠나보낸 상실감으로 외할머니는 저택의 방마다 인형을 채워 넣었을 거다.

인형은 떠나지 않으니까. 떠날 수 없으니까.


그리고 미미.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자존감 낮은 채 친구도 없이 외롭게 지내던 아이.

‘예쁘면 사랑받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인형이 되고 싶어 했던 미미.

그런 미미의 엄마 역시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자격이 의심스러운 인물이다.


모두가 병들어 있었다. 참 가엽다.


이 책은 가볍게 보면 흥미진진한 공포영화 같다.

인형이라는 소재만으로도 ‘불쾌한 골짜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진짜 공포는 인형에 깃든 미라나 영혼이 아니라, 단절과 무관심이 만들어 낸 외로움이다.


어른의 눈으로, 엄마의 마음으로 보면 이 이야기는 한 가족의 슬픈 비극이자, 마음의 상처로 병든 이들이 만들어 낸 조용한 공포이다.



딸아이에게 추천받은 동화책을 읽고 있습니다. "엄마, 재밌지?" 물음을 시작으로 아이와 생각과 느낌을 나누며, 문득 이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아이의 독후감도 저의 글도 나름의 생각 위주로 적어갔지만, 혹시 이 기록이 책의 출판사 또는 작가님께 누가 된다면 언제든 알려주세요.



작가의 이전글동화책 읽는 엄마_'서찰을 전하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