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 ‘AI 소송’은 무엇이었나

챗GPT보다 계약이 문제였던 이유

by 이한결

서브노티카2 분쟁, 법원은 왜 AI보다 계약을 먼저 봤을까


최근 보도로 다시 주목받은 사건, 무엇이 실제 쟁점이었나


최근 블룸버그와 로이터 보도를 계기로 크래프톤(Krafton)과 언노운 월즈(Unknown Worlds) 분쟁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보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면은 크래프톤 경영진이 해고와 대응 전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챗GPT를 활용했다는 부분입니다. 다만 2026년 3월 16일 델라웨어 형평법원이 내린 1단계 판결을 기준으로 보면, 이 사건의 중심은 인공지능(AI) 자체의 위법 여부가 아니라 2021년 인수계약이 정한 어닝아웃(earnout) 구조와 운영권, 그리고 정당한 사유(valid Cause) 없는 경영진 교체 여부였습니다. 형식상 원고도 해임된 경영진 개인이 아니라, 언노운 월즈 옛 주주 대표인 포티스 어드바이저스(Fortis Advisors)였습니다.


이 점을 먼저 짚는 이유는, 이 사건을 단순히 “챗GPT와 상의한 회사가 법원에서 졌다”는 식으로 읽으면 판결의 무게중심이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법원이 실제로 판단한 것은 해고의 일반론이 아니라 인수계약(EPA) 위반 여부였고, 챗GPT 대화는 그 과정의 동기와 실행 경위를 보여주는 정황으로 다뤄졌습니다. 판결문도 1단계 쟁점을 “정당한 해임사유 없는 해임”과 “운영권 박탈”에 맞추고, 어닝아웃 훼손과 금전손해는 2단계 쟁점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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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인수계약이 묶어 둔 것들


출발점은 2021년 10월 29일입니다. 크래프톤은 당시 언노운 월즈를 인수하면서 약 5억 달러를 선지급하고, 추가로 최대 2억5000만 달러의 어닝아웃을 두는 구조를 택했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어닝아웃은 단순한 보너스가 아니라 거래대금의 중요한 일부였고, 일정 매출 기준을 넘기면 큰 폭으로 증가하는 구조였습니다. 같은 판결문은 크래프톤이 이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창업자인 찰리 클리블랜드(Charlie Cleveland), 맥스 맥과이어(Max McGuire)와 최고경영자 테드 길(Ted Gill)에게 운영권을 보장하고,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만 해임할 수 있도록 계약을 맺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2021년 크래프톤의 공식 인수 발표도 언노운 월즈의 구조와 리더십이 유지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계약 구조는 나중에 큰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법원은 운영권 조항이 단순한 상징 문구가 아니라, 제품 로드맵과 출시, 예산, 인사, 파트너링까지 포함하는 실질적 권한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이후의 경영진 교체는 인사권 행사로만 볼 수 없었고, 곧바로 계약위반 여부의 문제로 넘어갔습니다.

서브노티카 2(Subnautica 2) 출시 일정과 어닝아웃이 왜 맞물렸나

서브노티카 2는 2024년 10월 공식 공개 당시부터 2025년 얼리 액세스 출시를 예고했습니다. 그런데 2025년 7월 9일 언노운 월즈는 공식 공지를 통해 얼리 액세스를 2026년으로 연기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보다 앞선 2025년 7월 2일에는 크래프톤이 스티브 파푸치스(Steve Papoutsis)를 새 최고경영자로 선임하고, 테드 길, 찰리 클리블랜드, 맥스 맥과이어를 기존 리더십에서 즉시 교체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시간순으로 보면 경영진 교체가 먼저 있었고, 그 직후 출시 연기 발표가 이어진 셈입니다.


이 일정이 왜 그렇게 중요했는지는 판결문이 더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크래프톤 내부 모델은 2025년 8월 얼리 액세스가 성공적으로 시작되고, 2025년 4분기까지 167만 장 이상이 판매되면 어닝아웃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했습니다. 기본 시나리오는 1억9180만 달러, 최선 시나리오는 2억4220만 달러였습니다. 법원은 이 수치가 김창한 대표의 관심을 즉시 끌었고, 이후 그는 어닝아웃 부담과 거래 전체의 경제성을 강하게 의식하기 시작했다고 적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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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ChatGPT)와 프로젝트 엑스(Project X)는 법원에서 어떻게 읽혔나


판결문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날짜는 2025년 6월 2일입니다. 그날 크래프톤 내부에서 박(Park)은 슬랙(Slack) 메시지로, 설령 정당한 해임을 하더라도 매출 목표를 달성하면 어닝아웃은 여전히 지급될 가능성이 높고, 실익보다 소송과 평판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바로 그 뒤 김 대표는 챗GPT에 도움을 구했고, 재판에서는 관련성 있는 챗GPT 로그 일부를 삭제했다고 인정했습니다. 판결문은 챗GPT가 “어닝아웃을 취소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답하자 김 대표가 더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다음 등장한 것이 내부 태스크포스인 프로젝트 엑스입니다. 법원은 김 대표가 챗GPT 제안에 따라 프로젝트 엑스를 꾸렸고, 그 임무가 어닝아웃과 관련한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내거나 언노운 월즈를 장악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이었다고 정리했습니다. 이어진 내부 문건에는 팬 대상 메시지 선점, 스팀 퍼블리싱 권한 통제, 법적 방어자료 준비 등이 포함됐고, 법원은 크래프톤이 이후 한 달 동안 챗GPT 권고의 상당 부분을 실제로 따라갔다고 봤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챗GPT를 썼기 때문에 위법”이라는 판단이 아니라, 챗GPT 대화와 그 후속 실행이 의사결정 경위를 드러내는 증거로 기능했다는 점입니다.


해고와 소송은 어떤 구조로 이어졌나


2025년 7월 1일 크래프톤은 Cleveland, McGuire, Gill에게 해임 통지를 보냈습니다. 해임 통지서와 초기 답변서의 주된 논리는 “서브노티카 2를 너무 이르게 출시하려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소송이 진행되면서 크래프톤은 공동창업자들의 역할 축소, 사실상 반은퇴, 대규모 데이터 다운로드 같은 사유를 함께 내세웠습니다. 법원은 여기서 크래프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클리블랜드와 맥과이어의 역할 변화는 이미 크래프톤이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고, 데이터 다운로드도 문제적이긴 했지만 계약상 정당한 해임사유를 만들 정도의 의도적 기망으로는 입증되지 않았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2025년 7월 10일, 형식상 원고인 포티스 어드바이저스가 언노운 월즈 옛 주주 대표 자격으로 델라웨어 형평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점도 기사형 보도에서는 종종 단순화되지만, 법률 구조상으로는 “해임된 경영진 개인이 곧바로 낸 소송”이라기보다 “옛 주주 대표가 인수계약 위반을 문제 삼은 사건”으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법원이 실제로 판단한 것은 무엇이었나


이 사건을 ‘부당해고 사건’이라고만 부르면 핵심이 흐려집니다. 델라웨어 형평법원이 1단계에서 판단한 것은 노동법 일반이 아니라 인수계약 위반 여부였습니다. 결론은 분명했습니다. 법원은 크래프톤이 핵심 인력을 정당한 사유 없이 해임했고, 언노운 월즈의 운영권을 부당하게 빼앗아 인수계약(EPA)을 위반했다고 봤습니다. 판결문 결론 부분은 크래프톤이 핵심 인력을 “without valid Cause”로 해임했고 “improperly seizing operational control”을 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구제도 매우 구체적이었습니다. 법원은 테드 길을 언노운 월즈 최고경영자로 복귀시키고, 그의 운영권을 회복시키며, 서브노티카 2 얼리 액세스와 관련한 권한을 방해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스팀 접근권도 즉시 복구하라고 했고, 기본 어닝아웃 측정기간은 258일 연장해 2026년 9월 15일까지로 늘렸습니다. 포티스는 계약상 권리에 따라 이 기간을 2027년 3월 15일까지 추가 연장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찰리 클리블랜드와 맥스 맥과이어를 같은 방식으로 모두 원직 복귀시키지는 않았습니다. 법원은 길의 복귀만으로도 계약상 운영권 회복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img.png?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775611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qY8GIn76J0MboFNYSxuQ8nvfz9M%3D 내부 인공지능 대화는 생산성 도구의 흔적이면서, 나중에는 소송 기록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이 사건을 어떻게 봐야 하나


이 사건을 둘러싼 보도는 자꾸 챗GPT 장면으로 쏠립니다. 물론 그 장면은 강한 상징성이 있습니다. 다만 판결문을 기준으로 정리하면, 이 사건은 인공지능(AI) 사용 자체를 금지하거나 처벌한 사례가 아닙니다. 오히려 인수 후 어닝아웃 설계, 창업자 잔류 조항, 운영권 통제, 내부 인공지능 사용기록의 보전이 한꺼번에 충돌했을 때 법원이 어디에 선을 긋는지를 보여준 사건이라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챗GPT는 이 사건의 제목이 아니라, 계약분쟁의 과정에서 드러난 하나의 기록이었습니다.


게임업계라는 맥락까지 놓고 보면 더 선명해집니다. 서브노티카 2처럼 후속작의 출시 시점이 매출과 커뮤니티 기대, 플랫폼 운영, 개발 리듬과 직결되는 프로젝트에서는 “누가 출시를 결정하느냐”가 곧 돈의 문제이자 권한의 문제가 됩니다. 이 사건은 그 연결고리가 계약서 문구로 얼마나 날카롭게 살아나는지를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거래가 체결될 때는 보조 조항처럼 보이던 운영권과 어닝아웃 조항이, 실제 분쟁 단계에서는 가장 앞줄에 서게 된 것입니다.


맺으며


결론적으로 이 사건을 볼 때는 “인공지능이 위험하다”는 막연한 문장보다, 인수 후 어닝아웃 설계, 창업자 잔류 조항, 운영권 통제, 내부 인공지능 사용기록의 보전이라는 네 가지 문제를 함께 봐야 합니다. 크래프톤은 로이터에 판결에 동의하지 않으며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고, 공개 판결문 자체도 금전손해와 어닝아웃 훼손 여부를 2단계 쟁점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범위는 1단계 판결이 확인한 계약위반과 그에 따른 구제조치까지입니다.


크래프톤과 언노운 월즈 사건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문장은 이것입니다. 이 사건의 중심에는 인공지능보다 계약이 있었습니다. 2021년 인수계약이 정한 운영권과 어닝아웃 구조가 2025년 서브노티카 2의 출시 시점과 부딪혔고, 그 충돌이 2026년 1단계 판결로 이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게임업계 인수분쟁에서 계약 문구가 어디까지 현실을 움직일 수 있는지, 그리고 내부 기록이 나중에 어떤 증거가 되는지를 함께 보여준 사례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