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때마다 자주 마주치는 이웃들이 있다. 말을 걸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낀다. ‘그들도 나처럼’ 매일매일 아침을 밀어젖히고 있다. 큰길 사거리쯤에선 매미 커플을 자주 본다. 남자는 키가 2m는 돼 보이고, 반면 여자는 150cm도 채 안돼 보였다. 두 사람은 추우나 더우나 팔짱을 꼭 끼고 걸었다. 거의 딱 달라붙어 걸었다. 그래서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 같았다. 가끔은 그 모습이 우습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이뻐 보이기도 했다.
매미 커플을 보며 출근한 지도 벌써 몇 년째다. 늘 멀리서만 스쳐지나다 오늘은 그 커플 가까이를 지나쳤다. 얼굴이 자세히 보일 정도의 거리였다. 매미 커플을 가까이 보는 순간, 뭐랄까, 좀 생뚱맞게도 ‘허탈했다.’ 가까이서 보니 키가 큰 남자는 눈을 감고 있었고, 팔짱 끼듯 붙어 있던 그 여자는 남자를 인도하고 있었다. 남자는 맹인이었고, 여자는 그를 돕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낭만을 위해 꼭 붙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살기 위해, 함께 거친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 고목나무에 매미가 달라붙어 있듯 추운 날도 더운 날도 그렇게 함께 해온 것이었다.
언젠가 만난 맹인청년은 자신이 대학을 졸업한 것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듣고 보니 그럴 만했다. 한 명의 맹인이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보통 20명 정도의 자원봉사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 통학할 때만 도움이 필요한 게 아니다. 강의 때 쓰는 교재를 낭독해 주고, 봉사자가 시험을 볼 때조차 같이 들어가 문제를 읽어주어야 시험도 칠 수 있다. 20명도 적은 숫자처럼 들린다. 당연해 보이는 일이 누군가에겐 에베레스트 등정성공처럼 자랑하고 싶은 역경일 수도 있다.
허탈한 느낌의 정체는 자각이었을지 모른다. 내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새삼스러운 자각을 이웃 덕분에 되새겨본다. 열심히 살자. 세상에게 또 무엇을 더 달라고 생떼 부리고 있나? 세상은 불공평하다. 나는 남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받으며 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