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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Dec 09. 2024

영화<보통의 가족>-시험에 들어본 적이 있는가?

마침내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평상시에는 알 수 없다.

안전한 공간에서 맛있는 밥 먹으며 세상과 타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누구나 도덕적이고 착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이 결부된 특정한 일에 깊게 연루되었을 때 드러나는 특성이 그 사람의 본성이다. 따라서 진정하게 시험에 들어보지 않은 누군가를 선한 사람이라고 믿는 것은 심각한 오류일 수 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강렬한 인트로 씬으로 시작한다. 부잣집 자식이 비싼 외제차를 타고 난폭운전을 하고 이에 분개한 전직 야구선수 출신인 남자가 야구 배트를 꺼내서 응징하려고 하자, 그가 액셀을 밟아 그 남자는 차에 치어 죽고 그의 딸이 타고 있는 차에 추돌해서 딸까지 중상을 입은 것이다.

부자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비싼 변호사를 고용하는데 그가 바로 재완이다. 재완은 싹수없는 부잣집 아들을 변호하는 게 탐탁지 않지만 돈을 많이 준다는 말에 사건을 맡기로 한다. 그는 피의자를 만나 그가 고의가 아니라 당황해서 실수로 액셀을 밟았다는 것을 주지 시킨다. 재완은 잘 나가는 변호사로 수년 전 아내와 사별하고 젊고 예쁜 아내와 재혼해서 늦둥이 아기를 낳았다.

그의 동생 재규는 의사인데 막내지만 치매 엄마를 모시며 종합병원에서 열심히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재규가 마침 그 사고 때 다친 딸을 수술하면서, 가해자를 변호하는 형에게 돈 되는 일이면 아무 일이나 하냐며 비판한다.

형제는 가끔씩 고급 식당에서 부부동반 식사를 하며 집안일도 의논하며 친목을 다진다. 형은 지난날 아픈 아내 때문에 엄마를 동생 부부에게 맡긴 것을 제수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좋은 요양원에 엄마를 모실 것을 제안한다. 제수인 연경은 남편이 개업해서 돈을 많이 벌기를 바라지만 연하 남편의 의견을 존중하고, 치매 시어머니까지 보살피고 외적으로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러나 예쁘고 몸매 좋은 어린 윗동서가 나이 많고 돈 많은 남자를 물었다고 생각하고 그녀를 무시하며 선을 긋는다.

재혼한 형의 부인 지수는 부모님이 운영하는 떡집에서 변호사 사무실로 떡 배달을 하다가 재완을 만났고 결혼하게 되었다. 건강하고 솔직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고 연경과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지만, 동서가 그녀를 무시한다.


그들이 좋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던 시간, 고등학생인 재완의 딸 혜윤과 재규의 아들 시호는 바람을 쐬자며 외국 대학에 다니는 애들이 모여서 하는 파티에 참석한다. 거기서 못 먹는 술을 과음한 시호는 파티에서 나와 사촌 누나 혜윤과 밤길을 걷다가 쌓여있는 재활용 페트병 뭉치를 걷어차며 학교폭력을 당하며 쌓인 분노를 출한다. 그 후 쓰러진 노숙자를 발견하고 둘은 그를 발로 차며 오랫동안 폭행하고 어디론가 질질 끌고 간다.

노숙자는 의식불명으로 병원에 실려가고 CCTV에 찍힌 폭행 장면이 방송되며 화제가 되는데, 우연히 그 방송을 본 연경은 한눈에 영상 속 남자애가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알아본다. 연경은 그날 입었던 피 묻은 후드 점퍼를 서둘러 빨고, 아들에게 가서 동영상을 보여주며 말한다. “이건 너 아니야.”

혜윤은 변호사 아빠를 찾아가서 아는 사람의 이야기라며 사건을 말하고, 죄가 안되게 만들 수 있냐고 질문한다. 재완은 단번에 그것이 딸의 이야기라는 것을 눈치채고 동영상을 찾아보고 가족회의를 소집한다. 형은 재판까지는 안 가는 게 좋다며 상황을 보자고 하고, 동생은 아이들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연경은 자수한 후 노숙자가 죽으면 아이들이 살인자가 된다며 절대 알리면 안 된다고 한다.


아들 시호가 약해서 늘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알고 있던 재규는 경찰차를 보고 공황 발작을 일으키는 아들이 감옥에 가게 되면 견딜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결국 마음을 바꾼다. 입원했던 노숙자가 죽은 후 그는 안심하며 이 사건을 묻어버리기로 결심한다. 노숙자가 그 정도 맞고 죽을 줄 몰랐다며 눈물을 흘리는 아들을 안아주며 앞으로는 열심히 살라고 한다.

반면 사람이 죽었는데도 아무 느낌도 없었던 딸이 대학합격 소식을 듣고 오히려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고 자동차를 사달라고 하자 재완은 정신이 번쩍 든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의 폭행 동영상을 보고 웃으며 거지들은 어차피 일찍 죽으니 그 노숙자는 자연사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농담을 한다.

재완은 식사자리에서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재규에게 애들을 이렇게 살게 하는 건 인간으로서 살 기회가 아니라고 하며 자수시키자고 하고, 재규는 아들을 건드리면 형을 죽여버리겠다고 한다.

형이 뜻을 굽히지 않자 흥분해서 밖에 나가 차를 탄 동생은, 길에서 주차한 자신의 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형을 그대로 들이받는다.     

    



처음에는 형은 돈만 아는 사람이고 동생은 도덕적인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평범한 구조의 이야기였다면 영화로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네 명의 캐릭터는 참으로 입체적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형은 부잣집 아들을 변호할 때 범죄행위를 부정하거나 없애는 것이 아니라, 행위는 인정하되 불확실한 동기를 유리하게 해석해 준다. 또 사고는 어차피 일어났고 아이는 수술이 필요하니 위로금을 많이 받게 해주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물론 변호비도 많이 챙긴다.) 피의자를 좋아하지도 않고 굽실거리지도 않는다. 누구나 변호받을 권리가 있으니 재완은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그는 죽은 노숙자의 어머니에게 돈을 몰래 가져다주기도 한다.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지만 자기 딸 때문에 죽은 아들의 보상금을 개인적으로 주는 이유는, 거리를 떠돌던 아들이 죽었어도 어머니는 계속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원칙은 아이들이 노숙자를 때린 행위를 없는 것으로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의 동기와 뉘우침을 고려해서 유리하게 변호하는 좋은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딸을 보며, 교통사고를 내고도 피해자에게 전혀 미안해하지 않았던 부자 피의자를 떠올리고 기시감을 느낀다. 이 사건이 묻힌다고해도 폭행이 없던 일이 되지도 않을 것이고, 딸은 결국  싹수없는 인간이 될 것이다. 그는 딸을 자수시키기로 결심한다. 재완은 착한 사람이라기보다, 원칙을 가진 현실주의자로 보인다.

반면 온갖 착한 일은 다하고 도덕적인 말만 하는 동생 재규는, 아마도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가정폭력 트라우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초자아로 똘똘 뭉친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착한 사람의 페르소나를 쓰고 있다. 돈만을 위해 개업하지도 않고, 치매 엄마 때문에 집안이 엉망이 되어도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지 못한다. 아들에게 병원 체험학습 이수증을 주는 것도 꺼린다. 그러나 순간순간 속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를 참지 못한다. 그러다가 아들의 사건을 맞닥트리자 꾹 눌러두었던 본능과 폭력이 그를 압도한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긴 존재를 망치려는 에 분노를  폭발시킨다.(죽여버린다)

연경은 치매 시어머니를 모시고 봉사활동을 하는 착한 여성으로 보이지만, 자신은 집안도 좋고 의사의 아내라는 속물적인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재혼한 젊고 아름다운 동서를 질투하고, 그녀를 돈을 보고 결혼한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으로 폄하한다. 아들에게 사고가 생기자 무조건 싸고돌고 일을 은폐하려고 한다.

형과 재혼한 지수는 겉보기와는 달리 생각이 건전하고 남편과 아기를 사랑해서 이 가족이 잘되기를 바란다. 이 가족 중 제일 객관적인 인물이다. 아이들과 혈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붓딸의 섬뜩한 행동을 보며 걱정하고 무섭다고 느낀다.

          

영화에서는 쌍을 이루는 장면이 두 부분이 있다. 첫 장면에서의 차 사고와 마지막 장면의 차 사고, 아이들이 노숙자를 끌어내는 장면과 재규가 고라니를 치고 도로밖으로 끌어내는 장면이다.

부잣집 아들이 사람을 친 것은 실제로 야구 배트 때문에 겁을 먹고 저지른 실수일 수도 있고 고의일 수도 있지만, 재규가 형을 친 것은 완벽한 고의이다. 또 재규가 고라니를 치고 끌어낸 것은 사고수습이었지만 아이들이 노숙자를 끌어낸 것은 악의적인 행동이다.

어떤 행동이 있고 그것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그러나 행동 자체를 은폐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거짓이다.

또한 영화는 속죄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준다. 연경이 자신이 그동안 봉사활동을 많이 했으니 이 정도는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속죄의 방향이 완전히 잘 못 된 것이다. 혜윤은 자신들은 노숙자 같은 존재와는 격이 다르다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고, 시호는 심지어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 살겠다는 이상한 속죄를 한다. 자신들이 해친 인간에 대해 털끝만큼의 예의도 없다.

     

편안한 환경에서 남의 행동에 손가락질하기는 쉽다. 그러나 자신이 그 상황에 빠졌을 때 어떤 진심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형제 중 누가 착하고 누가 악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자신의 참모습을 알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형은 자신의 성향과 한계를 알고 있고 균형을 이룬 사람이라고 볼 수 있고, 동생은 무의식을 철저히 억압하며 겉으로는 착하게 살다가 그것이 위협받는 상황이 왔을 때 억압된 에너지가 폭발하며 뒤집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 일도 없을 때는 모두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다. 시험에 들어봐야 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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