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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윤 Jul 12. 2021

하이델베르그 성成 페스티벌을 가다_3

직업으로서의 해금연주가 | 천지윤의 해금이야기

공연을 하다.       



첫 공연이 올려졌다. 해가 길었던 유럽의 여름. 사위가 밝은 가운데 공연이 시작됐다. 이 작품은 <이와 사-불교음악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왔다. 세상의 이치와 이론, 이상을 뜻하는 이(理)와 실제적인 삶과 현실세계의 갖가지 일을 뜻하는 사(事)의 개념을 가져와 작품의 제목으로 지은 것이다. 불교음악을 시작점으로 여러 음악적 재료와 춤의 요소, 시각적인 소재를 가져온 만큼 명상적이며 영적인 분위기가 흐르는 작품이다. 



바람이 불어 두 분의 예술스님의 회색빛과 붉은 옷자락이 사르라니 휘날린다. 음악 큐에 맞춰 스님들은 커다란 바라를 들고 바라춤을 추기 시작한다. 또 다른 음악이 시작되니 안은미 선생님이 금빛 드레스를 입고 얼굴에 온통 금칠은 한 채 초록 잔디 위에 등장한다. 신적인 존재처럼. 



서양 문화가 장구하게 이어진 이 도시의 꼭대기에서 수천 년을 이어온 불교의 교리가 스민 노래와 춤이 발현된다. 그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비빙의 연주. 서양식의 현대무용과 한국무용이 스민 안은미의 춤까지. 여러 문화가 정연한 질서를 가지고 각자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장내는 엄숙한 긴장이 흐르는 가운데 시작하여 스님들의 화려한 나비춤에 이르자 한껏 고조되었다. 연주가 마무리되고 낯설 디 낯선 이 공연에 대한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다. 


비빙 하이데베르그 성페스티벌 


성의 요새이니만큼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은 공연을 감상하며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을 것이다. 분홍빛에서 금빛으로. 금빛에 오렌지 빛이 섞이는듯하더니 타는 듯 붉은 일몰까지. 태양빛은 우리가 공연하는 동안 하늘에 온갖 채색을 했다. 갖은 빛을 내던 일몰은 사그라들었고, 그 자리엔 달빛이 괴괴하다. 무대 위 인사를 하고나니 주체 측의 감사 인사와 더불어 장미꽃을 한 송이씩 연주자 품에 안겨주었다. 





나에게도 낯설고 생경한 이 장면은 내가 꿈꾸던 꿈속의 장면이기도 했다. 이후 달빛이 드리운 요새에서 이어진 애프터 샴페인 파티까지. 완벽한 꿈, 그 이상의 것이었다. 하이델베르그에서 공연을 무사히 마친 후 바람은 포근했다. 요새에서 내려다보이는 하이델베르그의 밤 풍경은 아름답다는 말로는 표현되지 못 할 것이었다. 우리는 꽤나 신이 난 채로 하이델베르그 밤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안은미      



하이델베르그에서 공연을 마치고 우리는 각자 휴식을 했다. 안은미 선생님의 진두지휘에 따라 김치를 담그는 날도 있었다. 한 겨울 김장을 해서 오래 숙성한 후 꺼내 먹는 김치맛 과는 다르지만 독일의 배추와 무, 한국마트에서 공수한 고춧가루 등으로 맛을 낸 김치. 아삭아삭하고 새콤한 것이 김치 샐러드 같기도 하고 어떤 음식에도 잘 어울렸다. 김치는 날개 달린 듯 인기 있었다. 며칠 만에 사라지는 김치 신기루. 안은미 선생님은 놀라운 추진력을 가진 분. 김치를 담그는 일도 공연을 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뜨거운 열정을 보이셨다. 



보통 공연 외의 일을 할 때에는 스위치를 끄고 나무늘보처럼 늘어져 온전히 휴식하고 싶을 만도 한데 그녀의 파워는 대단했다. 핫핑크, 네온옐로우 같은 한 눈에 확 튀는 색감의 드레스에 볼드하고 화려한 귀걸이에 민머리를 한 쇼킹한 비쥬얼로 도시를 누비며 파워워킹을 했다. 쇼핑을 하러 가면 독특하게 예쁜 물건을 고르곤 했는데 자기만의 예리한 심미안을 바탕으로 한 것들이었다. 그녀 눈에는 예쁜 것도 많고 촌스러운 것도 많았다. 무엇이든 섬세하게 골라내고 추려내는 감각이 온몸에 돋힌 듯 했다. 



하이델베르그 공연에서도 매번 의상과 메이컵에 있어 변화를 주곤 했다. 공연용 분장은 선생님 스스로 하시곤 했다. 어떤 날은 눈썹을 새하얗게 밀어버리기도 했다. 어떤 날은 금빛 펄을 얼굴 가득 바르기도, 어떤 날은 핑크빛 토끼 얼굴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대담성과 자기 연출 능력은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무언가 하고자 하는 마음을 심어주셨다. 




전통음악이라는 장르는 도제식 교육이다. 스승의 소리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닮고자 하는 것이 연습의 기본 태도다. 스승의 소리를 온전히 흡수한 후에 다음 단계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러한 세계관 안에서 자라온 내게 안은미 선생님과의 만남은 굳어있던 사고를 도끼처럼 깨는 계기가 되었다. 스승님의 가락과 시김새 하나라도 다르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내 사고에 커다란 전환을 주었던 것이다. 하이델베르그에서 조용히 사색하는 시간이면 최대한으로 엉뚱한 상상력을 발휘해보곤 했다. 핑크색 단발머리에 하얀 페이던트 소재의 반짝이는 미니스커트 수트를 입고 무릎 위로 올라오는 싸이하이 부츠를 신고 해금을 하는 내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파격적이고 절대적인 인상을 줄 수 있는 나만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결의가 찬 상상력이었다. 



안은미의 세계는 그만큼 전복적이고 강렬했다. 안주하지 않고 매번 새로움을 시도하는 용기와 극성,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밀고나가는 힘, 독특한 심미안으로 무장한 자기 자신, 그 자체로 매혹하는 힘. 안은미와 하이델베르그 성에서 리허설과 공연을 거듭하고, 도시의 곳곳을 한가로이 거닐고, 마트에서 장으로 보고, 김치를 담그고, 자잘한 것들을 쇼핑하며 그녀의 Power, Energy, Spirit에 전염되는 하루하루였다. 



2019 서울시립미술관 <안은미래> 전, 안은미 선생님 그리고 아들과 나

                                                  







알차이를 가다.     

하이델베르그 공연 일정을 모두 마쳤다. 공연과 공연 사이 휴식이 주어지는 날에 근처 도시인 뮌헨에 1박2일 기차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성 페스티벌에서 열린 다른 공연인 ‘사랑의 묘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오페라를 감상하기도 했다. 하이델베르그 강가를 한가롭게 거닐다가 에스프레소 바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시거나 하는 여유로운 날도 있었다. 



이제 하이델베르그의 일정을 마무리 하고 이름도 생소한 ‘알차이’라는 도시에 공연을 다녀오면 귀국이다. 우리는 자동차 두 대를 렌트해 나눠 타고 악기도 모두 실었다. 아우토반이라는 독일 고속도로를 2-3시간 질주해 알차이에 도착했다. 



알차이는 우리에게 도무지 알려진 바가 없는 도시 아닌가. 도착해보니 지평선 끝까지 라벤더 밭이 펼쳐져 있는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우리가 공연할 곳은 와이너리의 와인창고였다. 와이너리 주인 할아버지의 딸이 연극 연출가로 장영규 감독님과 인연이 있어 이곳까지 초대된 것이었다. 독일은 달콤한 리즐링 와인으로 유명한데 이곳이 바로 리즐링 와인을 재배하는 와이너리였다. 광활한 포도밭과 라벤더 농장 곁에 아름다운 게스트 하우스가 있었다. 새로 리모델링했다는 게스트 하우스는 고급 리조트의 독채 팬션 같았다. 우리는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고 와이너리 내부의 와인창고로 악기를 들고 이동했다. 



오래된 유럽식 벽돌바닥에 나무로 지어진 와이너리는 여행자를 위한 숙소와 레스토랑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는 공간들. 우리가 공연할 와인창고는 한때 와인 저장고로 쓰였지만 지금은 연출가 딸을 위해 소규모 공연장으로 개조되었다. 어둑어둑한 공연장의 문을 여니 고요했다. 한켠에는 피아노 상부의 상판을 뜯어 88개의 철현에 망치와 못을 비롯한 섬세한 소품들을 메달아 놓은 설치미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밤이 되어 알차이 동네 주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작은 공연장 안에서 비빙의 <이와 사, 불교음악프로젝트>가 공연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시골마을에 한국에서 조차 실험적으로 분류되던 작품인 <이와 사>라는 작품이 초청되고, 마을 주민을 위한 향연이 펼쳐진다는 점이 놀랍다. 예산은 어떻게 마련했을까? 지금에 와서 궁금해진다. 와이너리 주인의 딸이라는 연출가의 주선으로 열린 공연이니, 이 지역 문화를 일구고자 하는 열정이었을 것이다. 그 다음날 지역 신문에 우리 공연의 사진과 리뷰가 실렸다. 시골 마을이어도 고립되지 않고 다양한 문화가 오가고, 교류하고, 즐기고, 기록되는 문화에 대한 활발성이 부럽다. 



콘서트를 마친 우리는 와이너리 중정에 펼쳐진 또 다른 항연에 초대 되었다. 와인파티! 와이너리인 만큼 중정을 둘러싸고 대형 와인 오크통이 즐비했다. 공중에 방울방울 매달린 크리스마스 풍의 조명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와이너리 주인 할아버지의 환대에 밤이 늦도록 리즐링 와인을 종류별로 끝도 없이 마실 수 있었다. 여름밤 바람은 와인을 즐기기에 알맞은 온도였다. 대화를 나눠보니 와이너리 할아버지는 음악을 사랑하는 분이었고 우리의 공연을 좋아하셨다. 그 중 해금이라는 악기에 매료되었는지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셨다. 할아버지는 2층 레스토랑에 피아노가 있으니 내일 아침 그곳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다음날 아침 약속대로 악기를 들고 할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레스토랑 한켠에 오래된 피아노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피아노 의자에 앉더니 귀여운 동요 악보를 내게 주시며 함께 연주하자고 제안하셨다. 할아버지는 더듬더듬 피아노를 치고 나는 초견으로 악보를 읽어 내려갔다. 왈츠풍의 순수한 동요였다. 할아버지는 이 곡 외에도 다른 몇 곡을 함께 연주하고 싶어 하셨다. 우리 동료들이 모두 짐을 꾸려 떠날 준비에 분주했으므로 오래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할아버지와의 짧은 음악회를 마무리 했다. 아이들이 볼법한 귀여운 동요 악보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오늘 꼭 찾아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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