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_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2011년
"아니 어떻게 그런 욕심을 부려.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온다"
지인 춘승의 비아냥입니다.
"아니, 욕심이 아니고 그저 동기부여랄까. 그런 게 필요했던 거지"
"아니, 그래서?"
"그래서는 뭐, 앞다리만 나온 개구리가 뛰려고 마음먹는다고 뛰어지나요. 머리만 삐쭉 내밀고 뛰었다고 착각하는 거지"
"그렇게 잘 아는 양반이 왜 그랬데"
"기한이 정해져 있었고 필요한 최소 분량이 있더라고요.
이왕 시작한 거 한번 써보자! 하는 나름의 각오였죠.
그런데 목표가 생기니까 그 분량을 쓰게 되더라고요.
딱 마무리 한날이 응모 마지막 날인 거야.
그래서 이왕 쓴 거 그냥 응모해 본 거예요.
뭐, 각오한 만큼은 했고. 설레고 싶었죠.
결과야 당연하지만 두근거림은 필요하잖아요."
"잘했네. 그런데 있잖아요. 뒷다리가 나온다 해서 뛸 수는 있고?"
"아뇨. 절대 못 뛰어요. 일단 가라앉지 않는 거. 그게 먼저 같아요.
가라앉아도 다시 부유할 수 있는 여유와 긴 호흡.
못 뛰면 모가지라도 늘려야지 뭐. 숨은 쉬어야 하니까"
(부적절한 부사와 형용사 등 다소 거친 표현이 있어 조금 다듬었습니다)
17일 저녁 지인 춘승과의 술자리에서 나눈 대화입니다.
브런치 북 출판 프로젝트 결과 발표날이었죠.
이야기의 시작은 이랬습니다.
"오늘 들어가 보니까 무슨 발표하던데 혹시 응모한 건 아니죠?"
라는 물음에 낚이고 말았죠.
"에? 내 주제에 무슨 응모를 해요. 깜냥이나 되나.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찌개 먹던 숟가락을 건네더군요.
"뭐 해? 파요. 쥐구멍이라도. 숨을 시간은 드릴게.
아니 글을 쓰겠다는 사람이 왜 주제 파악을 못해요?
언제 철들고 언제 사람 될 거야"
"내가 그래서 고기 먹을 때 마늘 안 먹잖아요.
많이 먹으면 사람 될까 봐"
"얼른 파요. 아예 묻어 버리게. 입부터 묻어야 돼. 이 양반은...
요행도 뭘 해놓고 바라는 거고 기적도 노력한 사람에게 오는 거예요"
도전이 아니고 시도였습니다.
시작을 했으니 뭐라도 해보고자 하는 작은 시도.
성과를 바라진 않았습니다. 그저 성취감이면 좋겠다 정도였죠.
아니, 그렇잖아요.
좋아하는 거 시작했는데 마침 도전 과제가 하나 있는 거예요.
최소 열다섯 편의 글. 남은 기간은 20여 일!
결과야 뻔하더라도 태어나 처음으로 기간과 컨셉을 정해놓고
열다섯 편의 글을 지어 보는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죠.
글 재주가 없으니 엉덩이라도 책상머리에 붙이고 앉아
그저 쓰고 지우고 읽고 지우고 그리고 다시 쓰고.
어설픈 단어와 문장들을 맞는지 틀린 지도 모른 체 그저 쓰기만 했죠.
어느 분이 얘기하셨나요?
쓸 때는 그저 쓰기만 하다가 쓰고 나면 달콤하다고 하셨나요?
쓸 때는 맛도 모르겠다가 쓰고 나니 그제서야 쓰던걸요.
'흠, 쓴맛이 이런 건가. 쓰는 맛이 이런 건가..'
그래도 '이게 맞아?'라는 의심보단 어쨌든 써보자라는
뻔뻔한 용기였을까요.
열여섯 편의 글을 지어 작품 하나가 생겼고 이 작은 시도는,
올해 제게 일어난 '가볍고 하찮지만 소중한 기적'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응모까지 가는 건 너무했죠?
'가만있자. 파둔 쥐구멍이 몇 개는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이건 흑역사일까요? 아닐 거예요.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죠.
잘된 역사가 있어야 흑역사가 있듯 흑역사라 말하는 것도 나중일이겠네요.
음, 나중이라... 이왕 이렇게 된 거 뻔뻔스럽기로 합니다.
희망 없이 사는 거 힘드니까요.
나만의 리그면 어때요.
작은 성취감이 생겼고 시도한 덕분에 나만의 성과도 생겼잖아요.
비록 작고 하찮은 기적이지만 하나를 만들었으니 두 번째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잘 쓰진 못해도 꾸준히 쓰는 건 잘할 자신도 생겼으니 또 다른 시도를 해봐야겠죠.
써보고 싶어지는 글들을 쓰려는 시도 만이라도 계속할 수 있다면
쓰는 맛도 모르겠고 쓰고 나면 여전히 쓰지만,
나에게도 누군가에게도
은근한 단만이라도 느껴지는 정도만 된다면
이 또한 저에겐 작은 기적일 것 같아요.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는 공간 속 그리고 지금 이 시간 속에서
수없이 많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겠죠.
어제 없던 이야기들이
나름의 애씀으로 작품이 되어 피어나고 있으니까요.
저 역시 오늘 '가볍고 하찮지만 소중한 기적' 하나가 추가되었습니다.
약 3개월 전, 아니 그 보다 오래전 그저 해보고만 싶었던
나의 글을 오늘 이렇게 또, 쓰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다 한 꼭지, 작가님들의 글을 읽다 한 꼭지,
커피를 마시고 귤을 까먹으면서 한 꼭지씩 쓰고 있는 지금.
이렇게 크리스마스의 소소한 기적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흠, 늦은 밤, 붕어빵의 달콤함이 지금의 즐거움을 빨리 접으라고 합니다.
뇸뇸 먹으며 홀짝홀짝 마시며 이미 이루어진 기적을
그 속에 담기 이야기들을 읽어야겠습니다.
아실까요? 이글이 읽히는 것 자체가 저에겐 기적입니다.
고맙습니다.!!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 몰라 기적'의 도입부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아마도 장래의 직업을 적어오라는 숙제였겠죠.
저 학생은 아이돌 그룹의 이름을 적어 제출했나 봅니다.
선생님이 한마디 하죠.
'장래에 무슨 직업을 희망하냐가 질문이야.
야구선수라면 모를까 직업을 '이치로'라고 하진 않잖아'
저 소년의 답은 이거였을 것 같아요.
'꿈을 이룬 사람'이 되고 싶은 거라고.
진짜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기적은
꿈을 꾸는 사람에게만 생기겠죠.
놓지 말자고요. 파이팅!
info.
영화_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2011년
좋아하는 문장_ "은근한 단맛이 중독성이 있다고 할까"
결말_ 아이들의 기적을 위한 여행은 많은 기적을 만들었습니다.
epil.
24일 저녁부터 쓰던 글을 25일 새벽에 마무리하고
쥐구멍을 파느냐 발행하지 못했습니다.
막상 발행하려고 하니 너무 창피하고 뻔뻔스러운 거 있죠?
마늘하고 쑥도 열심히 먹어 볼 테니
성탄절 특사 정도로 봐주시면 안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