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들의 행성

시어머니는 외계인

by 흑곰아제

퇴근해서 집에 오니 오늘 저녁 메뉴는 수육이다.

며칠 전부터 삼겹살 먹고 싶다는 며느님을 위해서 준비하셨단다. 어머니표 수육은 쫀득쫀득 맛이 좋다.

식당을 운영하셨던 경험이 있기에 어떻게 하면 고기가 더 부드러운지 잘 아신다.

어머니가 실력 발휘를 하는 날은 무서운 날이기도 하다.

[특별식]이 제공되고 늘 뒤에 따라붙는 “이렇게 좀 해줘 봐라!”라는 말 때문이다.

여러 번 얘기했지만 난 칼질도 서툴고 요리도 못한다.

“어머니, 집에서 번거롭게 안 하고 그냥 시켜먹으면 편해요.”했다가 늘 따가운 눈총을 받지만, 내 생각은 변함없다. 정육점에 가서 힘들게 고기를 가져와 핏물을 빼고 삶고, 예쁘게 썰어서 접시에 놓을 때까지 반나절이 걸리는 일이다. 이걸 귀찮아하고 시간 낭비라 생각하는 내게 어머니는 항상 나쁜 엄마, 나쁜 와이프, 나쁜 며느리라는 굴레를 씌우신다.

“시켜먹는 거는 몸에 안 좋은 조미료 넣고, 어떻게 조리되었는지도 모르는데 그걸 애한테 먹이니?” 라시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어머니도 식당 하셨잖아요. 어머니처럼 ‘내 자식 먹인다’하는 맘으로 하는 분들도 많으세요. 그리고 요즘 음식은 엄마 손 맛 아니고 조미료 맛입니다. 중요한 건 제가 하는 요리보다 시켜먹는 게 더 맛나요'라고 대꾸하고 싶지만 꾹 참는다.

‘그래 얻어먹을 수 있을 때 한 점이라도 더 먹자’하는 맘에 크게 쌈을 싸고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해주시는 음식 얻어먹으면서 말이 많은 거 안다. 그래도 기왕 해주신 거 웃으면서 “맛있게 먹어라”해주시면 감사할 텐데. 집안일하시고 “오늘은 좀 힘들었다”시면 매일 다리 주물러 드리는 손에 힘이 빡! 더 들어갈 텐데.

늘 내게 보상을 바라신다.


어머니는 내게 바라시는 게 많다. 그것도 내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것들로 골라서 바라신다.

예쁘고 조신한 며느리, 요리 척척 살림꾼 며느리, 콧소리 내는 애교쟁이 며느리, 아이들 척척 낳고 키우는 슈퍼 며느리, 그리고 돈 벌어오는 며느리.

예쁘고 조신한 것은 태어날 때부터 포기고, 요리 척척 살림꾼 며느리는 해도 늘어나지 않는 요리실력에 나도 좌절 중이다. 콧소리 내는 애교쟁이는 비염이 없어서 힘들다. 감기라도 걸리면 가능하려나? 아이들 척척 낳고 키우는 슈퍼 며느리는 남편과 나의 문제로 딸아이 하나 낳아서 어머니가 키워주시니 이것도 물 건너갔다. 유일하게 지키는 게 돈 벌어오는 며느리인데 보통 부부가 맞벌이하는 집은 남편도 반반 육아부담이며 집안일해줘야 하지 않나? 왜 시어머니는 나한테 몇백 년 전 며느리들의 조건들은 얘기하시면서 아들인 남편에게는 의무를 얘기하지 않을까? 집안에 조립을 하거나, 고치는 일도 나를 부르시고, 운전을 하는 일도 남편은 절대 못하게 하셔서 장거리 운전을 하며 힘들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여자의 일이라고 얘기하면서 시키시고 아들은 귀하니 남자의 일이라고 여겨지는 것도 나보고 하라시는 건 어느 행성 법도인가? 어머니 행성의 법도는 그런가 보다.

여자가 모든 일을 하고 남자는 누워서 노는 걸까? 아! 어머니 행성은 밀림의 왕 사자 행성인 것일까?

수컷 사자는 암컷이 사냥해온 먹이를 먹고 돌아다니다가 아기 사자 한 번 괴롭혀보고 자는 게 일이라던데,

암컷은 사냥하고 아이 키우고 영역 관리하고 바쁘다던데 말이다.

근데 어머니, 수컷 사자가 나이 들고 힘이 없어지면 암컷 사자가 버린대요. 그건 아시는 거죠?


남편은 나와 성격이 반대다. 요리에 관심이 많고 조용히 앉아서 하는 일을 좋아한다. 서로가 잘하는 것은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게 마음 편하고 행복할 텐데. 요리를 못해 구박받는 나를 보는 남편도 마음이 편하진 않을 테고 그런 남편을 보는 어머니 마음도 편하진 않으시겠지?

그냥 잘하는 거 잘하는 사람이 하면서 살고 싶다. 여자. 남자 따지지 말고.

요리 잘하는 남편이 요리하고 운전 잘하는 내가 운전하면 안 되나? 못하는 거 요리를 억지로 하면서 손가락 부들거리며 베일 필요도 없을 텐데, 운전대 붙잡고 브레이크를 밟는 발을 부들부들 떨 필요도 없을 텐데 말이다.


아! 입이 터져라 수육을 먹다가 갑자기 생각났다.

이 수육은 분명 내가 삼겹살이 먹고 싶다고 해서 해주신 거였다.

난 삼겹살이 먹고 싶었고, 남편이 이번 주 금요일에 삼겹살을 사주겠다 굳게 약속했는데...

“이번 주 금요일에 삼겹살 사주는 거지?” 하며 물으니 남편 대신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

“돼지가 욕한다. 이거 먹었음 되었지 뭔 삼겹살이고?”

어머니 삼겹살이 어떻게 수육이랑 같아요?


전 삼겹살이 먹고 싶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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