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과 빈곤층이 겪는 기후리스크에 대하여
봉준호 감독의 2019년 영화 "기생충(Parasite)"에서도 한국 사회의 수직적 계급 구조와 함께 작동하는 기후 불평등의 메커니즘이 잘 녹아들어 있습니다. 영화는 "비는 부자에게는 운치이지만 빈자에게는 재난이다"라는 메시지가 3년 뒤인 2022년 8월에 서울을 덮쳤고 이는 기후위기와 기후불평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영화 "기생충"은 공간과 날씨를 통해 계급의 위계와 재난의 불평등을 시각화한 영화입니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지형적 고저 차가 뚜렷하며, 이는 종종 사회적 지위의 고저와 일치합니다. 영화 중 박 사장의 저택은 고지대에 위치하며 외부의 소음과 먼지로부터 철저히 격리된 부유한 동네에 위치해 있습니다. 반면 기택의 가족이 사는 곳은 도시의 가장 낮은 곳인 반지하 저택이며 먼지와 소음이 들어오는 저지대입니다.
영화 속 폭우는 이 빈부격차의 차이를 적나라게 표현합니다. 부유층인 박 사장의 아내는 지인과 통화 중 "비가 와서 미세먼지가 다 씻겨 내려가서 날씨가 너무 좋다"라는 대사를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본인의 집에서 일하는 기택의 가족이 전날 밤 침수로 집을 잃고 체육관에서 잠을 잤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합니다. 기택의 가족에게 폭우는 홍수로 모든 것을 잃고 똥물(오수)이 역류하여 변기 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며 희망을 잃은 모습까지 보입니다.
영화 "기생충"이 개봉하고 3년 뒤인 2022년 8월 8~9일, 서울에는 시간당 141.5mm, 이틀 누적 451mm라는 기상 관측 이래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이때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한 일가족 사고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기택의 가족처럼 반지하였고 영화 속 내용처럼 폭우로 빗물은 순식간에 도로를 넘어 창문과 현관으로 들이닥쳤습니다. 문 안팎의 수압 차이로 현관문은 열 수 없었고 창문은 '방범창(쇠창살)'으로 막혀 있어 탈출하지 못하여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같은 시각, 서울의 부촌인 서초구 강남역 일대도 물바다가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아파트, 상가의 1층과 지하층은 물에 잠겼으나 그 한복판에 위치한 '청남빌딩'은 완벽하게 침수를 막아냈습니다.
이 빌딩은 1994년 준공 당시부터 지형이 낮고 침수 가능성까지 고려하여 접이식 스테인리스 방수문(차수막)을 설치했기에 침수를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2022년 폭우 당시 건물 앞 도로는 성인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고 차들도 떠다녔지만, 차수막 뒤편의 주차장은 매우 안전했습니다.
청남빌딜의 사례는 자본을 가진 주체가 사적인 투자를 통해 공공 재난으로부터 자신을 격리하고 보호할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이는 공공 인프라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각자도생'의 사회 원리가 재난 상황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보여줍니다.
한국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이 밀집된 곳 중 한 곳인 강남역 일대는 2010년, 2011년, 2022년 반복적으로 침수 피해를 입었음에도 부동산 가격은 오히려 상승했습니다. 강남이라는 입지가 가진 교육, 교통, 일자리의 가치가 기후 리스크를 압도하기 때문입니다. 강남의 부유층에게 침수는 일시적인 불편일 뿐,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반면, 침수 피해를 입은 반지하 거주민들은 가재도구 소실과 집수리 비용으로 인해 경제적 파산 위기에 몰립니다.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침수 트라우마로 인해 더 열악한 쪽방이나 고시원으로 밀려나는 '주거 하향 이동'을 겪게 됩니다. 재난이 빈곤의 굴레를 더욱 강화하는 것입니다.
기후불평등 - 기후위기의 제공자와 피해자는 일치하지 않는 모순
2020년 이후, 한국은 폭염, 폭우, 폭설 등 자연재해가 더욱 강해졌습니다. 문제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부유층의 피해보다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빈곤층의 피해가 훨씬 크다는 것입니다. 동자동 쪽방촌 주민들의 연평균 탄소 발자국은 3.98톤으로 조사되었고 이 수치는 한국인 1인당 평균(12.11톤)의 약 1/3 수준이며, 세계 평균(4.55톤)보다도 낮습니다. 자가용이 없고, 소비 활동이 극도로 제한적이며, 냉난방 에너지를 거의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전 세계 상위 1% 부유층은 하위 50%보다 100배 이상의 탄소를 배출합니다. 그러나 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과 폭우의 치명적인 피해는 탄소 배출에 책임이 거의 없는 쪽방촌 주민과 반지하 거주민들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정부의 대응이 이전보다 많아졌으며 다양한 단체에서 목소리를 내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심해지는 기후위기 상황에서 기후약자에 대해 더 많은 정책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