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는 유난히 길었다. 수탁사에서 업무협약 기준서를 개정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내용을 살펴보니, 기존 기준서와 다소 차이가 있긴 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그것이 “누가 옳고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차이에 가까워 보였다. 어느 쪽이든 서로의 입장을 조금만 조정하면 합의가 가능한 사안이었다. 그래서 나는 수탁사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상부 보고를 위해 최고결정권자인 상무님을 찾아갔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예상치 못한 반응을 마주했다. 상무님은 내 얘기를 다 듣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내가 잘못했다고 말했다. 목소리는 단호했고, 표정은 완강했다. 수탁사의 요청이 옳고 그르다를 떠나, 내 태도 자체를 문제 삼는 듯한 기류였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나는 그분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예전 팀장 시절, 나는 상무님을 존경했다. 융통성이 있었고, 다방면을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의견을 들을 줄 알고, 상황의 맥락을 읽을 줄 아는 리더였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은 그때의 상무님이 아니었다. “내가 정답이고, 나머지는 틀리다”라는
확신으로 가득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섭섭함과 함께 복잡한 생각에 빠졌다. “사람이 어쩌다 저렇게 변할까.” 권력이 사람을 바꿨을까, 아니면 내가 그때 보았던 것이 착각이었을까. 어쩌면 두 가지가 모두일지도 모른다. 젊은 시절에는 융통성으로 평가받던 사람이, 결정권자가 된 뒤에는 단호함으로 평가받기를 원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단호함이 언제부터인가 고집으로 굳어져버리면, 그때부터는 존경이 실망으로 바뀐다.
나는 잘한 것도, 못한 것도 있었다. 수탁사의 요청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맞았는지, 더 강하게 우리 입장을 고수했어야 하는지는 여전히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확실한 건, 그 순간 나는 ‘상무님의 권위’를 아니라 ‘과거의 상무님’을 떠올리며 내심 기대를 걸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기대가 무너질 때 찾아오는 씁쓸함이 오늘 하루를 더 길게 만들었다.
조직에서 일한다는 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변하고, 관계는 달라진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상사가 되고, 존경이 실망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 속에서 나는 여전히 내 역할을 다해야 하고,
나만의 기준을 지켜야 한다.
오늘은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이 감정을 기록해두는 이유는 단순한 하소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이렇게 쓰며 내 감정의 결을 다시 들여다본다. ‘왜 화가 났는지’, ‘왜 섭섭했는지’, ‘왜 실망했는지’를 글로 옮기다 보면, 그 속에서 내 자리와 내 기준이
조금씩 또렷해진다.
언젠가 이 글을 다시 읽을 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날 나는 실망했고, 씁쓸했지만, 그 감정을 발판 삼아 더 단단해졌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