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만연한 "가짜공부"와 "가짜노동"에 대하여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이러한 관점은 자신이 경험한 분야 또는 관심 있는 분야로부터 형성되죠. 예를 들면 저는 학생으로 살아온 16년과 강사로 살아온 11년이라는 시간이 맞물려 교육에 있어 독특한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최근에 읽은 책 "가짜노동"을 바라보았고, 이를 한국의 교육과 연관지어 봤어요.
근대산업사에서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프레더릭 윈즐로 테일러는 단순 노동을 감시하고, 분석하여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경영 모델을 만들었다. 하지만 테일러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러한 모델이 화이트칼라에 적용되며, 수많은 가짜 직책을 만들어냈다. 감시자를 다시 한번 감시한다던지, 평가하는 직책들이 생겼다. 그들은 회사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아무 의미 없이 프로젝트 팀을 구성하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를 위해 또다시 프로젝트에 투입될 인력이 고용되며 악순환은 반복된다.
노동의 대부분은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허영으로 가득하다. 상사에게 보여주기 위한 업무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의미 없는 회의를 하는 등 많은 회사에서는 불필요한 노동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본인이 하는 일이 정말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이 가짜노동이라고 고발하지 못한다. 또는 알고 있음에도 여러 이유로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경우 자신의 노동에 의미를 부여하며 합리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가짜노동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교육 문화에서 시작되지 않나 싶다.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많은 학부모와 학생은 타인의 관점에 얽매인 삶을 살아간다. 이러한 문화는 누군가와 비교하는 문화, 1등만 기억하는 문화를 유발한다.
E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중에 "엄마 뇌 속에 아이가 있다"를 보면 많은 한국 부모는 자식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내측전전두엽이 활성화된다. 내측전전두엽은 보통 자신을 판단할 때 활성화 되는 영역이다. 학부모는 아이의 실패가 곧 자신의 실패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학원을 보내면 따라서 보내야 마음이 편하고,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초조해한다.
실제로 학부모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학부모가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생각보다 "잘 못한다", "부족하다" 등의 부정적인 단어를 많이 쓰며 본인이 더 불안해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학생과 가장 가까운 관계인 학부모, 특히 매일 옆에서 보는 어머님들의 의견은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마음으로 부정적인 말을 하며 보챈다면 학생들은 자신을 위한 공부가 아닌 부모님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를 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가정이 아닌 획일화된 고등 의무교육에서 심화된다. 학생은 본인의 선택과 관계없이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공부를 하게 된다. 시스템의 프로세스가 정해져서 굳이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의무교육은 경쟁심리와 결합되어 거대한 사교육 시장을 만들어냈다. 이제 학부모나 학생은 남들보다 앞서나가기 위해 더 어릴 때, 더 많은 공부를 시키려고 한다. 10년간 봐왔던 대부분의 학생들은 항상 일주일 내내 바빴다. 학교, 학원, 과외, 과제로 꽉 찬 그들의 시간표는 쉬는 시간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도대체 왜 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시작하는데 학원에 앉아 있는 시간은 점점 더 길어지는 걸까?
과연 시간표가 꽉 찬 수많은 학생들은 학원에서 앉아 있는 만큼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을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학부모도 이미 알고 있다. 심지어 "학원을 보내는데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직접 말하는 학부모도 많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비슷한 해결책을 내놓는다. 학생이 다니는 학원을 바꾸거나 학원을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공부를 하는 주체인 학생이 공부하는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본질적인 것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나는 1년간 10층 건물 전체가 학원인 대형 영재센터에서 근무했다. 중학생들이 학교가 끝나자마자 와서 저녁 10시까지 수업을 들었다. 물론 주말에도 예외는 없었다. 이미 고등학교 과정을 끝내고, 대학과정을 배우는 학생들도 있었다. 학원에는 성적순으로 반을 3개로 나눴는데, 나는 각 반에 들어가서 그들의 꿈을 물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꿈은 없거나 "○○공학자(또는 개발자)"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이 말한 직업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높은 성적을 유지하는 학생들은 구체적인 꿈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공부를 하는 이유가 명확했다.
이후 몇 년 간 과외와 멘토 역할을 하며 만나는 중, 고등학생에게도 물어봤지만 그 결과는 비슷했다. 이는 대학에 입학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쌓인 관성이 그들을 같은 방향으로 밀고 있기 때문이다.
10년간 가짜공부로 트레이닝된 학생들은 직장에 들어가서 수많은 가짜노동을 보고, 빠르게 배운다. 한국에서는 연차가 쌓이면 팀장급 직무를 맡는 문화가 있다. 이렇게 가짜노동을 배운 팀장들은 또 다른 가짜노동을 만든다.
팀장은 결정을 내리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직책이다. 하지만 오래도록 가짜노동에 노출된 팀장들은 결정을 내릴 용기가 부족하다. 그들은 결정을 늦추거나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기 위해 불필요한 회의를 열고, 어떠한 것도 결정하지 않으며 다른 직원들에게 수많은 보고서를 요청한다.
또한 팀장이 경영이 아닌 리더십에 심취해 있다면 그들은 잘 나가는 선임이나 유명인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한다. 직원들과 수다를 떨며 그들의 의욕을 고취시킨다고 생각하고, 불필요한 회식 시간을 갖고, 하루를 통째로 쓰는 체육대회를 열 것이다. 문제는 이런 팀장은 자신이 팀을 잘 이끌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악순환이 되어 팀원들은 또다시 가짜노동에 노출된다. 회사에는 팀장의 결정장애로 인한 가짜노동, 리더십 포르노에 의한 가짜노동 말고도 수많은 가짜노동 사례가 존재한다. 그래서 더 문제가 된다. 회사 구성원이 가짜노동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하루빨리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해야 한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기업도 알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은 새로운 경영 모델을 채택한다. 문제는 모델은 혁신되었지만 예전 관습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는 익숙한 것을 편하게 생각하는 기성세대의 문제일 수도 있고, 가짜노동을 들키지 않기 위한 직장인들의 저항일 수도 있다. 혁신에 구성원들이 적응하지 않는다면 아래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독일의 어느 65세 엔지니어는 2012년에 은퇴할 때, 관리자와 동료들에게 자신이 1998년 이후 아무 일도 하지 않았음을 고백했다. 그는 업무의 전면적 재편성, 능률화 및 세련화, 책임 분산제 등이 자신의 일을 점차 빼앗아갔고 나중에는 실질적으로 할 일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퇴사하기 전까지 이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가짜노동
가짜노동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가정에서의 교육부터 바뀌어야 한다. 많은 학부모가 어떻게 하면 학생이 공부를 잘할 수 있는지 묻는다. 사실 그들도 답은 알고 있다. 학생 스스로가 공부하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 스스로도 노력해야겠지만 학부모도 노력해야 한다.
학부모는 조급해하지 말고, 학생을 신뢰해야 한다. 신뢰는 굉장히 중요하다. 신뢰가 없으면 수많은 가짜노동이 생기는 것처럼 가장 가까운 학부모의 신뢰가 없다면 학생들은 수많은 가짜행동을 하게 된다.
학부모는 학생들이 좋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는 조언가의 역할을 자처해야 한다. 하지만 학생이 납득할 수 있는 조언을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하다. 조언을 했다면 한 걸음 물러서서 그들의 선택을 응원하고, 선택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이게 하자.
직장인들은 일을 왜 하는지 의미를 찾아야 한다. 일을 하는 목적이 회사를 위함이 아니어야 한다.
의사는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일하지 자신의 직장인 병원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다.
변호사는 정의를 위해 일하지 자신의 법무 법인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다.
교사는 사회의 미래를 위해 일하지 특정 학교를 지키는 게 임무가 아니다.
- 가짜노동
이렇듯 하던 일을 되돌아보고, 다시 의미 있는 일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혹시 가짜노동을 하고 있지 않나 돌아보고, 선언하라.
"나의 가짜 노동을 선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