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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4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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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영 Jul 20. 2021

나 20대인데. 요즘 내 동년배들. 100분 토론 본다

  5월이 깊어가던 어느 날, 재학 중인 학교의 커뮤니티가 심상찮게 들썩였다. <100분 토론>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현 당대표)과 신지예 한국 여성정치 네트워크 대표가 GS25 광고 포스터 논란에 대해 토론한 날이었다.

  나와 나이대가 비슷한 수많은 학생들이 <100분 토론>의 내용에 대한 의견을 나누느라 게시판이 불타는 광경이 생소했다. 고등학생 때는 시험공부에 집중이 안 될 때 “시험기간에 보면 100분 토론도 재밌다.”라는 농담이 속담처럼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곧 평소에는 <100분 토론>을 재밌게 보는 걸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우리에게 <100분 토론>은 세파에 시달린 ‘진짜 어른들’만이 관심을 가지는 프로그램으로 느껴졌다.

  그랬던 <100분 토론>을 클립으로라도 챙겨보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눈에 띄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고등학생 때보다 몇 살을 더 먹어서 머리가 굵어졌기 때문일까? 프로그램 차원에서도 뭔가가 바뀌고, 어떤 노력이 기울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출처: MBC 홈페이지


   <100분 토론>의 프로그램 소개에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대담하고 젊은 토론을 지향하는 토론 프로그램’이라고 쓰여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고정관념’은 무엇을 가리킬까? 그리고 ‘대담하고 젊은 토론’은 어떤 토론을 말할까? <100분 토론>은 정말로 ‘대담하고 젊은 토론’을 진행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어떤 부분에서 그런가?

  <100분 토론>이 지금까지 구성한 몇 가지의 티저 영상들에서 <100분 토론>이 생각하는 ‘대담하고 젊은 토론’의 조건을 엿볼 수 있겠다. 티저들은 ‘부먹 VS찍먹’, ‘트와이스 VS 레드벨벳’ 등 젊은 층에게 장난스러운 논쟁거리가 되는 주제로 구성되기도 했고, MBC의 시트콤에 나왔던 장면들과 유명한 밈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는 불필요한 격식과 무게는 덜어내고, 좀 더 흥미롭고 동적인 토론을 꾸리고자 하는 의도를 전한다. ‘토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경직되고 무거운, 혹은 재미없고 지루한 이미지를 뒤집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100분 토론>은 지향하고자 하는 토론을 실현하고 있는가? 아무래도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주제들 자체가 사회적인 무게를 가지고 있는 만큼, 모든 회를 과감하고 부담 없는 방향으로 끌어나가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래와 같은 유의미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1.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토론 참여자     


  으레 TV에 나오는 토론이라면 정치인이나 교수를 비롯해 굉장히 한정된 몇 개의 집단만이 참여할 것 같다. 그런데 <100분 토론>에는 간혹 의외의 인물들이 등장해 관심을 모은다. 교육 불공정과 입시제도 개편에 대한 토론한 849회에서는 인터넷 강의 사이트 대표이자 아프리카 TV BJ 강성태 씨가 등장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등학교 시절 ‘공부자극 영상’으로 한 번쯤 접했을 그는 입시 ‘고인물’답게, 현실적인 입시 상황을 설명하며 학생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또 게임중독을 질병에 포함시켜야 할지 여부를 논의한 827회에서는 유튜브에서 게임 방송을 진행하는 인기 크리에이터인 대도서관 씨가 나와, 다양한 게임을 해본 직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게임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잘 대변했다는 평을 받았다. 


<100분 토론> 849회 캡처                                                                  <100분 토론> 827회 캡처


이처럼 시청자들에게 비교적 친숙한 느낌과 밀착된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토론 참여자들의 등장은 흥미로운 이벤트처럼 느껴지며, 토론에 새로운 느낌을 준다, 학술적인 권위만을 기준으로 꾸려졌을 때보다 논의 내용을 ‘나의’ 문제로 느끼기도 쉬워지고, 지루하게만 느껴지던 토론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간다.          



2. 가감 없는 주제 선정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를 가감 없이 토론장에 올린다는 점도 유의미하다. 사실 시의성 있는 토론 주제를 캐치해 가져오는 건 다른 토론 프로그램도 비슷하게 하고 있으나, <100분 토론>은 그 주제가 얼마나 ‘점잖은지(?)’는 비교적 덜 신경 쓰는 느낌이다.

  이 점은 젠더갈등과 관련이 깊은 주제에서 특히 부각된다. GS25 메갈 논란이나 알페스 논란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루어지는 논쟁이 지상파의 방송에서 정식으로 논의의 대상이 되는 건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100분 토론> 916회 캡처


<100분 토론> 901회 캡처


  사실 많은 사람들이 날을 세우고 있는 젠더갈등을 다루는 것은 그 자체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분 토론>이 젠더갈등과 관련된 주제를 계속해서 과감하게 가져오는 건 큰 의미가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마구 생산되는 격앙된 대화들이 문제 해결을 바라보는 시각을 흐릴 때가 많기 때문이다. <100분 토론>은 익명성 뒤에서 서로를 찌르며 오가던 이야기를 공론의 장으로 올리고, 조금 더 정제된 각자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마련하여 이성의 끈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100분 토론에서 마저 깨 주었으면 하는 하나의 고정관념이 있다. 바로 토론은 ‘무용’하다는 고정관념이다. 학창 시절 때 토론을 하다 보면 항상 각자의 의견이 더 강화되기만 했던 기억이 있다. 각자의 의견을 주장하고 반박을 방어하다 보면, 어느새 ‘이기는 것’이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양측이 억지로 합의에 이를 필요는 없지만, 토론을 하는 이유를 계속해서 되새길 필요가 있다. 토론은 다양한 집단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열고, 문제의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해결방안을 도출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입장 차이를 재확인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100분 토론>을 보다 보면 거의 항상 하나의 쟁점에 대한 양측의 의견이 전개되고 대립하다가, 그것을 다 들은 것에 만족하고 다소 급하게 정리한 후 다른 쟁점으로 넘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서로 다른 입장들은 양립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이렇게 되면 시청자들이 하나의 사회적 주제에 대한 다각적인, 그럼에도 ‘분절적인’ 이해를 갖추도록 하는 것 이상의 결과는 기대하기 힘들다. 

  예를 들어 최근 이준석 씨와 신지예 씨의 토론 역시 젊은 층 사이에서 엄청나게 화제는 되었지만, ‘건설적인 토론을 기대했지만 도돌이표만 있는 것 같아 실망이다. 젠더갈등 해결에 대한 희망이 오히려 없어졌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고정관념을 깨는 토론으로 발전하기 위해 좀 더 건강하고 건설적인 토론을 보여주면 어땠을까? 앞으로는 어떤 문제를 다룰 때 각자의 입장에서 중요한 점을 표현하면서도, 다양한 시각을 종합해 문제 해결에 대한 유의미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두 입장의 간극이 공고화되는, 우리가 익숙한 분위기의 토론이 아니라 공통적인 가치를 발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것이야말로 고정관념을 깨는 토론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100분 토론이 지금까지 극복해온 고정관념, 그리고 앞으로 극복하면 좋을 고정관념을 살펴보았다. 종강도 맞이했는데, 방학 동안 <100분 토론>을 보며 교양 있는 시민으로 나아가는 건 어떨까? 토론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 제시되길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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