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1살에 면허를 가질 수 있었다. 면허 딸 무렵에는 할머니와 재롱을 태워서 멀리멀리 놀러 다니는 것이 나의 작은 목표였다.
면허를 따자마자 스파르타로 운전 연습에 매진했다. 재롱을 태우기 전에 안전하다고 느낄만한 운전 실력을 갖고 싶었다. 제법 익숙해진 이후에는 혼자서도 제법 잘 다녔다. 그럼에도 할머니와 재롱을 태우면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어 뚝딱이가 되었다.
재롱의 안전한 드라이브를 위해 애견용 카시트도 샀다. 처음 카시트가 배송온 날 호기롭게 재롱의 카시트 적응을 돕기 위해 간식으로 훈련을 시켰다.
보통은 시트로 부르고 시트에 조금이라도 들어오면 간식을 주는 걸 반복했다. 집에서는 (모든 걸 낯설어하는)재롱답지 않게 조금 적응되는 듯 했다.
그 길로 위풍당당하게 할머니와 재롱과 시트를 들고 집을 나섰다.
시트 시승식(?)도 해야 한다며 나선 첫번째 외출은 집에서 가까운 종합운동장이었다. 그런데 변수가 있었다. 재롱이 도통 시트에 앉지를 않았다. 차 안 자체가 낯선 게 커서 계속 할머니한테만 안기려고 달려들었다. 가만히 있지 않으면 위험한 차안인데 계속 안절부절 못하며 돌아다니려 했다.
결국 시트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어 재롱 엉덩이만 받쳐줄 뿐이었다. 이후로도 카시트의 위상은 비슷했다. 재롱은 앉지 않으려 발악하고 할머니는 앉히려고 재롱 머리를 꾸욱 눌렀다. 차멀미를 심하게 하는 다른 강아지들과 비슷하게 막 짓거나 울지는 않았는데 차에 오래 타면 헥헥대는 증상이 있었다.
우리 할머니는 TV에 나오는 다른 강아지네 가족처럼 애견 동반 캠핑장이나 펜션에 가보고 싶어하셨다. 그렇지만 재롱은 집을 벗어나면 불안해하는 증상이 조금씩 보였다. 그래서 할머니가 원하던 재롱과의 여행은 결국 가보지 못했다.
영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닌 게 재롱은 심지어 산책 길을 조금만 바꿔 다른 골목길로만 들어가도 꼬리를 바짝 말고 불안해하며 우왕좌왕하는 강아지였다.
그렇지만 재롱이 일정 시간동안은 차를 잘 타줘서 가끔은 애견 동반 카페에 가기도, 조금 먼 동네 공원으로 산책을 가기도 했다. 막상 나갈 땐 귀찮은 일들이 많았다. 사람들만 나가는 것보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가려면 똥츄도, 간식도, 리드줄부터 옷까지 챙길 게 한두 개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꾸준히 할머니와 재롱을 데리고 산으로, 들로 떠났다.
그떄의 작은 여행, 외출들은 지금 생각해도 후회 없는 추억들이다. 그때 나가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에게 이런 추억은 남아 있지 않을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