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지,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2023년 2월 썼던 글을 브런치에도 꺼내본다.
퇴사 전 시점에서 퇴사 후의 시간에 대한 모습을 머릿속에 스케치하게 해 준 책인데, 퇴사 후인 지금 다시 이 글을 읽어보니 또 그런대로 다른 느낌이 들어 가져왔다.
내용보다는 제목에 끌려서 산 책
사실 나는 에세이를 잘 사서 읽지 않는 편이다. 누군가의 에세이를 읽는다고 뭔가 크게 감동받거나 인사이트를 얻거나 하는 일이 적다는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근데 막상 에세이를 읽으면 밑줄 치며 마음에 드는 문장을 수집한다. 외출 전에는 나가기 귀찮아하다가 막상 친구들 만나면 매우 신나게 놀고 들어오는 I 성향 사람처럼 ㅋㅋ
큰 기대하지 않고 읽은 책은 역시 더 맛나고 재밌다.
이 책이 그랬다. '에세이는 역시 크게 남는 게 없어'라는 편견을 깰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의 생각 나무를 키워주는 문장들, 내가 지나온 삶에 대한 작은 위로의 다독임, 일에 대한 권태와 스트레스를 되돌아보게 하는, 언젠가의 퇴사한 뒤의 삶을 꿈꿔보게 하는...
쓰다 보니 에세이에 대해 닫혀있다는 내 말과 다르게 자꾸 칭찬을 하게 되는 것 같으니 지금부터는 추천도서라고 말해야겠다. ㅎㅎ
김신지 작가님의 에세이는 처음이다. 읽으면서 같은 과 선배가 블로그에 잘 기록해 둔 소소하지만 재밌는 일상과 생각 묶음을 하나씩 열람하는 기분이 들었다. 또, 읽으면서 나도 나의 경험들을 '쓰고 싶다'라는 글쓰기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글이라 좋았다. (요즘 업무로 글을 쓰니까 일기 등 개인적인 글을 쓸 마음이 잘 안 생긴다...
감탄!
감탄을 자주 해야겠다는 부분!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감정을 말로 꺼내거나 단어로 정리하면서 그 감정을 더 크게 만들기도 하고 털어내기도 한다. 얼마 전 필라테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말도 떠올랐다. 회원님들이 운동을 잘하다가도 "지금 무릎 괜찮으세요?"라고 선생님이 묻는 순간 '무릎 통증' 등 불편감을 느끼고 인지한다고. 그래서 콕 부위를 짚어 괜찮냐고 묻지 않으려 노력하기 시작했다고. 이렇게 우리의 감정과 느낌이 인지적 영향을 많이 받는다면, 자주 감탄하고 순수하게 좋아하는 일은 분명 삶을 더 풍족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 줄 것 같다.
가령... "와! 이 책 정말 도움이 되는걸?"
오... 정말 이렇게 쓰고 나니 이 책을 읽으며 쓴 시간이 아까보다 더 알차게 느껴진다 ㅋㅋ
그리고 또 좋았던 부분은
안 망했어요,
우리 좋은 실패들을 해요
부분이다.
(나는 part1보다 part2 이후 부분이 좋았다 :)
이유는 내 경험에 대한 토닥임이 들어있어서?
여기에는 저자의 신방과 후배들 이야기가 나온다. 신방과 입학 후 교내 방송국, 아나운서 아카데미, 시사상식 스터디 등을 하며 열심히 준비하다가 일반 회사에 간 후배와 그 외에도 PD를 준비하다 다른 길을 가게 된 사람들. 나를 비롯해 내 주변에도 꽤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
지나온 시간과 노력은
어떻게든 빛을 발하는 순간이 있다
내 전공도 신문방송학이다. 졸업 후 꽤 오랫동안 라디오 PD를 준비했다. 한터에서 안수찬 기자님께 글쓰기를 배웠다. 논술∙작문∙시사상식∙기획∙모니터링 스터디를 누구보다 성실하게 참여했다. 자소서를 쓰고 필기시험을 보고, SBS와 KBS 면접도 여러 번 봤다. 떨어지고 다시 도전하고 이 과정을 반복했다. 진짜 열심히 했다. 그 과정에서 언시생을 위한 책을 낸 중앙일보 기자님은 내 작문을 자기 책에 좋은 글 예시로 싣고 싶다고 메일을 주셨었고, 내가 좋아하던 KBS 윤성현 PD님은 내 논술에 A++를 주셨다. 그러나 이런 성취는 언시판을 떠나는 순간 좋은 추억으로 남을 뿐, 스펙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아무튼 그렇게 다른 길을 걷게 된 나의 시간을 가장 짧게, 쉽게 평가(당)하는 단어는 '실패'였다. 수년간의 노력과 경험이 이력서 앞에선 빈 공간을 담당할 뿐이었다. 언시생으로서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내지 못했으니까. (물론 그 사이 작은 방송국에서 1년 반 동안 라디오 PD로 일하고, KBS와 TBS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했지만... 메이저 방송국의 라디오 PD라는 최종 목표에 다다르진 못했다.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실패'한 시간, 사람이 되고 말더라. 그때의 치열한 노력을 보지도 못했으면서, 무시하는 사람도 만나게 되고 ㅎㅎ
근데, 이 책에서 같은 경험을 가진 사례들을 언급하며 나와 같이 언시를 준비했던 수많은 누군가들의 시간과 노력을 '실패'라고 '망했다고' 말하지 말자고 얘기해 주어 좋았다. 실제로 지금 다른 일을 하면서 그때의 경험들이 도움이 된다. 우리가 지나온 시간과 노력은 어떻게든 빛을 발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30대가 된 후 깨달았다. 간혹 씁쓸할 때는 있지만 더 이상 괴롭거나 슬프지는 않다. 그럼에도 어딘가 남아있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는 실패감, 결국 포기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 받아들여야 했던 패배감. 지쳐버린 마음과 열정, 두려웠던 감정의 흔적들을 향해 작가님이 "괜찮아. 이유가 뭐냐면~~"이렇게 속삭이며 토닥여 주어 고마웠다.
꼭 언시가 아니더라도 이런 경험이 있거나, 포기라는 선택을 앞둔 노력하는 꿈쟁이들에게 위로가 될 책이다. 어떻게 보면 포기하는 것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고시생활은 하다 보면 익숙해지기에 머무르는 것이 더 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음엔 진짜 될 것 같은 아쉬움도 중독성이 있고. 만약, 지금이 돌아설 때라면 좋은 실패를 했다고 생각하고 어서 새 길을 향한 용기를 내자! 최선을 다해 걷고 뛰고 굴러본 우리는 다른 길도 잘 걸어갈 수 있다 :)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면 공시생 출신 환자가 공시생들에게 몇 년 차인지 물어보고 ’딱 포기하기 좋을 때‘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나는 5년을 붙들고 있었는데, 처음 계획처럼 딱 3년 했을 때 돌아섰다면. 좀 더 빨리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수 있었을 텐데 ㅎ 그땐 너무 아까워서, 이제와 다른 길을 갈 용기가 없어 빠르게 돌아서지 못했다. 대신 미련이 하나도 남지 않을 만큼 해봤다.
소리가 들리고 장면이 그려지는
방금 전까지는 너무 TMI 적인 감상이었다. 일반적인 장점을 더 써보자면 소리가 들리고 장면이 그려지는 효과가 있는 글이었다. 특히 작가님의 퇴사 후 일상을 말한 부분에서 유독 이 느낌이 두드러졌다. 아침에 일어나 달라진 공기와 온도를 확인하고, 식물에게 인사하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씻고 나와 원두를 갈고 향을 느끼고 드립 커피를 내리는 여유. 이 모든 장면이 눈앞에 스케치되어 참 좋았다.
특히, 최근에 본 드라마 속 주인공의 주말 아침이 이렇지 않을까 하며 상상하게 되었는데. 드라마 <사랑의 이해>에 나오는 빨강이!(문가영을 처음 접한 캐릭터. 질투의 화신 속 빨강이가 너무 귀여워서 아직도 생각이 안 나면 일단 빨강이라고 외치고 문가영이라는 배우 본명을 천천히 떠올린다.)
사랑의 이해 속 '안수영' 캐릭터가 생각났다.
안수영이 가꾼 작은 베란다 정원, 드립 커피를 마시는 안수영의 모습이 책을 읽으며 함께 그려졌다.
(잠깐 다른 길로 들어가면, 나는 사랑의 이해의 스토리보다는ㅎㅎ 장면 연출과 OST를 좋아한다. 특히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믹스 커피-드립 커피-캡슐머신-전문 에스프레소 머신 이렇게 보여준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아! 이렇게 커피 마시는 모습 하나로 각 사람의 캐릭터와 경제적 상황을 표현할 수 있구나!)
결론적으로
'읽기 잘했고, 시간이 아깝지 않다'라는 느낌의 책이었다.
끝으로 작가님의 학교는 모르지만...
같은 전공의 신방과 선배님! 일기 잘 읽었습니다 :D
앞으로도 시간의 주인으로 행복하시길!!
저도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만 하지 말고, 일하면서도 내 시간을 주체적으로 쓸 수 있도록 주말이든 월차든 알차게 써보겠습니다!ㅎㅎ
마지막으로 책에 대해 쓴다면,
- 가볍다.
- 들고 다니기 좋다.
- 하루면 읽을 수 있다.
- 퇴근 후 후루룩 가능!
- 표지가 예쁘다.
- 제목 좋다.
- SNS 감성에도 어울림!
그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