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벽
초임 첫 해, 귀여운 3학년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듬해, 이제 초임 딱지 뗐으니 6학년으로 승격했다.
요즘 아이들과는 사뭇 다른 6학년이었기에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선생님 말씀이 법이고 진리임에 토를 다는 아이는 없었다.
반항이라고 해봤자 공부시간에 두 다리를 책상 안에 가지런히 넣지 않고 한 다리를 바깥으로 빼놓고 삐딱하게 앉는 것이 다였다.
선생님의 심부름을 '황공무지로소이다'로 받아 앞다투어 자랑스럽게 실행에 옮기는 귀여운 녀석들이었다.
그런데, 딱 하나 요즘 아이들보다 심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도벽'이었다.
물론 대다수의 아이들은 정직하기에 황금보기를 돌같이 했다.
요즘에 비해서 물질적으로 빈곤하고 모든 물자가 부족하다 보니 사는 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이 많았다.
형편이 좋지 않다고 모두 도벽이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물질에 대해 탐나는 마음을 품기 쉽고, 그것이 범행으로 이어질 확률이 좀 더 높다는 것이다.
실제 내가 맡은 아이 중에 '대도'가 있었다.
내가 '대도'라는 섬뜩한 별칭을 붙인 것은 그 아이의 활동 무대는 아이들의 책가방을 넘어서 교사들의 가방까지 털었기 때문이다.
여선생이 둘이었기에 선배 아니면 내가 표적이었다.
선배의 가방에서 월세를 내려고 찾아 놓았던 거금이 감쪽같이 사라져서 온 학교가 발칵 뒤집어졌다.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기에 그 아이와 방과 후 독대하고 앉았다.
안 그래도 왜소한 아이가 내 앞에 찌그러져 있다.
왈칵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분노 같기도 하고, 애증 같기도 하고, 측은지심 같기도 한 복잡 미묘한 심정이었다.
"뱅글아, 선생님은 네 눈만 보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보여. 우리 솔직하게 말하자."
"뱅글아,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지만 뉘우치고 반성하고 행동을 바꾸면 돼."
눈알만 뱅글뱅글 돌리며 나를 간 보고 있는 아이에게 뜬구름 잡는 취조 아닌 애걸을 하고 있다.
그 이후, 정직에 대한 여러 가지 속담과 예를 주절주절 주워 담았다.
종국에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 나무를 벤 후, 아버지께 정직하게 말씀드려 도리어 칭찬을 받고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해서 대통령까지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당시 아이들은 그래도 순진한 구석이 있었기에 마음을 움직여 보려는 노력을 시도한 것이다.
"선생님, 잘못했어요. 제가 가져갔어요."
1시간이나 지난 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사실을 인정했다.
물론 그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었다는 것은 이후에 계속된 범행으로 증명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격렬한 포옹과 등짝이 아프도록 두드려 주는 것이다.
"그래, 그래. 용기 내줘서 고마워. 우리 뱅글이가 이제 다른 사람이 되는 거야. 훌륭해."
한바탕 호들갑스러운 칭찬과 감격의 눈물을 흘린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돈은 어디에 있니?"
"땅에 파 묻었어요."
"응? 어디인 지 찾을 수 있는 거지?"
선배와 나는 뱅뱅이가 가자는 곳으로 따라갔다.
학교 운동장 구석의 나무 아래를 가리켰다. 갖고 간 호미로 땅을 팠다. 없다.
"아, 여기가 아닌가 봐요."
다시 교내의 몇몇 장소에 우리를 끌고 다녔고, 우리는 열심히 땅을 팠다. 어디에도 돈은 없었다.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우리는 뚜껑이 열릴 데로 열렸고 멘붕이 왔지만 끝까지 침착함과 평정심을 유지하며 '잘 생각해 봐.'만 읊조렸다.
그렇게 똥개 훈련시키듯이 교사 2명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던 뱅뱅이는 드디어 결심한 듯이 폭탄선언을 했다.
"어디에 숨겼는지 까먹었어요."
우리는 동시에 꽥! 고함을 질렀다.
"뱅뱅아! 너 이놈!"
남자 선생님이었다면 볼기짝 태형이나 업어치기감이었다.
지금도 뱅뱅이의 번들거리던 눈빛이 생생하고, 짱돌 돌아가는 소리가 덜거덕덜거덕 들린다.
그렇다.
뱅뱅이는 우리를 갖고 논 것이다.
결국 학교에서 제일 무섭다고 정평이 나서 아이들이 오금을 저리는 팔용선생님께 말씀드렸다.
단 10분 만에 진짜 돈을 숨긴 곳을 불었고 선배의 피 같은 돈은 고스란히 찾았다.
시퍼런 배춧잎이 여러 장이었기에 차마 사용할 용기와 배짱은 없었나 보다.
그 이후에도 우리 반에서는 크고 작은 분실 사고가 일어났고, 암묵적 합의로 뱅뱅이의 가방을 뒤지면 지우개, 연필, 공깃돌, 딱지, 가끔 코 묻은 동전도 찾을 수 있었다.
공부는 지지리도 못하고 흥미도 없으면서 학용품은 왜 그렇게나 많이 훔치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뱅뱅이는 조손가정이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가출하셨다.
할머니와 둘이 사는 뱅뱅이는 사랑에 굶주렸고 배까지 곯았다.
허리가 90도로 굽은 할머니와 비가 새고 무너져 내리는 흙집에서 살았다.
급식도 없던 시절이라 도시락은 고사하고 건빵 몇 개와 맹물로 점심을 때울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발육이 늦어서 또래에 비해서 키가 작고 깡말랐다.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남자아이들이 쉬는 시간만 되면 열광하던 축구에도 끼지 못했다.
뱅뱅이는 한마디로 자의던 타의던 외톨이였다.
어떤 어려움도 '도벽' 행위에 대한 이유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학교에 오면 할 일이 없고 지루하다 보니 자기가 제일 잘하는 쓱싹의 소질을 나날이 발전시켜 간 것이다.
자기에게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도 눈에 들어오면 습관처럼 훔쳤던 것이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처럼 한 두 번 재미를 들인 뱅뱅이의 간은 클 대로 커져서 선생님의 가방까지 손을 대게 된 것이다.
그렇게 1년을 '대도와의 전쟁'을 겪으며 선생님과 아이들은 각자 자기 물건을 단속하고 '견물생심'이 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는 것으로 뱅뱅이의 도벽에 대처했다.
시간을 내서 뱅뱅이와 대화를 많이 나누고, 푼돈도 몇 푼 쥐어 주며 먹고 싶은 과자를 사 먹으라고 했다.
그래도 뱅뱅이에게도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 있었는지 담임인 나의 가방은 털지 않았다.
'대도'의 상도덕인 셈이다.
그리고 졸업을 하고 차츰 잊혀 갔던 뱅뱅이.
세월이 흐른 후에도 매스컴으로 접하지 않은 것을 보면 더 큰 범죄의 세계로는 빠지지 않았나 보다.
요즘 아이들은 학용품이나 과자 나부랭이는 발길에 차여도 주워 가지 않는다.
모든 것이 풍요롭고 물자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아이들은 물건에 대한 아쉬움과 욕심이 없다.
오히려 자기 물건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각 교실마다 분실함에는 멀쩡한 학용품이 쌓이고, 방송 조회 때마다 분실물 방송을 해도 찾아가지 않는다.
너무 좋은 옷들과 가방도 주인이 찾아가기를 기다리지만 대부분은 그냥 폐기된다.
그렇기에 '도벽'이라는 사건으로 교실을 혼란에 빠지게 하는 일은 없다.
그 옛날, 외롭고 쓸쓸했던 뱅뱅이가 훔친 것은 물건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이 아니었을까.
뱅뱅이의 인생이 스틸족에서 기버족으로 환골탈태했기를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