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 독서제
몇 년 전, 방송에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슬로건을 내 걸고 전 국민 책 읽기 프로젝트를 방영한 적이 있다. 그 당시 국민 MC 김용만 씨와 현재 국민 MC가 된 유재석 씨의 메뚜기 시절에 활약한 프로그램이다.
2001년 11월 ‘느낌표’의 코너로 시작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는 2004년 1기로 막을 내리기까지 25권의 책을 소개했다. 당시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된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되고 판매량 1위에 오르는 등 파급력을 자랑했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방송해 화제를 모은 MBC ‘느낌표’의 코너인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가 종영 후 21년 만에 부활한다. 26일 MBC 측에 따르면 ‘2025 책을 읽읍시다’는 27일부터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다. 최근 MBC는 유튜브 채널 ‘14F’(일사에프)에는 ‘책책책 is back★ 2025 특집으로 돌아온 책책책!’이라는 제목의 티저 영상을 공개해 관심을 끌어올렸다. 공개된 영상에서는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의 원조 MC 김용만이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은 시민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 등이 담겼다.
인터넷 기사를 접하니 45년 전 우리 반에서 실시했던 책 읽기, 엄밀하게 따지면 책 읽히기 했던 일이 떠올랐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 당시 아이들이 비슷하듯이 집에서 읽을 책은 교과서와 참고서 외에는 거의 없었다. 그랬기에 늘 독서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내가 국민학교 시절, 고학년이 되면서 항상 도서부원으로 자원하여 도서실에서 독서에 대한 포원을 풀었다.
그렇기에 내가 맡은 6학년 아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알려 주고 책 읽는 습관을 길러 주고 싶은 열망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학기 중에는 '독서 오름길'이라는 표를 등사하여 국책에 붙여 놓고 내가 읽은 책을 한 줄 평과 함께 써나갔다.
나의 어린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은 환경들이었기에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아이들이 많았다.
게 중에는 책을 보기를 돌같이 하면서 책과의 거리 두기를 철저히 하는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한다면 하고, 안되면 되게 하는 투지와 한 치의 허점도 용납하지 않는 초짜의 정석이었다.
1주에 1권의 목표량은 채우지 못하면 '나머지'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달아야 했다.
아이들의 모두 귀가한 교실에서 '나머지 책 읽기'를 했던 것이다.
국어나 수학을 '나머지 공부'하는 것은 봤지만 책 읽기 나머지는 처음 봤다고 옆 반 선생님은 웃으셨다.
우리 반으로 낙점된 본인의 운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목표량은 채우며 아이들은 책 읽기의 즐거움에 한 걸음 다가갔다.
문제는 여름 방학이었다.
요즘처럼 방학 중에 도서실을 개방하지 못했다. 사서선생님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교사 중에 도서실 관리라는 업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업무는 나의 것이었지만 아이들을 방학 때 학교로 불러 내는 것은 많은 위험이 있다. 고민 끝에 도덕 시간에 배운 북한의 '5호 담당제'를 벤치마킹했다.
'리'단위로 5명씩 조를 짜고 순번을 정한다.
각자 2권을 대출했다. 아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 도서' 목록을 정해 주고 필독 도서가 반드시 1권 이상 포함되어야 했다.
5일 동안 내가 대출한 책 2권을 모두 읽는다.
5일 되는 날 자기 번호 뒷 번호 아이집을 방문하여 내가 읽은 책을 준다.
나는 앞 번호 아이의 책을 받는다.
이렇게 5번을 돌고 나면 10권의 책을 모두 읽을 수 있다.
방학 첫날부터 시작하여 25일 동안 릴레이 책 읽기가 진행되는 것이다.
30일이 되는 날 10권을 완독 할 수 있는 것이다.
조장을 중심으로 운영방법이나 교체 시기는 변경 가능했다.
머리를 굴리고 굴려 '5호 독서제'를 공표했을 때, 아이들의 탄식 소리가 내 마음을 조금 무겁게 했지만 여기서 멈추면 프로가 아니지.
바로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얘들아,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 많이 들었지? 여름 방학 동안 나의 길을 찾아가는 작업을 책을 통해 한 번 해 보자고요."
13살 아이들이 알아듣기에는 선문답 같은 말이었지만, 느낌 아니까 아이들은 우렁찬 대답으로 나를 안심시켰다.
한 달여의 방학이 끝나고 개학날이 되었다.
아이들은 계획대로 10권의 책을 모두 읽었을까?
출근길에 가슴은 두방망질 친다.
'여름이 농촌에서는 바쁜 시기이니 애들이 못 읽었더라도 노여워하거나 실망하지 말자.'
집안일을 많이 거들어 주던 아이들이었기에 한가하게 책을 읽을 시간이 여의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삼삼오오 교실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표정이 밝았다.
'오홀, 책을 잘 읽었나 보네?'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학 동안 밀린 이야기를 하느라 교실이 한바탕 왁자지껄했다.
일기장, 방학책, 독서록, 곤충채집, 식물채집, 그리기, 만들기, 줄넘기, 기타 등등.
요즘에는 학원이다 여행이다 영어연수다 하면서 방학 동안 해야 할 일들이 많고, 각자의 방학은 알아서들 잘 보내고 있으니 굳이 학교에서 숙제를 많이 내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모든 교육이 학교와 교사에서 시작되었기에 긴 방학을 허송세월할 수 없으니 방학 숙제가 많았다.
하나 둘 제출하는 아이들 틈에 가끔 이 빠진 아이도 있었지만 대체로 잘해 왔다.
이제 마지막, 독서록 제출과 대여했던 책을 반납하는 시간이 되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여학생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남학생 중 도저히 여러 가지 이유로 과제 수행이 힘든 아이 3명을 제외하고 모두 완수했다.
한껏 올라간 어깨와 건방진 표정으로 성공을 과시했다.
한글도 제대로 떼지 않은 영원이가 책을 다 읽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더니,
"선생님, 우리 조장이 매일 우리 집에 와서 나와 같이 책을 읽어 주었어요."
그랬다.
조장인 책벌레 순재가 영원이를 도와 미션을 수행한 것이었다.
나는 ' 쌍 엄지 척!'을 무한대로 발사하며 두 녀석을 무차별로 껴안았다.
"얘들아, 니들 정말 장하다. 나는 니들이 잘해 낼 줄 알았어. 그래, 책 속에서 너의 길은 찾았니?"
"선생님, 글자만 읽기 바빠서 길은 못 찾았어요!"
평소 짓궂은 소리를 잘하는 희성이의 말에 폭소가 터졌다.
"그래, 그래. 희성이 말이 맞아. 지금 길을 찾았다고 말하면 진정성이 의심스럽지? 물론 길을 찾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책 읽기가 좋다는 건 확실하게 느꼈지?"
"네!"
절대 공감의 외침이 내 귓전을 얼얼하게 때렸다.
"선생님, 친구들과 책을 돌려 읽으니까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같은 책을 읽으니 이야깃거리가 많아서 친구 사이가 더 좋아졌어요."
언니처럼 의젓하고 문학소녀인 경숙이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래, '5호 독서제' 대성공이다!'
겨울 방학에는 늘어난 방학 기간에 맞게 1인 대출 권수를 3권으로 늘렸다.
여름 방학과는 달리 탄식은 사라지고 오히려 대출 권수를 더 늘리자고 설레발을 치는 아이도 생겼다.
물론 그 아이는 친구의 서늘한 눈총을 맞아야 했지만.
모든 것이 부족하기에 '책 읽기'가 사치일 수 있던 아이들에게 책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할 가장 좋은 친구이자 길라잡이라는 것을 알게 한 씨앗이 되었다.
1년 동안 우리 반 아이들의 대출수가 전교 1등을 지켰으며 각종 독후감 대회에서 상을 타는 쾌거도 이루었다.
긴 세월이 흘러 그 당시 제자인 광석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그때 책 읽는 습관을 만들어 주신 덕분에 저는 독서광이 되었어요. 슬플 때도 힘들 때도 책은 나의 친구가 되어 주었고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 되어 주었습니다. 책 1만 권을 읽으니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되더라고요. 이 모든 것이 모두 선생님의 '독서 5 호제'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