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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현찰

가을, 꽃에 반하다

by 정유스티나

꽃이 싫어서 그런 건 아니다.

꽃을 사는 돈이 아까웠다.

그 돈이면 몇 끼의 굶주림을 채워 주는 식량이 되었다.

꽃, 그까짓 거 안 본다고 죽는 건 아니지.

첫사랑 그 녀석이 장미꽃 한 다발을 내 품에 안겨 줄 때도 이 돈이면 우리가 분식집에서 먹을 떡볶이와 군만두가 몇 개냐고 눈을 홀겼다.

마지막 사랑이 된 남편이 청혼하면서 결혼식장에 세울 만큼의 큰 화환을 싣고 나의 자취방을 두드렸을 때도 이 돈이면 겨울 코트를 하나 사겠다며 면박을 주었다.

결혼기념일이나 생일이라고 꽃다발을 들고 오는 남편에게 누누이 얘기했다.

"여보, 꽃 대신 현찰! 머니 머니 해도 머니가 최고야~꽃, 그것 며칠이나 본다고 쓰레기 처리도 힘들어요."

흠..............................................................................................................................................

나, 참 사하라 사막처럼 건조했다.

신혼이 끝남과 함께 우리 집에서 꽃은 그림자도 찾기 힘들었다.

오다 주웠다는 자잘한 선물은 때마다 남편 손에 들려 있었지만 꽃은 실종했다.

'잘하고 있어! 꽃, 다 쓰잘 데 없는 낭비야. 내가 꽃인데 또 뭔 꽃을?'

급기야 꽃과 동일시하는 망언으로 가슴 깊숙이 넣어 둔 아쉬움을 치환했다.

밥 먹는 것이 더 소중하고 긴박했기에 꽃 보기는 외면했다.

꽃을 건네는 연인들의 행복한 모습이나 식탁을 장식하는 화병 속의 꽃은 소설 속이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나 존재하는 장면이었다.

그건 팔자 좋고 여유 있는 사람들의 향유라고 헛헛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꽃이 끼어들 자리에 늘 현찰이 대신했다.


어느 날인지부터 '꽃'이 눈보다 마음에 먼저 들어왔다.

철마다 어찌 그리도 다채로운 꽃들을 끊임없이 피워 내는지.

꽃향기는 또 얼마나 나를 취하게 하는지.

진정 난 몰랐다. 아니 외면하고 살았다.

새삼 자연의 위대함과 정교함에 감복하는 날이 나에게도 왔다.

내 인생의 절기도 딱 가을을 맞이한 지금, 가을꽃이 만발했다.

단발머리 학사 언니인 '김상희'의 코스모스가 이렇게 예쁜 꽃인 줄 진짜 깜짝 놀랐다.

시골길을 달리면 그 여린 몸을 교태롭게 흔들며 반기는 코스모스는 보호본능이 생기게 한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를 닮은 꽃, 국화는 이제 나를 닮았다.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을 다 겪으며 화려함은 다 벗겨 버리고 순백의 색으로 피어나는 국화를 닮고 싶다.

성당에서 성전을 장식하는 모임인 '헌화회'에 가입했다.

매주 꽃을 다듬고 만지며 꽃에 파 묻혀 평생 못해 본 호사를 누린다.

미사 중에 성전 앞에서 향기를 뿜고 있는 꽃에서 신의 모습, 신의 어머니 모습도 보인다.

꽃이 있기에 성가는 더욱더 성스럽고 기도는 더 깊이 간절하다.

신이 수많은 꽃을 참으로 다양하게 지으신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꽃, 그까이꺼가 아니었다.

쓸쓸해지는 가을 풍경 속에서 꽃이 없었다면 얼마나 삭막했을까.

마치 꽃보다 현찰을 외치던 젊은 날의 나처럼.

중년 여성들의 휴대폰 프로필 사진은 꽃으로 도배한다.

이제 이 꽃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하는 처연함도 한몫하지만 일단 꽃이 너무 예쁘다.

길가에 핀 이름 모를 작은 꽃은 더욱더 애틋하다.

마치 인생의 황혼에 들어서 존재감이 점점 미미해지는 나 같아서 반드시 눈인사를 건넨다.

너 거기 힘차게 피어났구나. 잘했어, 장하다 장해.

이 세상에 꽃이 사라진다면 무채색 혹성으로 변한 지구에서 인간은 뿔 달린 외계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현찰보다는 꽃이다!



꽃밭.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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