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이후, 달러를 빨아들인 진짜 블랙홀을 찾아서
환율 그래프를 펼쳐보자. 2022년의 급등은 미국의 금리 인상이라는 '외부 태풍' 때문이었다. 태풍이 지나간 2023년 초, 환율은 안정을 찾는 듯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2023년 초를 기점으로, 특별한 위기가 없는데도 환율은 계단식으로 꾸준히 올라 1,470원에 도달했다.
언론은 이 기이한 상승의 원인을 "애국심 없이 미국 주식을 사는 서학개미"에게 돌린다. [1] 1997년 외환위기를 국민의 과소비 탓으로 돌렸던 그 서늘한 데자뷰다. 과연 그럴까?
2023년 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34개월간 대한민국에서 사라진 달러의 행방을 5가지 핵심 통계로 추적해서 4개 그룹을 용의자 선상에 올렸다. 4개 그룹의 용의자는 ①서학개미(개인 투자자), ②국민연금(연기금), ③해외 직접 투자(FDI, 기업), ④수출 대기업(거주자 외화예금) 이다. 누가 진짜 범인인가?
ㆍ사실 확인1: 한국예탁결제원(SEIBro) 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이후 서학개미들의 월평균 순매수(주식+채권) 규모는 약 17억 달러 수준이다. 2023년 처럼 오히려 주식을 팔아 달러를 가져온(순매도) 해도 있었다.[2]
ㆍ사실확인 2: 보유액의 착시. 언론은 보관액이 1,000억 달러를 넘었다고 서학개미를 비난한다. 하지만 이는 주가가 폭등해서 불어난 '평가 이익(Valuation Gain)'이 포함된 수치다. 예를 들어 엔비디아 주가가 3배 오르면 보관액은 3배가 되지만, 추가로 유출된 달러는 '0원'이다. 불어난 계좌 잔고를 나라에서 빠져나간 외화로 둔갑시키는 착시에 속으면 안 된다.
ㆍ비교 분석(한국은행 외환거래 동향):
2023년 1분기부터 2025년 3분기 까지 외환시장의 하루 평균 현물환 거래량은 약 276억 달러다. [3] 개미들이 한 달 내내 사들인 17억 달러를 영업일(20일)로 나누면 하루 0.85억 달러다. 이는 시장 하루 거래량의 고작 0.3%에 불과하다.
"하루 거래량의 0.3%에 불과한 먼지 같은 수요가 3년간 환율을 350원(30%) 넘게 끌어올렸다"는 주장은 통계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서학개미는 죄가 없다.
ㆍ사실확인 (국민연금 기금운용현황):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자산은 2023년 약 534조 원에서 2024년 700조 원(131%)대로 급증했다. 자산 배분 목표를 맞추기 위해 국민연금이 시장에서 환전해야 하는 달러(신규 투자분)는 월평균 약 30억~40억 달러(환율 1,350원 적용)로 추산된다.
ㆍ비교 분석:
이는 서학개미 월평균 매수액(17억 달러)의 2배에 달하는 규모다. 국민연금 입장에서 수익률 방어를 위한 해외 투자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의도가 어찌 되었든, 그들이 매달 40억 달러를 사들이는 행위가 환율 하단을 높이는 '물리적 상수'로 작용했다는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국민연금의 '물리적 상수'는 환율 시장에서 '거대한 밀물'처럼 작용했다.
ㆍ사실확인 (한국수출입은행 통계):
2023~2024년은 현대차 조지아 공장, 삼성 테일러 공장 등 한국 대기업들의 '미국 투자 러시'가 정점에 달한 시기다. 통계에 따르면 이 기간 해외 직접 투자액은 연간 약 660억 달러에 달했다. 이 간동안 유출된 금액을 월평균으로 환산하면 약 55억 달러가 매달 빠져나갔다.[5]
2023년부터 2025년까지 해외투자 총액은 1,616억 달러다. 이 금액은 서학개미 투자금액(585억 달러)의 2.76배 이다.
ㆍ비교 분석:
기업들이 공장을 짓는 데 쓰는 돈(47.5억 달러)은 투자한 만큼 해외로 완전히 유출되어 회수되지 않으며, 이는 나중에 달러로 회수 가능한 주식 투자액(17억 달러)의 2.8배가 넘는다. 2023년 이후 원화 약세의 '가장 큰 구멍'은 서학개미의 해외 주식 매수보다는 이처럼 영구적으로 해외 유출되는 기업들의 해외 투자 자금이다.
ㆍ사실확인 (한국은행 거주자외화예금):
환율이 오르면 달러를 팔아 이익을 실현할 것 같지만, 기업 심리는 반대였다. 2025년 기준 거주자 외화예금 잔액은 평균 약 800억 달러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 중 86%가 기업 돈으로 추산된다.[6]
ㆍ비교 분석:
수출 기업들은 달러를 벌어도 원화로 바꾸지 않고 금고에 잠가버렸다(Lock-in). "나중에 환율이 더 오르면 그때 바꾸겠다"는 심리 때문이다. 그래서 달러 환율과 비례하게 외화예금 액수가 증가하고 있다. 시장에 달러 공급이 말라버린 이 현상이야말로, 미미한 개미들의 수요보다 훨씬 강력하게 환율을 밀어 올렸다.
2023년 이후의 환율 상승은 "개미들의 일탈" 때문이 아니다. 환율 상승은 크게 두가지의 요인이 기여했다.
1. 구조적 유출: 미국에 공장을 지어야 살아남는 기업 환경(FDI)과, 수익률 방어를 위해 해외로 나가야 하는 연금(NPS)이 '만성적인 달러 수요 우위'를 만들었다.
2. 공급의 실종: 환율 상승을 기대한 수출 기업들의 '달러 잠그기'가 결정타를 날렸다.
서학개미들이 국내 주식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난 건, 환율을 올리기 위한 투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이 구조적 모순의 가장 큰 피해자에 가깝다. 그들은 환율을 올린 주범이 아니다. 무너지는 원화 가치 속에서 내 가족과 미래를 지키기 위해, 1,470원이라는 살인적인 '고환율 비용'을 묵묵히 감내하며 힘겹게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생존자들일 뿐이다.
차가운 심장으로 '코스피 4,100'을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코스피 4,100' 덕분에 유동성이 늘어난 것은 맞지만, 이것은 대박이 아니라 '본전 치기'에 불과하다. 환율이 1,100원에서 1,500원으로 36% 폭등했기에, 주가가 40% 올라도 달러 환산 가치는 제자리걸음이다. 만약 주가가 오르지 않았다면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헐값'에 팔려나갔을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우리는 지금 성장해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원화'라는 가라앉는 배 위에서 수면 아래로 잠기지 않기 위해 위쪽으로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다.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지 마라. 시스템이 지켜주지 못해 떠나는 개미들에게 돌을 던지지 마라.
[주석]
[1]조선일보 환율상승 서학개미 탓?… 정부, 증권사까지 소집
[2]증권정보포털(SEIBro)-국제거래-외화증권예탁결제-전체내역
[4]국민연금 해외투자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