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 없는 걸음도 의미가 된다

헤매는 발끝에도 삶은 깃든다

by 마음쉘터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나요?”
누군가 내게 그렇게 물은 적이 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 질문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한동안 나는 목적 없는 길을 걸었다.
정해진 방향도 없었고,
지도가 알려주는 목표도 없었다.
내 안에는 오직 ‘이 자리에 머무를 수 없다’는 감각,
어딘가로 떠나야만 한다는 흐릿한 열망만 있었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그렇게 걷는 거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그 말엔 어떤 확신이 깃들어 있다.
방향 없는 걸음은 무의미하다는 신념.
헛디딘 삶은 낭비라는 단정.

하지만 나는 안다.
방황도 걸음이다.
길을 잃었다는 건
적어도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가만히 주저앉아 침묵하는 것보다,
어디든 발을 내디딘다는 건
이미 ‘살고자 하는 의지’다.

나는 한때 길을 정확히 알았다고 믿었다.
계획은 촘촘했고,
달성해야 할 목표들은 시간표처럼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삶은,
지도를 비웃듯 방향을 바꿨다.
모든 계획이 무너지고,
나는 미로 같은 하루 속을 걷게 되었다.

처음엔 두려웠다.
내가 틀렸던 것일까,
아니면 세상이 나를 밀어낸 걸까.
혼란은 자책을 낳고,
자책은 삶을 마르게 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삶은 정확해야 할 이유가 없다.
길은 정해진 선 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방향 없는 걸음에도
그 나름의 진실이 있다는 걸.

어느 날, 나는 도시의 오래된 골목을 걷고 있었다.
딱히 목적은 없었다.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도 못했다.
그저 걷고 싶었다.
그 순간,
골목 사이로 쏟아진 노을빛이
나의 방황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건 단지 풍경이 아니었다.
삶의 작은 축복이었다.
“네가 어디로 가든,
그 걸음에도 의미는 존재한다”고
노을이 내게 말해주는 듯했다.

그 이후로 나는
길을 잃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길은 만들어지는 것이고,
방황은 그 길의 일부라는 걸
조금씩 배워갔다.

우리는 늘 ‘올바른 방향’에 대해 강박을 느낀다.
정답처럼 주어진 삶의 루트.
그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마치 실패자인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당신이 헤매고 있다면,
그건 여전히 걷고 있는 증거라고.
무작정 나아가는 그 발걸음이
언젠가는 길이 되어 돌아온다고

방황은 우리의 감각을 깨어나게 한다.
지도에 없는 세계를 걷기 때문에,
우리는 주변을 더 민감하게 바라보게 된다.
불확실성은 예민함을 낳고,
예민함은 삶의 세부를 깨닫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길 위에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뜻밖의 깨달음들을 만난다.
길가에 핀 작고 수줍은 꽃 한 송이,
자신처럼 방향을 잃은 이의 얼굴,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내가 진짜 원했던 건 무엇이었나’라는 질문.

어쩌면 인생이란
애초에 정해진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길 위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헤매며 스스로를 확인하고,
돌아섬 속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는다.

나는 지금도 가끔
방향 없는 걸음을 걷는다.
목적 없이 집을 나서고,
정처 없이 거리를 맴돈다.
그러나 그 길 끝에서 늘
무언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때로는 낯선 책방의 문구,
때로는 오래된 카페의 음악,
때로는 우연히 만난 사람의 웃음.
그건 목적지에선 결코 만날 수 없는 것들.
오직 ‘방황 속에서만’ 마주치는 선물들이다.

방향 없는 걸음도 의미가 된다.
그건 삶이 우리에게 말하는 방식이다.
“길이 없어 보여도 괜찮아.
걸어가는 그 자체가 너의 방향이니까.”

우리는 어쩌면
정답을 향해 걷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만의 문장’을 써내려가기 위해
한 걸음씩 흔들리며 나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 것.
지금 당신의 걸음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면,
그건 당신이 가장 인간답게
살고 있다는 증거다.

당신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 한,
그 길은 이미 충분하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그 모든 방향 없음이
사실은 당신을 가장 정확하게
당신에게로 이끌고 있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