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를 위한 시간

<나이듦의 온도> 시리즈 10 (8)

by 이민자의 부엌

나는 오랫동안 나를 미뤄 두고 살았다.


캐나다로 이민 온 뒤에도 삶은 늘 바빴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고, 나 자신을 위한 여유 있는 시간은 좀처럼 갖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그것이 특별히 아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족을 챙기고 해야 할 일을 해내며 살아가는 것이 어른의 삶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며 살았다.
가족의 필요, 주변의 기대, 누군가의 부탁, 누군가의 감정까지.
그 모든 것을 챙기느라 정작 ‘나’라는 존재는 늘 뒤로 밀려 있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삶의 순서라고 여겼다. 부모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먼저 쓰며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잠시 나를 뒤로 미뤄 두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시간은 사람의 생각을 조용히 바꾸어 놓는다.


큰 소리로 가르치지 않고, 서두르지도 않은 채, 삶의 방향을 조금씩 다른 쪽으로 돌려 놓는다.


나이듦은 내게 단순하지만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지금 어떤 삶의 자리에서 시간을 지나고 있는가.”
“내 마음은 지금 어떤 온도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추어 섰다.


캐나다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더 바빴다.
낯선 언어의 소음 속에서 하루의 문장을 만들어야 했고, 익숙하지 않은 문화 속에서 삶의 방향을 다시 배워야 했다. 아이들을 키우고 생계를 이어가며 살아가는 일만으로도 하루는 늘 빠르게 흘러갔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늘 ‘해야 하는 일’ 에 집중하며 살아왔다.
하루가 끝나면 몸은 지쳐 있었고, 마음은 다음 날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어떤 날은 하루를 마치고 조용히 앉아 있어도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느끼기 어려울 만큼 피곤했다.


그러던 어느 시기, 나는 마흔아홉의 나이에 다시 학교에 들어갔다.
아이들을 거의 다 키워 놓은 뒤였다. 그때부터 여섯 해 동안 나는 칼리지와 대학을 오가며 공부를 했다.


겨울밤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시간이 아직도 떠오른다.


창밖에는 눈이 조용히 내리고 있었고, 캠퍼스의 불빛은 희미하게 번지고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남아 공부하던 학생들은 대부분 내 자녀들과 비슷한 또래였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조용히 책장을 넘기며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곤 했다.


내 인생의 시간도 이미 지나간 것이 아니라,
어쩌면 또 다른 길 위에 서 있는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때 처음 들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는 걸까.”


그 질문은 성적이나 학위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삶을 다시 배우는 시간에 가까웠다.


낯선 언어로 문장을 읽고 새로운 생각을 배우며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던 길.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걷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시간이 나를 조금씩 바꾸고 있구나.”


그때의 나는 여전히 바빴지만, 이전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


나를 돌보지 않으면, 아무리 이타적인 마음으로 살아도 진심을 나누는 힘이 약해진다는 것을.
내 마음이 비어 있으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어딘가 공허하고, 몸이 지쳐 있으면 따뜻한 마음을 품고 있어도 그 온기가 멀리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를 위한 시간은 사치가 아니라, 삶을 이어가기 위한 밑거름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아주 작은 방식으로 나만의 시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침 햇살이 부엌 창문을 통해 조용히 스며드는 시간.
나는 커피포트를 올려놓고 물이 끓기 시작하는 소리를 가만히 듣는다. 따뜻한 김이 천천히 올라오고, 부엌 안에는 은은한 온기가 퍼진다.


그 몇 초의 고요함이 하루의 시작을 부드럽게 열어 준다.
시간은 길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이 흩어져 있던 내 마음을 다시 나에게 데려다 놓는다.


책을 펼쳐 몇 페이지를 읽고 차를 마시며 창밖을 바라보는 시간.
눈이 쌓인 겨울 아침, 마른 나무 위에 내려앉은 이름 모를 빨간 새 한 마리가 잠시 숨을 고른다.


새는 잠시 머물다 다시 날아가고, 그 뒤에는 조용한 겨울 공기만 남는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겨울의 따뜻한 온도를 마음속으로 천천히 들이쉰다.


들숨만큼 내 마음에는 여유가 생기고, 잠시 잊고 있던 중심이 돌아온다.


또 어떤 날은 산책을 한다.
특별한 목적지 없이 천천히 걸으며 마음을 풀어 놓는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고, 나무 사이로 햇살이 흔들리며 길 위에 떨어진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아, 지금 이 순간이 나를 살리고 있구나.”


지금은 자녀들이 결혼과 직장으로 독립하며 우리 부부만의 시간이 생겼다. 이전에는 늘 누군가를 챙기느라 나를 돌아볼 틈이 없었지만, 이제는 나만의 시간을 조용히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


그 순간은 거창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자랑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들이 내 마음을 다시 채우고 삶의 속도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이 시간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만난다.


젊은 시절의 나, 이민 초기의 불안했던 나, 그리고 지금 조금은 단단해진 나.


그 모든 시간이 한 사람의 삶 속에서 이어져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문득 조용한 감사가 마음속에 스며든다.


과거의 나를 부정하지 않고, 지금의 나를 억지로 꾸미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는 시간.


그 시간은 나를 조금 더 자유롭게 한다.


예전에는 나를 위한 시간이 어딘가 이기적인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누군가를 위해 써야 할 시간을 나에게 쓰는 것이 괜히 미안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타인의 기대와 시선을 잠시 내려놓고,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
그 단순한 행동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조금 더 부드럽게, 그리고 조금 더 나답게 만든다는 것을.


이민자로 살아온 삶은 늘 조율의 시간이었다.
언어와 문화 사이에서 나는 늘 조금씩 맞추며 살아왔다. 때로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걸어야 했고, 때로는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삶의 속도를 늦추어야 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배웠다.


나를 위한 시간이 있어야 내 중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을.


오늘도 나는 나를 위해 차 한 잔을 끓인다.
토론토의 겨울 햇살이 창밖 바로 앞까지 와서 잠시 머문다.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나는 다시 나와 만나고, 내 삶의 온도를 조용히 맞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천천히 속삭인다.


“오늘, 나를 위한 시간 속에서
나는 나를 잃지 않고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살아간다.”


이제는 안다.


나이듦은 삶이 식어가는 시간이 아니라
삶이 무엇으로 따뜻해지는지를
비로소 알아가는 시간이라는 것을.


어쩌면 나이듦이란
삶의 온도를 천천히 배워 가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오늘,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조용히 말하고 싶다.


당신의 삶 속에도
잠시 멈추어 서 있는 작은 시간이 있기를.


그 고요한 순간 속에서
당신의 마음 또한
자신만의 따뜻한 온도를 발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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