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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서스 Apr 26. 2024

하이브-어도어 사태 : 창작은 만능 치트키가 아닙니다

(지난 편에 덧붙여 씁니다.)


전체 카테고리를 '웹소설 소재 모음집'으로 잡았는데, 하이브-어도어 사태는 이 전체 주제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추후 기업물을 쓰게 되면 일부 소재로 활용할 수는 있겠지만 당장 구체적인 시나리오가 나오는 건 아니죠.


그렇긴 한데, 일단 사회적으로 꽤 주목받는 이슈이기도 하고 / 또 우리나라 창작자들('크리에이터'라고 퉁치는 유튜브 영상 제작자들 포함)이 의외로 저작권 등 법률적 권리에 무관심하고 가끔 그러다가 과잉보호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어서, 기왕 얘기 나온 김에 좀 더 써 보려 합니다.


글 중에 특정 개인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 들어가겠지만 그래도 실명 거론하겠습니다. 실제로 진행된 기자회견을 사실 중심으로 옮긴 후 그에 대해 제 평가를 덧붙이는 거라서 비방목적 등이 전혀 없습니다.


우선 팩트부터 정리하죠.



1. 어도어 대표이사 민희진의 기자회견


화려한(?)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회사 대표이사'가 이런 식의 기자회견을 한 적이 있었나 싶네요.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어도어 탈취 및 걸그룹 뉴진스 빼돌리기 시도 의혹에 대한 해명

: 부대표와 카톡으로 대화한 건 농담일 뿐이다. 난 월급쟁이 사장일 뿐이고 결국은 직원이다. 직원이 농담으로 회사 비난하는 것도 안 되냐?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드는 건 너무 악의적이다.

(변호사 추가발언)

본 건은 실행의 착수가 인정되지 않고, 예비 단계에도 이르지 못했다. 업무상 배임은 예비죄를 처벌하지 않을 뿐더러 아예 구체적인 준비행위조차 없었으니 더더욱 문제될 게 없다.


- 대표이사 해임 시도 및 뉴진스 컨셉 모방에 대한 해명

: (일부 과격한 표현은 삐리리 XX 처리하기로 하고) 내 능력을 다 빼먹고 버리려는 거다. 개저씨들이 유능한 나를 착취했다. 내 능력을 이용할 대로 이용해 먹고 내쫓는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소위 즙짜기 신공 추가)


자, 이게 '회사 대표이사'의 기자회견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평가는 항을 나누어서 서술하겠습니다.



2. 회사 대표이사가 할 소리인가?


(1) 회사 망치겠다는 소리를 '농담'이라고 한다


우선 비슷한 지배구조 회사들로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하이브-어도어 관계는 삼성물산-삼성전자 관계와 비슷합니다. 물론 지분구조 등은 많이 다르지만

1) 모회사(하이브, 삼성물산)가 자회사(어도어, 삼성전자)의 최대주주인 점

2) 자회사 쪽이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모회사 이상으로 잘 나가고 돈도 잘 벌며 주목받는다는 점

에서는 유사합니다.



자, 그럼 민희진 대표의 발언을 삼성전자에 비유해 볼까요?


삼성전자의 현재 대표님(사장님)이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삼전 대표님이 개인적으로 친한 부사장~전무와 카톡으로 대화를 나눴다고 해 봅시다. 대충 "아이 CXXXX 삼성물산 이 허접이들이 조낸 깐족거리네 우리가 훨씬 잘 나가는데 확 그냥 삼물 따위 제껴버리고 우리 삼성전자만 독립해서 따로 나갈까?" 정도겠죠.


그리고 이 카톡 대화가 감사에 걸렸습니다. (지금은 없어졌다고 하지만) 삼성그룹 전체를 총괄하는 감사팀이 소명을 요청했는데... 삼성전자 대표 왈,

"아니 C발 농담이에요. 회사 대표이사도 바지사장 월급쟁이 직원인데 농담으로 회사 비난도 못 합니까? 농담한 거 가지고 사람을 죽이려고 하네. 거 참 치사빤쓰."

라고 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삼성물산의 개인 최대주주이자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있는 자연인 재드래곤(재용) 회장님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1) "어익후 삼전 대표님 말씀 들어 보니 농담도 참 잘 하시네. 그래요 바지사장 월급쟁이 직원이면 농담으로 회사 독립시키겠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죠. 계속 농담 잘 하시고 삼성전자 더 크게 발전시켜 주세요. 능력 있는 바지사장님만 믿습니다. 허허허."

라고 대답할까요?


(2) "구체적인 실행행위가 있었느냐 마느냐 하는 건 경찰 검찰 법원에서 다투셔서 재주껏 무죄 받으시고 일단 대표이사가 그런 농담을 하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대표이사의 성실의무에 위반되는 거니 바로 해임하겠습니다. 삼성전자 주총 소집하고 해임 안건 상정할 테니 그 전에 사직서 제출하시던가, 아니면 해임 결의 받고 나가시던가. 결정하세요. 아 물론 형사고발은 별도로 진행합니다."

라고 할까요?



이 사안이 삼성전자 사안이었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2)번입니다. 당연히 가상의 삼성전자 대표를 옹호하고 쉴드 치겠다는 인간도 등장하지 않았을 거예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회사 대표를 맡은 사람이 저런 농담을 하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자격상실 요건이라는 걸 누구나 다 인정할 겁니다.


그런데... 소위 아티스트 세계에서는 좀 다른가 봅니다. 저 헛소리를 '월급쟁이 바지사장의 농담이었다구욧 빼애애액!'으로 밀어붙이는 아티스트가 있고, 그 아티스트를 쉴드치겠다는 인간이 꽤 많이 나옵니다. 알바 동원했을 리는 없고 정말로 동조하는 것 같습니다.


장난하세요? 회사 경영이 장난으로 보입니까?


세종 변호사 말대로 구체적인 준비행위가 없었다면 '형사처벌'은 안 받겠죠. 살인 강도 등 별도로 예비음모를 처벌하는 범죄가 아닌 이상 예비행위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고, 업무상 배임은 예비행위 처벌 규정이 없으니 카톡에서 논의한 것만으로는 형사처벌 안 됩니다. 별도 추가 증거가 없는 이상 업무상 배임은 '미수가 아닌 예비음모 수준'으로 끝났다고 평가되어 무혐의/무죄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민법~상법의 영역에서 '대표이사의 성실의무 위반'을 평가하는 건 다르죠. 저 정도 헛짓거리를 했으면 대표이사 자리에서 해임시킬 만한 이유로는 충분합니다.

농담이라도 상관없어요. 저런 농담을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이 대표를 맡으면 안 됩니다. 코딱지만한 동네 중소기업도 그렇게는 안 합니다.



저건 당연히 해임 사유가 됩니다.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는 백수들 + 자칭 아티스트 내지 크리에이터들이 피의 쉴드를 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주주들이 판단할 때 저런 마인드로는 회사 대표를 하면 안 되겠다고 결의하면 그냥 쫓겨나는 겁니다.



<* 추가 : 5. 30. 가처분 인용 관련 내용을 추가합니다.>


제가 4. 26. 이 글을 쓸 때 '당연히 해임 사유가 된다'고 썼는데, 이 전제는 상법 385조 1항입니다. 상법 385조 1항은 '언제든지' 주총 특별결의로 이사를 해임할 수 있어요. 물론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 '너 기분나쁘게 생겼으니까 해고!'라고 하진 않을 테니 적당히 이유를 달긴 하겠죠.


그런데... 민희진 측이 제기한 가처분이 인용되어 버렸습니다. 자신만만하게 상법에 근거하여 예측했었는데 어긋나 버렸네요;;


물론 근거가 다르긴 합니다. 언론기사만으로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주주 간 계약'에 근거하여 가처분을 인용한 것 같은데, 해당 계약 조항에 저 상법 385조 1항을 일부 제한하고 명백한 배임행위가 있는 경우에만 임기만료 전에 해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반영된 듯 합니다.


민-상법상 다수 규정은 임의규정이고 계약에서 다르게 정하면 해당 계약이 우선하긴 하죠. 385조 1항처럼 위임계약의 자유해지를 정한 조항은 당연히 임의규정일 겁니다. 계약에서 특약을 정했다면 상법 조항보다 우선 적용됩니다.


뭐, 제3자가 당사자 간에 비밀 유지하고 있는 계약 조항까지 예측하긴 어려웠습니다만... 아무튼 제 예상이 틀리긴 했습니다. 틀린 건 인정합니다.


이제 하이브 측은 전략을 바꾸겠죠. 현재까지의 배임 관련 정황으로는 계약상의 임기보장을 깨기 어렵다고 판단할 테니 다른 방법을 찾을 겁니다. 전 편에 썼던 '합병'도 한 가지 방법이 되겠죠. 혹은 배임 정황을 더 보완하고 별도 사유를 보완하여 가처분인용결정에 대한 불복항고 및 본안에서 엎어버리는 전략을 취할 수도 있구요.


이럴 때 변호사들이 하는 얘기가 있죠. '소송은 자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김&장 지원을 받아도 질 때는 집니다. 하이브가 한 방 먹었네요.




(2) 능력만 빼먹고 버린다? 진짜 그렇게 생각하세요?


흔히 '능력만 빼먹고 버린다'는 말은 '열정페이' 상황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최저임금에 미달하거나 간신히 넘는 수준의 돈을 주면서 월화수목금금금 주80시간으로 부려먹다가 어느 순간 '너부터 나가라.'라고 할 때에 쓸 만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능력에 상응하는 수준의 충분한 보상을 줬다면?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민희진 대표는 대표이사로서의 연봉을 받았을 겁니다. 제3자가 확인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대표 연봉이 5억원 이상이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미 스톡옵션 내지 그 행사에 대신하여 어도어 지분 20%를 취득했다는 게 기사에 나왔습니다. 어도어의 회사 가치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1천억으로만 평가해도 200억원을 벌었다는 얘기죠. 뭐 2%는 직원에게 팔았다고 하는데 그래도 180억원입니다.



이전 글에서 잠시 쓴 대로, 민희진 대표의 개인 창작 역량이 10조 원을 넘는다면 몇백억 수준의 보상은 사소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10조 원 넘는 슈퍼 울트라 캡짱 우주초월 창작굇수의 능력을 푼돈 몇백억에 쏙쏙 빼먹고 다시 내친다면 '능력만 빼먹고 버렸어욧 개저씨들 나빠욧 빼애애액!'을 시전할 만 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이런 평가가 가능할까요?


이 또한 이전 글에 썼듯이, 판사가 3급 공무원으로 시작해서 평생 받을 수 있는 연봉이 세전 기준으로 다 합산해도 20억원 되기 어려울 겁니다. 민희진 대표가 어도어를 키우면서 번 돈의 1/10 ~ 1/20 수준이죠.


자, 민희진 대표가 판사 앞에 서서 '하이브와 방시혁 의장이 제 능력만 빼먹고 버렸어욧 저는 10조원 가치가 있는 슈퍼 아티스트인데 코딱지만한 부스러기 돈 던져 주고 능력 다 빼먹었다구욧! 억울해서 죽을 것 같애 흙흙흙흙!'을 시전한다면? 판사가 뭐라고 할까요?


굳이 위 삼성전자 사례처럼 (1), (2) 나눌 필요 없겠죠. 이 글을 쓰는 저 자신 및 읽으시는 분들 대다수가 100억원 못 버신 분들일 테니, 상식에 맡깁니다.



3. 창작이라는 건 만능 치트키가 아닙니다


크리에이터. 아티스트. 자신의 생살을 헤집는 듯한 고통을 견디며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


뭐 다 좋습니다. 자기 작품에 대해 깊은 애정을 쏟고 영혼을 다해 노력하는 건 바람직한 일입니다. 자기 작품에 대해 신(神)의 지위를 갖고 진짜 피조물을 대하는 신처럼 아끼는 건 좋은 현상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현실 제도를 따라야 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춤과 음악의 영역에서는 '작품'이라는 게 현실의 인간으로 구현됩니다. 아티스트 민희진 씨가 만든 작품은 '뉴진스 걸그룹 멤버'라는 개별적인 인간의 활동으로 드러납니다. 그 인간 개개인에게는 당연히 인권이 있고 그 인권이 최우선이죠.


창작자의 권리도 '현실에서 구현 가능한 저작권'으로 제한됩니다. 인간이 행동으로 구현하는 춤과 음악에서는 이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는 범위가 매우 구체적이고 한정적이에요. "내 컨셉을 베꼈어욧 빼애애액!" 만으로는 법률적 보호를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죠? 최소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정상인이라면 당연하게 받아들일 겁니다.


으음, 그런데 말입니다.


이 당연한 얘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소위 '아티스트'들이 꽤 많나 봐요. 민희진 대표는 억울하게 창작 컨셉을 빼앗긴 피해자고 그녀를 내쫓는 80% 대주주가 악당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는 소위 '아티스트'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글쎄요. 그 아티스트 분들이 보시기에는 몇백억 보상을 받은 민희진 대표가 착취당한 것 같습니까? 아티스트 개개인의 역량이 모두 우주만큼 크고 방대해서 몇백억 보상은 그저 푼돈 부스러기로 보이십니까?



아티스트 분들. 크리에이터 분들. 현실을 인식합시다. 한국 현실에서 아티스트 평균 수입은 최저임금에 한참 미달합니다. 소설, 수필, 유튜브 영상 제작, 웹툰, 댄스, 음악, 기타 모든 영역에서 다 마찬가지예요.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돈을 받으며 예술활동에 매진하는 건 나쁘지 않지만... 본인의 고통을 몇백억대 자산가의 근거 없는 빼애액거림에 감정이입하는 걸로 해소하려 한다면 그건 그리 좋지 않을 것 같네요. 계속 근거 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잘 합시다. 잘 판단합시다. 우리 스스로.



* 서두에 쓴 대로, 언젠가는 이게 기업물 소재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그 때는 당연히 가명 써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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