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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서스 May 13. 2024

바다 민족과 포세이돈

오늘 주제는 '바다 민족과 포세이돈'으로 정했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에 살짝 신화를 보태서 제 마음대로 서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15년 사이에 '그리스 신화'가 많이 알려졌습니다. 아무래도 그 유행의 선봉장은 '홍은영 화백님'이시겠죠. 만화로 보는 그리스신화 시리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어린 시절에 그 만화를 보면서 그리스 신화 관련 상식을 쌓은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만화 시리즈뿐만 아니라 대다수 그리스신화에서는 [트로이 전쟁과 오디세우스의 모험]으로 끝납니다. 그 뒤에 외전이 추가되는 경우에도 시간상 순서로 따지면 거의 다 앞쪽 에피소드고, 트로이 전쟁과 오디세우스의 귀환 이후를 다루는 에피소드는 몇 개 없습니다.


이 현상에 대해, 일부 해석은 신화 자체에 충실하게 '제우스가 기간토마키아에 승리한 뒤 필요 없어진 영웅들을 싹 다 없애 버리려고 트로이 전쟁을 일으켰고 / 아킬레우스를 비롯한 여러 영웅들이 사라지면서 신화 시대가 종결되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뭐 그런 해석 충분히 가능하죠. 어차피 입증 안 되는 영역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제 생각에 트로이 전쟁 이후 이야기가 별로 없는 것은 [고고대 그리스가 실제로 망해 버린 영향]일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썼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1) 실재(實在)했던 트로이와 미케네


과거에는 트로이 전쟁도 신화(神話)라고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즉, '이거 다 뻥인 거 아시죠?'였던 셈이죠.


그런데 하인리히 슐레이만이 터키(튀르키예) 땅에서 한 유적을 찾아냅니다. 신화 끝자락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트로이 자리에 정말로 도시가 있었다는 걸 증명해 버립니다.


슐레이만 이후 여러 발굴가들이 유적을 찾아 나서면서 미케네도 발굴됩니다. 트로이 전쟁 당시 그리스 연합군의 맹주(盟主)였던 강력한 군사국가 미케네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게 증명됩니다.


트로이 전쟁을 다룬 '일리아드'를 보면 그리스 연합군이 대략 5만명은 모이는 걸로 나옵니다. 물론 이것도 호왈백만 삼국지처럼 숫자뻥튀기가 있었을 것이므로 실제 병력은 5천명 이하였겠죠. 그래도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많긴 합니다.


트로이 전쟁 때에는 아직 철기가 보편화되지 않고 청동제 무기를 쓰던 시절이었습니다. 청동에 들어가는 주석이 상당히 희귀하고 은(銀)에 버금가는 가격으로 거래되는데, 이렇게 비싼 청동으로 몇천명의 병사를 무장시키는 게 절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즉, 당시의 미케네는 상당히 강력했습니다. 일리아드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는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이 은근 찌질하게 나오지만 적어도 그 나라의 군사력만큼은 지중해를 호령할 만 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시절의 아테네/스파르타는 상대적으로 약했습니다. 트로이 전쟁 당시 스파르타의 왕이 메넬라오스였고 NTR을 당한(...) 당사자였는데, 메넬라오스가 아닌 그의 형 아가멤논이 맹주 자리에 앉죠. 도시국가 아테네는 아예 이름도 안 나오는 듣보르자브 도시국가 수준입니다.


조금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아테네가 미노아에 공물을 바치는 설정이 나오죠. 매년 젊은 남자 7명과 여자 7명을 공물로 바치고 이들은 미노타우르스의 먹이가 됩니다... 거의 아즈텍에 지배당하는 틀락스칼텍 급이죠.



이렇게 미케네-미노아 쪽이 짱 먹고 아테네-스파르타는 약했으며 병사들의 무기는 '청동'이었던 시절. 이걸 임의로 '고고대 그리스 시절'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문자로 기록된 고대 그리스보다 더 옛날이었고, 이후 고대 그리스와 1천년 이상 단절되는 시대니 고(古)를 2번 쓰는 게 적절할 것 같네요.


이 고고대 그리스는 트로이를 멸망시킬 정도로 강하고 조직적이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듯 망해 버립니다. 그 뒤로 1천년 가량 기록이 없을 만큼 철저하게 파괴되고 망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고고대 그리스를 멸망시킨 신비의 군사 세력이 바로 '바다 민족'입니다. 이제야 본론으로 넘어가는군요.



(2) 바다 민족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바다 민족'이라고 하니까 뭔가 원양항해를 엄청 잘 하고 노젓기로 상륙해서 곧장 돌격할 것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네요. 딱 바이킹(Viking)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저 시대에 고고대 그리스를 멸망시킨 종족이 항해를 잘했는지에 대해서는 딱히 증명된 게 없습니다. 그게 단일 종족이었는지도 몰라요. 짧게는 1천년, 길게는 2천년 이상 아무런 기록이나 증거가 없는 기간이 있어서 세부적인 정보를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다만, 당시 지중해 연안 국가였던 히타이트와 이집트에서 일부 '오랑캐'에 대한 기록이 있다고 하네요. 철기국가였던 히타이트가 벌벌 떨 정도였고, 이집트도 해안 도시 여러 곳이 약탈당해 피해가 심각했다고 합니다.


지중해 여기저기에 출몰했으니 기본적인 항해능력은 있었을 겁니다. 고고대 그리스 인들이 트로이를 공격하기 위해 여러 척의 배를 만들어 이용했던 것처럼, 이 바다 민족 또한 지중해를 오갈 만한 항해능력은 갖췄을 겁니다.



여기서 잠깐. 그런데 말입니다.


기본적인 항해능력을 갖췄다는 것만으로 '바다 민족'이라 부르는 게 적절할까요? 바이킹처럼 원양항해를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서해 앞바다 수준의 지중해를 왔다갔다한 정도인데 '바다 민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고고대 그리스를 초토화시켜 버린 전투능력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요?



제 생각에, 바다 민족은 항해능력이 아니라 '육상전투능력'이 뛰어났을 것 같습니다. 고고대 그리스를 기록조차 남지 않을 만큼 탈탈 털어 버렸던 원동력은 육지에서의 전투능력이었을 것 같습니다.


육지에서의 전투능력. 뭐가 있을까요?


'말(馬)'입니다. 기마대 운용능력. 그게 바다 민족이 강한 이유였을 겁니다.


바다 민족은 '기마민족'이었을 겁니다. 스키타이-흉노 라인으로 이어지는 기마민족이 후기 청동기 시절에 서쪽으로 진출하여 튀르키예-그리스 일대를 휩쓸고 (필 받은 김에) 이집트까지 쳐들어 갔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근거요? 당연히 고고학적 증거는 없습니다. 대신 '신화'가 있죠.


바다 민족이 기마민족이었을 거라는 신화적 추정. 여기서 '포세이돈'이 등장합니다.



(4) 바다의 신인데 동시에 말의 신 - 이건 뭥미?


그리스 신화의 넘버2. (영원히 고통받는 콩라인) 포세이돈입니다. 제우스에게 개길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존재로 등장하지만 그래도 제우스가 빡치면 바로 꼬리 내리죠. 도시국가 아테네에서는 제우스의 엄친딸 아테나에게 관광당하는 굴욕(...)까지 겪습니다.


그래도 포세이돈은 자신의 나와바리(!)인 바다에서는 엄청 강합니다. 코딱지만한 지중해도 폭풍 불면 배 몇 척 가라앉히는 건 쉽습니다. 포세이돈에게 찍히면 그대로 바다 밑 직행입니다.


그런데... 포세이돈은 의외의 보직도 갖고 있습니다. '말의 신'이라는 특이한 보직이 있죠.



처음에 포세이돈이 말(馬)의 신 역할도 한다는 걸 알았을 때, '이건 뭐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역할이니까요.


말은 지상에서 빠르게 달리는 생물이고 바다와는 영 어색합니다. 삼국지에서는 바다가 아니라 강에 배를 띄우는데도 기병들이 적응 못해서 난리나죠. 배에 타는 순간 기병은 그 특색을 잃어버리고 말은 전투무기가 아닌 애물단지로 전락해 버립니다.


정상적으로 신격을 분배한다면, 말의 신 역할은 헤르메스나 아폴론에게 가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가 맡아도 되구요. 그리스 신화에서도 포세이돈-데메테르 사이에서 태어난 말이 매우 뛰어났고, 그 말의 후손이 추후 알렉산더 대왕의 애마 '부케팔로스'라는 카더라 설정이 나옵니다.


아무튼, 포세이돈은 바다의 신인 동시에 말의 신입니다. 신화에서 그렇다고 하니 이해해 줘야죠. 왜 이렇게 되었는지 따져보는 건 각자 마음이구요.



처음에는 뭥미 수준이었는데, 바다 민족에 대해서 알고 나서 다시 보니 좀 다르게 보였습니다. [포세이돈이야말로 바다 민족의 신앙이 고대 그리스에 녹아든 흔적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바다 민족이 실제로 기마민족이었고, 그 기마민족이 고고대 그리스를 싹 쓸어 버렸으며, 필 받은 기마민족이 바다를 건너 이집트까지 쳐들어 가려고 생각했다면...


그게 어떤 식으로든 신화에 반영됐겠죠. 글자로 기록된 고고학적 자료는 소실되었지만 구술(口述)되는 카더라 통신에는 남았을 것이고, 돌고돌아 신화가 되면서 '영원한 콩라인 넘버2 포세이돈'으로 된 거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 콩라인 포세이돈의 흔적은 (추후 고대 그리스 시절에 넘버1이 되는) 도시국가 아테네에 강하게 남았습니다. 애당초 아테네 자체가 포세이돈-아테나를 모두 섬겼고, 고고대 시절 아테네의 영웅이었던 (로리콘) 테세우스가 포세이돈의 아들이기도 했죠.


미노스와 미케네를 다 박살내고 불질러 버린 기마민족이 아테네 자리에 모여 대량으로 배를 건조했고, 그들이 떠난 자리에 살아남은 그리스 인들이 모여들어 다시 도시국가를 건설한 게 '새로운 아테네'가 된 것 아닐까... 라는 상상을 해 봅니다. 물론 증거는 없습니다.



(5) 소설에 쓴다면


사실 저는 이 설정을 이미 한 번 써먹었습니다. '다단계 회귀 시스템'에 말려든 주인공이 회귀 12회차에 이르렀을 때 후기 청동기 시대로 가는데, 그 때 기마민족을 이끌고 그리스-튀르키예 지역을 털어먹으러 오는 걸로 설정했었습니다.


이 설정은 주류 판타지에 비해 좀 밋밋하긴 합니다. 판타지는 역시 '마법'이 나와야 하는데, 그냥 지구 역사로만 회귀하면 물리대결만 주구장창 나오고 마법은 안 나오게 되거든요. 전투가 단조로워지긴 합니다.


뭐, 제가 잘 쓰면 다 해결되는 문제입니다. 주구장창 냉병기만 휘두르는 삼국지도 몇천년 동안 히트치고 있으니까요. 결국은 작가 역량 문제입니다.


잘 써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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