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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좀 더 따뜻하게 말하는 사람이었다면...

아이의 말투 속에 내 말투가 있었다...

by 꼽슬이

아직 사춘기는 아닌 것 같다.

밤에 여전히 나와 함께 잠들고 싶어 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안아달라고 하는 딸아이다.

뭔가 하라고 하면 싫다고 말하는 횟수가 늘었지만,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반항을 해보고 싶긴 한데, 제대로 반항은 못하는 모습 속에, 그저 더 많이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아이가 보인다.


덴마크에 오기 전에도 그랬을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이는 요즘 들어 말투가 많이 딱딱해지고 거칠어졌다. 특히 아빠가 잔소리를 하거나, 하기 싫은 것을 하라고 하면 그에 대한 반응이 정말 기가 찰 정도이다. 폭력적인 아빠였다면 벌써 손찌검을 몇 번이나 하고도 남았을 것 같다. 남편도 참다 참다 못 참을 때는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낸다. 그리고 가끔은 언어폭력이 나오기도 한다.


말투가 얼마나 사람의 첫인상을 좌우하는지에 대한 책이나 유튜브가 차고 넘치는 것을 보면, 이건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여린 마음과 달리 말투 때문에 드센 아이로 취급받을까 걱정이었고, 어른들에게는 버릇없는 아이로 보일까 싶어 속상했다. 그런 엄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어르고 달래도 보고, 혼도 내보지만 말투를 바꿀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목소리가 너무 컸다. 굳이 크게 말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큰 소리로 말해서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킨다. 조용히 곁에 와서 말하면 들어줄 요청도, 여러 사람이 다 들리게 크게 말하니 들어주기도 안 들어주기도 어려운 상황을 만든다. 내가 아이보다 주변 시선을 신경 쓰는 것이 문제인가라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 부부의 목소리를 보면 둘 다 참 큰 편이다. 여럿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 우리의 목소리가 가장 크게 들린다는 것을 요즘 새삼 느낀다. 신경 쓰지 않을 땐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다.


그러고 나서 나의 말투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참 무뚝뚝하기 그지없다. 아이는 엄마가 리액션이 좀 더 풍부했으면 좋겠다고 직접적으로 말할 수 있을 만큼 컸다. 아이는 선물을 받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이 나왔을 때, 정말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도록 리액션을 크게 해 준다. 그런 아이에게 좋아도 그저 '좋네' 하고, 싫어도 '그냥 그래' 하는 엄마는 로봇 엄마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싶다. 나는 감정기복이 심하지 않은 것이 단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이럴 땐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좋은 것을 좀 더 크게 좋아할 수 있는 것이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이라는 것을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 나는 충분히 한 것 같은데, 아이에게는 나의 사랑표현이 부족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아침, 아이를 깨우며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와 미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대했다. 부드러운 손길로 몸을 살짝 간질이며 일어나자고 말하니, 아이도 짜증 내지 않고, 편안한 목소리로 '5분만 더'라고 말했다. 왜 진작 이렇게 하지 못했을까. 나는 너를 위해 한 시간이나 일찍 일어나서 밥 하고 도시락도 싸고 그러는데, 너는 왜 일어나는 것 하나 스스로 못해서 깨우게 하니...라는 마음이 들어있어서 그랬을까. 영어로 수업을 들어야 하고, 장난치고 놀리는 남자아이들 상대하는 것도 싫고, 이미 무리가 정해져 있어서 마음 터놓고 친하게 지낼 여자 친구도 없는 학교에 가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싫은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었던 나는, 학교에 가기 싫어서 일어나기 싫은 아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2주가 남아있다. 그렇게 가기 싫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다녀와서 시시콜콜 까지는 아니지만, 학교 이야기도 곧잘 해주는 아이에게 고맙다고 말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엄마가 될 수 있는 시간이 아직은 남은 것이다. 내가 부드럽게 말하면 아이도 남편도 변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실천은 또 다른 문제이다. 그래도 노력해야 하는 일이지. 나도 모르게 무의식 중에 튀어나오는 무뚝뚝한 말이 내 가슴을 찌르고 후회하는 일상이 반복되더라도, 3일에 한 번씩 작심삼일 120번 하면 일 년이라는 생각으로 계속 노력하는 수밖에.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나 자신 뿐이고, 남을 변하게 하고 싶으면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진리가 여기서도 이렇게 가슴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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