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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토크 Nov 30. 2023

엄마는 공부하는 사람이라서...

작은 소원 성취의 자부심

90이 넘은 나이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에 일어나 동네 한 바퀴 운동을 다녀오고 새벽에 배달된 종이신문을 노래하듯 흥얼거리면서 읽고 나면 하루종일 tv 앞에만 앉아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며 오로지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만 열심히 보면서 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 아버지가 미워 엄마는 잠깐이라도 함께 있는 시간에서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얼굴도 모르는 사람끼리 만났다 해도 자식 낳고 60년이 넘게 함께 살아왔으면 오랜 시간 알게 모르게 미운 정 고운 정도 쌓였을 거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그동안 함께 한 의리도 있으니까 같이 있는 시간에는 친구처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살면 서로 의지도 되고 좋을 텐데 아버지는 엄마와 한집에서 살면서 세끼 식사만 챙길 뿐 언제나 따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물론 아버지는 요즘 신세대 아빠들처럼 놀이공원도 같이 가고 놀아주기도 하는 다정함 같은 건 없었어도 우리에게 아버지로서는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엄마에게 남편으로서의 아버지는 같은 여자로서 볼 때 글쎄...


한 공간에서 대화 없이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밤에 불을 켰다 껐다 하면서 잠을 안 재우는 무서운 고문(拷問) 행위만큼이나 지독한 정신적 압박이니 엄마는 늘 외롭고 높은 벽이 가로막고 있는 듯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턱턱 막힌다.


그때는 공황이라는 단어자체도 모르고 그 병의 존재조차 알 수 없던 때라 아프다고 드러누우면 동네병원 의사가 왕진을 와 주사한방 놔주고 가면 끝이었고 별 차도도 없는 그게 치료의 전부였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는 젊은 시절부터 공황장애(恐慌障碍, panic disorder)를 겪고 있던 것 같다.


밖에 나가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던 엄마가 이런 감옥 같은 곳에서 사투를 벌이면서 사는 의지도 더 이상은 약발이 다했는지 살기 위해 뭔가를 해야만 했던 엄마는 언젠가부터 불교방송을 즐겨 듣게 되었다.

스님이 들려주는 잔잔한 목소리에 위로받고 불경(佛經)의 좋은 내용들로 점점 마음의 위안을 찾아가면서 그걸 계기로 한동안은 매일 절에 나가는 것이 엄마의 루틴이 된 적도 있다.


절에 다니게 되면서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다 보니 친구도 생기고 여기저기 다른 절로 피정(避靜, retreat)을가면서 여행 아닌 여행도 해보고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바깥세상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서 엄마의 삶이 조금씩 달라지게 되었다.






아버지의 밥 때문에 5시 이전에는 돌아와야 하는 까다로운 전제조건이 붙었지만 숨을 쉬며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엄마는 매일 학교에 등교하듯 열심히 다니면서 불경 공부에 심취한다.


엄마와는 달리 그 시절에도 깨였던 다른 애들이 교복으로 세일러복(Sailor suit)을 입고 책가방을 들고는 학교 가는 것을 담너머로 보면서 마냥 부러워하기만 했던 엄마는 배우지 못한 한이라도 풀듯 불경책을 들고 교과서로 시험공부하듯 읽고 쓰고 스님의 법문(法文) 내용을 녹음해 놓은 테이프를 사다 반복하면서 듣고 그러면서 늘 "나는 지금 공부하는 사람이라서... 공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라는 말을 우리에게 강조하곤 했다.


불경을 노트에 적어가면서 필사(筆寫)를 통해 나름의 수행을 쌓아 오는 일들을 반복하다 보니 엄마의 글씨는 점점 명필이 되어간다. 

요즘의 세련된 글꼴이 아닌 옛날 서체(書體)로 글을 쓰다 보니 자신의 글씨체가 맘에 안 들어 은행에 가서도 글씨 쓰는 것을 창피해하던 엄마가 자신의 이뻐진 글자체를 보고 자랑하듯 "엄마 글씨 잘 쓰지? "나 학교 다녔으면 공부도 잘했을 거야... 엄마 똑똑 하지?" 하면서 묻기도 한다.

"와! 멋있네! 진짜 잘 썼다!"하고 칭찬해 주면 살짝 으쓱해하는 그 모습이 오히려 더 짠하게 느껴진다.


엄마를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뭐 대단한 것을 한다고 저리도 잘난 척을 하시나 싶을 정도로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것을 얼마나 대견해했는지 말끝마다 "엄마는 공부하는 사람이라서..."라는 말을 꼭 부치곤 한다.


부모를 거역할 용기가 없어 떼쓰면서 학교 보내달라는 말도 못 하고 어쩔 수 없이 수용은 했지만 학교를 가지 못한 것에 대한 갈증이 평생의 콤플렉스로 남아 배움을 갈망하면서 살아왔던 엄마의 작은 소원 성취의 기쁨과 자부심의 순간들을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어쩌면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재수 없다고 욕을 할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열등감을 스스로 이겨냈다는 그 뿌듯해하는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아 그럴 때마다 엄마가 더 가엾어 보인다.






한국에 다니러 가면 바쁜 시간 속에서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 혼자 서점에 가서 책을 읽곤 한다.

읽을 것이 너무 많다 보니 서가에 흐트러짐 없이 꽂혀있는 책들의 꼿꼿한 자태만 봐도 그동안 허기졌던 내면(內面)의 배가 부르고 자리를 뜨기 아쉬워 책 한 권을 그 자리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다 읽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날도 서점에 가보려고 준비하는데 내가 나가려는 것을 눈치챈 엄마가 어디 가는 줄도 모르면서 무작정 따라가고 싶어 한다.

"서점에 가서 책 읽을 건데... 한참 걸릴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요?" 하니 나가고 싶은 마음이 워낙 강해서 인가? 엄마도 가겠다고 따라나서 모시고 나간 적이 있다.


버스를 타고 대형 서점에 가서 자리를 잡고 엄마가 볼 만한 책을 골라 주면서 읽고 있으라고 한 다음 나는 내가 보고 싶은 책을 찾아 자리를 떴다가 잠시 후에 다시 돌아와서 엄마 옆 자리에 앉아서 읽기 시작한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고개를 들고 엄마를 살짝 보니 지루해서 금방 나가자고 할 줄 알았던 엄마는 꼼짝도 않고 책상에 앉아서 평온한 표정으로 조용히 책장을 넘기고 있는 것이었다.


헉! 의외였고 조금은 놀라웠다.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편안해 보이는 엄마의 모습이다!

엄마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를 보니 진즉에 알아차리지 못한 나 자신이 그리고 다른 자식들까지도 우리 모두 불효스럽고 한심했다.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지? 왜 엄마가 책을 좋아할 거란 생각을 못한 거지?

엄마에게 책을 사다 주거나 서점에 같이 가자고 해볼걸... 후회가 된다.

집에 돌아오면서 "앞으로 엄마가 책을 읽고 싶으면 여기 와서 읽어요" 했더니 "여기 복잡해서 어떻게 찾아오는지 몰라"

하긴 그 안이 미로처럼 복잡해서 엄마가 찾아오긴 무리가 있어 보였다.


며칠 뒤에 동네 구립 도서관을 엄마랑 방문해 본다.

규모도 작고 걸어서 가는 곳이라 다니기 쉽지 않을까 해서였는데 걸어보니 두 정류장은 족히 되는 거리라 이곳 또한 지팡이 짚고 걸어야 하는 엄마에게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사이즈가 작은 만큼 진열되어 있는 책의 종류는 많지 않았지만 엄마가 원하는 대로 꺼내서 읽고는 저녁때가 되어 오늘 읽은 책은 어땠는지? 도서관은 어떠했는지? 질문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이렇게 옆에서 엄마랑 이야기도 나누어 주고 엄마가 가고 싶은 곳을 함께 가주기도 하고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자식들 모두 사회생활을 하고 있으니 사느라 바빠 주말이나 돼야 올 수 있고 자신들의 생활도 있으니 와도 오랜 시간을 머물 수가 없다.

그래도 부모님을 위해 주말마다 자신들의 시간을 포기하면서까지 들르는 건데 그 시간만을 기다리는 엄마는 일주일이 너무 길다 보니 자주 안 온다고 가끔은 다녀간 사실을 잊고서 또 안 온다고 투덜투덜...


이제는 잘 따라주지 않는 육체뿐 아니라 정신도 희미해져 기억이 사라져 가는 탓에 밖에 나가는 것 자체도 힘들어진 엄마가 그 좋아하는 절에도 가지 못하고 집에만 있다.

꼰대 아버지의 무관심에 깊은 상처를 받고 살아온 야속한 세월 탓에 함께 있는 것 자체도 곤혹이 된 터라 유일하게 징역살이로부터 해방되어 나갈 수 있는 이유가 되었던 절에 가는 일 마저 사라진 지금 엄마는 끔찍한 외로움이 만들어내는 우울의 늪에 빠져 삶의 의미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 듯하다.


거실을 아버지에게 점령당한 채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자는 게 일상이 되어 버린 엄마에게 다시 한번 불경책으로 필사를 해보라고 권해 보지만 그 마저도 집중이 잘 안 된다고 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하루는 병원에 다녀오다가 힘들어하는 엄마를 올케가 잠시 쉬게 하느라 벤치에 앉혀놓고 비디오를 찍어 나한테 보내준 적이 있다.

축 늘어져 있는 엄마에게  "큰 형님한테 인사해 보세요" 하니까 그래도 자식이라고 눈을 번쩍 뜨고 "큰애야!" 부르고는 작은 화면 어딘가에 내 모습도 비칠까 하여 기웃기웃 열심히 찾는다.

"형님은 지금 못 봐요, 어머니만 말씀하실 수 있으니까 하시고 싶은 말씀 하시면 나중에 형님한테 보내 드릴 거예요" 하니 "으응~ 큰애야 보고 싶어... 언제 와?" 하면서 말하라니까 말하고 "손도 흔들어 보세요" 하니 손을 흔들기도 하고 그래도 한때는 강한 자기주장으로 큰소리도 치고 하던 엄마가 말 잘 듣는 얌전한 유치원 아이처럼 그저 올케가 시키는 대로만 따라 하고 있는 엄마의 지쳐 보이는 모습이 왜 이렇게 슬퍼 보이는지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날 하염없이 울었다.






공부는 엄마의 평생의 열등감이었다.

얼마나 그게 한이었으면 비록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아니었더라도 절에 다니는 동안 "나는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스스로에게 지어주고는 그걸로 공부의 한을 풀고 자신을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면서 보냈을까만은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음이 많이 아쉽다.


몸이라도 건강해서 여기저기 다닐 수만 있어도...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도 떨고 여기저기 세상구경도 하면서 보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마치 스스로 곡기를 끊은 사람처럼 식사도 잘 안 하고...


나가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잘 알면서도 바빠서 아니면 귀찮아서 피곤해서 여러 이유로 엄마의 바램을 무산시키곤 했지만 이유를 만들기 위해 "오늘은 엄마랑 쇼핑하러 나가자"고 할 때의 그 몸과 마음처럼 엄마가 사는 동안 다시 한번 열공할 수 있는 열정이 되살아 나서 책도 읽고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는 공부도 하고 그러면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엄마에게 좀 더 많았으면... 작은 욕심을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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