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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몰토크 Nov 23. 2023

엄마의 여자의 일생

여자로서의 삶

엄마라는 단어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포근해진다.

쓸데없이 투정 부려도 다 받아주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


가끔은 주변에 사람이 북적대면서 시끌벅적해도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

그럴 때 엄마를 떠올려 보면 존재 이유만으로도 많은 위안을 받는다.

맞이라서 응석 한번 부려볼 기회도 없었지만 아직은 엄마가 우리 곁에 남아 있어서 좋다.






엄마가 가끔씩 아련한 옛 생각을 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엄마의 어린 시절에 대부분의 여자 아이들은 당시 불합리했던 시대상(時代相)이 요구하는 대로 여자라는 이유하나 만으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정당한 듯 제지당하면서 살아도 원망은커녕 거역 한번 제대로 못해 보고 무조건 따라야만 했다고 한다.


도시가 아닌 촌에서 태어났지만 깡촌도 아니고 밥도 못 먹던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먹고사는데 어려움도 없었음에도 유난히 엄격했던 집안의 불필요한 규율로 "여자가 무슨 학교냐?"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으니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꿈도 못 꾸고 친구들과 철없이 마냥 뛰어놀기만 해도 바쁠 어린 9살 나이에 엄마 대신 밥하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고도 한다.


아직은 자신도 어려 어리광으로 생떼 부리며 살았을 나이에 때 되면 밥을 차리고 동생까지 업어 키우며 일찍부터 철이 들어야 했을 그 삶이 참 가련하고 애처롭다. 


여자라서 바깥출입은 무조건 금지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갇히듯 살아와 담 너머 문 밖 세상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시야로 그려내는 작은 상상의 나라였을 것이다.

"누울 자리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사춘기가 되어도 반항은 할 수도 없고 다 자라 꽃다운 나이가 되어도 멋있는 동네 남자 사람들은 구경이나 했을까? 

물론 드라마에서 그 보다 훨씬 더 이전의 시대에도 물레방앗간 사건들이 종종 등장하는 걸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 상열지사의 실질적 서사는 몰래 어디서나 이루어졌겠지만 연애는커녕 말도 붙여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집안에서만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 것으로 알았을 테니 저 멀리 프랑스 남부 마르세이유에 자리 잡고 있는 바다 한가운데 섬처럼 동떨어져 자리해 탈옥이 어렵다는 이프성(Château d'If) 감옥이랑 창살만 없을 뿐 다를게 무엇일까? 

우리들과는 다른 시간 속에서 당연한 듯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순종하며 살아왔을 엄마의 무정한 세월이 가엾고 불쌍할 뿐이다.


집 밖에 나가 보는 것을 소박한 꿈으로 간직하던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소녀가 유일하게 공식적인 허락을 받으면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시집가는 거였을지도 모른다.
지긋지긋한 이 작은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설렘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 같은 건 모두 사치다.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어야 할 사랑하는 사람의 선택 또한 엄마의 몫은 아니었다.

부모가 정해주는 대로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 낯선 남자와 마주 앉아 있기도 고문일 텐데 첫날밤까지 치러야 하다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연지곤지 찍고 구식 결혼을 한 터라 결혼사진 한 장 없는 것이 부끄러웠을까? 

아님 남들이 입는 신부의 하얀 웨딩드레스가 부러웠나?

신식 결혼식을 올린 다른 사람의 결혼사진에 자신의 얼굴만 합성해서라도 간직하고픈 그 마음이 처량하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지만 새로운 세상은 어디가 되었든 지금 여기보다는 나을 거라고 위로하면서 덥석 물어버린 결혼은 더 가혹한 또 다른 감방이었다. 

먹을 것도 없는 가난한 시골집에 선비는 일하지 않는다는 시아버지와 어린 시동생, 철없는 시누이까지...


새신랑 말고는 돈 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집에 살림은 갓 시집온 새댁에게 다 맡겨놓고 남편이란 사람은  돈 벌러 서울로 가버리고 기댈 사람도 신세한탄을 들어줄 사람도 아무도 없는 막막한 그곳에서 자신에게 짐처럼 떠맡겨져 챙겨야 하는 식구들만 잔뜩... 

깊은 밤 홀로 잠자리에 들기 전 눈물 훔치며 견뎌내야 했을 그 시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직은 꿈이 많았을 가장 찬란하게 빛나고 아름다운 20대의 청춘을 할 수만 있다면 도망가면서 거부하고 싶었겠지만 거스를 수도 없어 힘겨운 삶을 어깨에 짊어지듯 무거운 똥지게까지 둘러메고 거름 주며 농사도 짓고 식구들 밥도 짓고 노비처럼 일만 하면서 남편도 없는 시집에서 혼자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면서 다 바쳤을 것이다.


결혼 10일 전에 돌아가셨다는 시어머니 대신에 엄마 노릇까지 해 내느라 어린 시동생, 시누이 시집 장가갈 때까지 다 키워내고 집마련할 능력이 안 되는 시동생은 결혼시켜 함께 데리고 까지 살았건만 얌통머리 없는 동서는 요령 피우느라 일도 안 하고 맞서 싸울 용기도 배짱도 없는 엄마 얕잡아 보고 시도 때도 없이 무시해 대며 애만 태우게 하니 미련한 엄마의 삶은 고단하기만 했다.


자신들이 농사지은 쌀 한 톨도 안 주면서 하숙비 아끼려고 서울에서 학교 다니게 된 조카들 우리 집에 맡겨 놓고 대학 졸업 때까지 방이며 밥이며 완전 공짜로 민폐 끼치며 그 치다꺼리까지 다 하게 하고 바보 같은 엄마는 그 고생을 다하고도 좋은 소리 하나 듣지 못한다.

사람이 염치라는 게 있어야 하는데 미안한 마음 같은 건 전당포에 맡겨 놓았는지 경우가 없어도 너무 없다. 

선한 끝은 있어도 악한 끝은 없다고 하는데 그도 아닌 듯하다.


어디 그뿐일까?

서울에서의 삶 또한 농사만 안 지었을 뿐 시골에서 처럼 힘이 드는 건 마찬가지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대신에 집안일을 도 맡아서 하던 엄마는 수도가 없던 그 시절에 일주일에 한 번씩 문을 여는 동네 수도가게에서 좀 더 빨리 차례가 돌아오라고 어린 우리에게 줄을 세워 놓고는 연신 물지게를 지고 물을 사다 나르기도 했다.


남자가 지기에도 무거운 물지게에 커다란 물통 2개를 물 한 방울이라도 흘리지 않게 꾹꾹 눌러 담아 자신의 몸무게보다 더 나갈 것 같은 그 무게를 지고 나르느라 그 중량(重量)의 힘에 눌려 퉁퉁 부은 엄마의 시퍼런 맨발이 한없이 서글프다. 


그런 엄마에게 입이 까다로운 아버지는 매끼마다 갓 새로 지은 따뜻한 밥과 국에 새로운 반찬을 요구하셨고

같은 반찬을 두 번만 올려도 안 드시는 이기적인 아버지가 야속할 만도 한데 그 또한 여자니까 그리고 아내니까 바깥에서 힘들게 돈 벌어오는 남편을 위해서 집에서 그런 거라도 해줘야 하는 것인 줄만 알고 평생 아버지 입을 만족시켜 주면서 살아온 엄마의 여자로서의 일생은 한마디로 기구했다.


어쩔 수 없이 순응하면서 살았더라도 한심해 보이는 자신의 처지를 어찌 돌아보지 않았겠나?

내면에 자리 잡고 쌓여 온 한(恨)이 많아 우리들이랑 말하다가도 지나온 자신의 삶을 한탄하듯 흐느끼면서 서럽게 우는 엄마의 눈물이 애처롭고 구슬프다.






자식들 공부 다 시키고 자기 짝 찾아 모두 떠나보내 놓고 이제는 본인만의 시간을 가질 만도 한데 살림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엄마는 늘 외롭다.

지금의 우리들처럼 컴퓨터라도 볼 줄 알았으면 보내는 하루가 조금은 덜 지겨울 텐데...


그래도 공부에 대한 갈망을 버리지 못해 남동생 교과서를 가져다가 자신이 스승이 되어 밤마다 조금씩 보아 왔던 그 열정으로 한글도 깨치고 산수 공부도 해서 계산 능력도 뛰어나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장하게 문맹(文盲)에서 스스로 벗어나긴 했지만 친구들과 학교를 다니면서 사회성을 키운 것도 아니고 집안에서만 있다 보니 좁아진 시야만큼이나 좁은 사고를 갖고 있어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재미도 다정도 없는 아버지 탓에 하루종일 말 한마디 없이 갇혀 있는 것 같은 삶이 지루해 유난히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가 한동안은 절에 나가면서 기도도 하고 마음의 위안을 찾기도 했는데 이젠 그 마저도 힘들어 가지를 못한다.


가끔씩이라도 슬슬 놀이터에 나가 다른 할머니들과 마음대로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서 아버지를 위해 매일 다른 음식을 만들어 내야 했던 게 지겨워 외식을 더 좋아하는 엄마가 남들이 해주는 맛있는 음식 실컷 사 먹으면서 그동안 보지 못하고 살았던 좋은 것만을 보면서 살아가면 좋을 텐데 지금의 세상에서는 그 마저도 허락받지 못하는 삶인가 보다.


어릴 땐 6.25라는 끔찍한 전쟁을 겪었고 콜레라 장티푸스라는 지금과는 다른 전염병도 넘어야 했고 사는 동안 세상에서 겪어야 하는 험난하고 힘든 사건들을 다 이겨내고 지금에 와 있으면 "사느라 애썼다! 그러니 이제 남은 삶은 좀 더 나은 세상에서 맘껏 누리면서 즐기는 일만 있어라" 해주면 좋겠는데 무슨 인생이 그리도 끝도 없이 힘들기만 하는지...


과학이 발달해서 우주선 타고 달나라도 가는 세상인데 얼마 남지 않은 그 짧은 시간마저도 또 다른 전염병의 시대를 살아내느라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꼼짝없이 또다시 감옥에 갇혀 사는 꼴이다.

그나마 유일한 낙이었던 자식들도 자주 볼 수 없고 말동무 하나 없이 혼자 보내야 하는 그 시간들이 엄마에겐 지옥 같았을 것이다.


우리만 보면 핑계 김에 밖에 나가고 싶어 해 함께 외출을 할라치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마음처럼 몸도 잘 따라주면 좋으련만 몸은 엄마의 그런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금방 지치게 해서 몇 발자국을 떼면 앉았다 가자고 한다.

멀리 갈 수도 없고 이제는 부축이 없으면 혼자 다닐 수가 없으니 집을 떠날 수도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금의 나도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그 느낌들이 낯설지가 않다.

오랜 시간을 부모 사랑도 못 받고 남편 사랑도 못 받고 살아왔다는 자책 같은 깊은 외로움을 자식에게 집착하면서 버틸 수 있었던 삶이라 자식들은 그런 엄마의 사랑이 부담이 되어 버린다.

누군가는 잘못된 사랑이라고 치부해 버리지만 나는 그 또한 사랑이라고 믿는다.

방법은 서툴지만 자신만의 방법으로 온 힘을 다해 한 사랑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마음속 깊은 응어리 때문에 가끔씩 부리는 아집(我執)과 뭐 하나에 꽂히면 병적인 집착을 보이면서 뱉어내는 억지스러운 말들이 엄마의 편을 들어달라는 어리광 같은 외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순간을 견디기 힘들어 부딪히곤 한다.

자신의 서글픈 한을 풀어내듯이 자식들 마저 자신의 편이 아니라고 악을 쓰며 꺼이꺼이 우는 엄마의 서러움은 언제나 처연하게 와닿는다.

같은 여자로서 엄마의 삶을 공감하고 이해하면서도 따뜻한 말을 건네기보다는 언성 높이며 반항하던 우리들의 철없음이 반성된다


알고 보면 너무 여린 가슴을 갖고 있어 누구에게든 의지하고 싶었을 그 마음을 홀로 견뎌내면서 살아온 엄마의 일생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자식이 여럿이라도 멀리 떨어져 지내는 하나가 밟혀서 전화하면 주야장천(晝夜長川) "보고 싶어! 언제 오냐?"만 외친다.

듣고 싶어 하는 것을 알면서도 어색하고 오글거려서 사랑한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해 주고 자주 갈 수 없어 전화만 하는 나의 불효가 부끄럽다.


엄마의 살아온 세월은 다사다난(多事多難) 그 자체로 우리는 연말에나 외치는 단어지만 엄마에게는 평생이었다.

굴곡 넘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낼 수밖에 없던 엄마의 시대가 아무것도 못해보고 의미 없이 가고 있음이 안타깝다.

엄마에게 이 세상은 참으로 냉담하고 잔인하기만 하다.


"엄마가 살면서 제일 행복했던 건 언제야?"라고 물으면 "너희들 키울 때..."라고 말하는 엄마가 진짜 행복했던 때가 있었는지 조차 가늠이 가지는 않지만 슬펐던 일은 다 잊어버리고 점점 흐려져 가는 기억 속에서도 가장 행복했던 추억만 오래 간직하고 있으면 좋겠다.


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은 오랜 시간 쌓여있는 한을 한순간에 시원하게 풀지는 못할지라도 더 이상은 마음속에 품고 있느라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엄마가 조금 더 기쁘게 웃으면서 보낼 수 있는 날이 많았으면 하고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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