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Dr. Norman Holly
가슴에 무궁화를 달고 환한 미소를 짓던 워싱턴의 노만 홀리 (Norman Holly) 박사가 아름다운 무궁화 향기를 남기고 얼마 전, 하늘나라로 갔다. 내게 남겨 준 그의 사진에서 아름다운 향기가 넘친다.
나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사 년 반 정도를 살았다. 2006년 떠난 뒤, 17년 동안 한 번도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아직도 연락을 주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다. 아니, 이제 할아버지는 ’ 계셨었다 ‘로 고쳐 써야겠다.
한국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던 미국 할아버지 Norman Holly 박사와 그의 부인 김찬수 전 강원향우회장은 20년이 넘게 한인 입양아들을 위한 봉사를 함께 했다.
Norman Holly 박사의 매해 5월의 생일에는 한국인 음악가가 연주하고 한국 가곡과 동요도 부르는 작은 음악회를 열어 한인 입양아들과 미국 양부모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초대했다. 그의 생일에 모인 돈은 전부 입양아를 위한 봉사회 아시아 패밀리즈(ASIA FAMILIES)에 기부했다.
올해 5월 18일, Holly 박사의 생일에도 여전히 음악회는 열린다. 2월 17일 소천한 그의 장례식을 생략하고, 대신 예년과 같이 음악회를 연다고 한다. 또한, 음악회에 모인 기금도 예년과 같이 전액 기부될 것이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음악회와 ASIA FAMILIES에의 기부는 똑같이 진행된다고 한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다른 점은, 주인공인 그는 영원히 참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인 이십여 년을 여러 나라에서 살았다. 오랜 외국 생활 동안 이 나라, 저 나라 옮겨 다니며 가졌던 가슴 아린 이별은 새로운 나라에서의 새로운 만남으로 ‘이별’ 이란 아픔이 희석되기도 했지만, 재회를 기약할 수 없는 먼 곳에서의 이별은 사실 참 아프다. 그런데, 이제 할아버지와의 재회는 영영 불가능해졌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씨(Washington D.C.)의 사람들은 근처 버지니아 (Virginia) 나 메릴랜드 (Maryland )에 많이 모여 살았고, 내가 살던 곳도 메릴랜드였다.
그때, 입양아를 위한 봉사회에서 약 2년 반 정도를 한국인을 입양한 미국 양부모들의 한국어 교사로 자원봉사를 했으며 한국에서 워싱턴까지 입양아를 4번 정도 데리고 왔다. 그때 같이 자원봉사를 하던 홀리씨 부부와 지금까지 소중한 인연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맡은 미국인 양부모를 위한 한국어 교실에는 10여 명의 미국인 양부모들이 있었다. 입양아의 뿌리를 찾아주기 위해서는 부모인 내가 먼저 한국문화를 알아야 한다는 그들이 참 감사했기에 나도 최선을 다했다.
미국인 양부모들은 모두 종강식에서 한국말로 자기소개를 해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한국의 홀트 아동복지에서 위탁모로부터 입양아를 받아 워싱턴에 도착하면 양부모의 가족 십여 명이 보통 마중을 나와 작은 선물로 감사의 표현을 하기도 했고, 아기를 받아 안는 순간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런 그들이 참 따뜻했다.
재작년 Norman Holly 박사의 95세 생신 때 가죽공예작품인 무궁화꽃을 정성 들여 만들어 부부에게 선물했다. 무궁화는 2020년 국전에서도 상을 받은 내가 가장 아끼는 작품 중 하나이다. 예쁘게 달고 두 분이 찍은 사진을 보내 주었을 때, 무궁화 만들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에서 바라보는 무궁화, 태극기는 우리가 국내에서 무심히 지나치는 그것들과 전혀 다르다.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하기도 한다.
작년 96세 Norman Holly 씨 생신 때는 음악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담아 장미꽃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두 분께 선물로 보냈다. 올해는 어떤 꽃을 보낼까 연구 중에 있었는데, 이젠 그 꽃을 달아드릴 할아버지가 이 세상에 안 계시다.
아시아 패밀리스는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입양인들과 입양가족을 위해 필요한 입양 후 사후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이다. 다른 또래 입양인들과 함께 자랄 수 있는 공동체인 커뮤니티가 있다면, 외로움과 고립된 경험을 줄일 수 있을 것이란 취지에서 출발했다.
1970년대에 미 국무부에서 한국으로 파견 근무하기도 한 Norman Holly 박사는 양부모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주제로 강의하기도 했다. 하버드 대학 박사이기도 한 그는 코리아 타임스, 아시아 타임스, 코리아 모니터 등에도 오랫동안 글을 썼다.
김찬수 고문은 입양인들이 한국식 점심을 함께 하며 더 가까워져 그들의 커뮤니티를 이룰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한국식 점심 케이터링을 담당하고 있다. 입양아, 양부모, 자원 봉사자를 위해 매번 150인분의 점심 식사를 제공한다.
이런 어려운 일을 비롯해 기금마련 콘서트를 조직하여 다양한 사회계층에게 입양인들을 알리는 데 앞장선 김찬수 씨는 Presidential Volunteer Service Award (2023, 미국 대통령 봉사상 Bronze동상)을 조 바이든 대통령 싸인이 담긴 축사, 메달과 함께 얼마 전, 2월 10일 받았는데, 할아버지와 그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을 가장 아쉬워했다.
미국에 사는 입양아들의 꿈은 대부분 모국 한국에 가서 친부모를 찾고 한국의 모든 것들을 몸으로 느껴보는 것이다. 아시아 패밀리즈는 매해 모국방문단 ‘코리언 브리지 투어(Korean Bridge Tour) ’ 를 조직하여 입양인들과 양부모가 한국의 문화, 언어, 음식등을 접할 수 있게 해 주고 그들의 친부모에 관한 정보도 연결해 주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Norman Holly 박사와 2022년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그가 95세의 나이임에도 A4용지 네장에 빽빽하게 적어 준 인터뷰 내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입양인들의 우울증과 이로 인한 자살이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고 한다. 많은 성인 입양인들의 정체성을 찾아 주는 정신 건강에 대한 서비스가 절실하다. 홀리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본인의 정체성을 찾기 힘든 입양아들에게 한국의 부모 찾기는 입양에 대한 긍정적 생각을 갖게 한다 “
“대부분 본인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부모와 상봉하게 되는 입양아들은 더 나은 환경에서 따뜻하게 키워 준 양부모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는 동시에, 그들에게 펼쳐진 무한한 미래에 안심하게 된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외교 자산의 하나는 한인 입양아를 포함한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해외 한국인들이 아닐까 한다. 한국정부와 한국 사회가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항상 교류와 지원의 문을 열어 놓는다면, 보다 사회에서 성공하는 입양아들이 늘어날 것이다.
2024년 올여름에는 6월 18일에서 28일 사이, 아시아 패밀리즈의 50여 명의 참가자들이 모국방문을 통해 서울, 부산, 경주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대부분의 입양인들은 한국을 방문하며 자신과 닮은 사람들을 보며 신기함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소속감 또는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아시아 패밀리즈는 대한민국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지만, 많이 모자라는 기금을 후원으로 충당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홀리박사가 남긴 무궁화 향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한국에서도 많은 후원의 손길이 이어져 좀 더 많은 입양인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키워주는 계기가 있기를 바란다.
한인입양아들을 위한 두 분의 봉사에 깊이 감사드리며, 내가 만든 무궁화로 조금이라도 감사의 표현을 할 수 있었기에 공예가가 된 게 참 자랑스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