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만수르의 하루

시간 플렉스하는 법

by 모림

통장 잔고는 깜찍해졌지만, 대신 나에게는 24시간이 덤으로 주어졌다. 남들이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팔 때, 나는 돈을 안 쓰는 대신 시간을 산다. 나는 시간 빌게이츠, 아니 시간 만수르이다. 시간 자본주의에서는 내가 최고다. 바야흐로 부의 기준이 뒤바뀐, 나만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할지도 모른다. '집에서 하루종일 뭐하지? 심심하지 않을까?' 무슨 섭섭한 말씀을. 시간 부자인 나는 누구보다 바쁘게 시간을 플렉스하는 중이다. 이 비싼 시간을 어떻게 탕진하고 있는지 궁금한가? 자, 지금부터 시간 만수르의 사치스러운 하루를 공개한다.


1. 무한 알고리즘의 늪에 빠지기 (feat. 낮잠)

가장 먼저 누리는 사치는 '생산성 없는 시간'을 마음껏 소비하는 것이다. 눈 뜨자마자 이불과 한 몸이 되어 유튜브 스크롤을 끝도 없이 내린다.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여기저기 기웃대다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예전 같으면 "아, 시간 낭비했다"라며 자책했을 테지만, 지금은 다르다. "괜찮아, 나 시간 많아."

그리고 보다가 졸리면 그대로 눈을 감는다. 알람 없이 자는 평일 낮의 달콤한 낮잠. 이건 억만금을 줘도 못 사는 꿀맛이다.

2. 초록 불이 깜빡여도, 절대 뛰지 않기

몸이 찌뿌둥해지면 이어폰을 챙겨 밖으로 나간다. 남들이 사무실 모니터 앞에서 거북목이 되어갈 오후 2시. 나는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동네를 걷는다.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 저 멀리서 초록 불이 깜빡거린다. 예전 같으면 늦지 않기 위해 헐레벌떡 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자리에 멈춰 선다. "뛰지 않아도 돼. 다음 신호 기다리면 되니까."

뛰지 않고 느긋하게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마음. 이것이야말로 시간 부자만이 부릴 수 있는 최고의 허세가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그저 가고싶은 대로 발을 이끈다. 걷다가 마주치는 길고양이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이 여유, 확실히 값어치를 한다.

3. 나를 대접하는 시간, 요리와 빨래

집으로 돌아오면 밀린 집안일을 한다. 하지만 이건 '노동'이 아니라 '의식'이다. 묵혀뒀던 빨래를 돌리고, 탁탁 털어 햇볕 아래 널어둔다. 바람에 실려오는 섬유유연제 향기, 그리고 집안 가득 퍼지는 그 은은함이 좋다. 저녁에는 시장에 들러 장을 보고 요리를 한다. 도마에 칼이 부딪히는 경쾌한 소리,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 오로지 나를 위해 정성껏 차린 밥상을 마주하면, 비로소 '사람답게 살고 있다'는 실감이 난다.


누군가는 묻는다. "그렇게 놀면 불안하지 않아?" 물론 불안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지금의 이 사치스러운 행위들이 낭비가 아니라,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라는 것을.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고, 내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오늘도 나는 부지런히 놀고, 먹고,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