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얼굴에도 침은 묻는다
영화 관람 후, 사람들로 꽉 찬
엘리베이터 안.
갓난아기를 등에 업은 아주머니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아기는 귀엽게 오물오물
사탕을 물고 나를 쳐다봤다.
어떻게 이렇게 무해하고
천사 같은 생명체가 존재할까.
세상이 사르르 녹듯이
미소를 띠던 그 순간,
그 천사 같은 아기가
입 안에
독을 모아 뱉듯이,
정확히 내 얼굴 정중앙에
오렌지색 기침을 했다.
한순간에 천사 같던 아기가
에일리언으로 보였다.
내 얼굴엔 오렌지맛 사탕 냄새와
뜨끈한 현실이 동시에 묻었다.
12층에서 6층 정도 내려왔을 즈음,
영화로 치면 중반부쯤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이 상황은 지금,
나와 이 아기만 알고 있다.
아니다,
이 아기의 옹알이를 보아선
아마 나만 알고 있는 듯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혼낼 수도, 화를 낼 수도, 따질 수도,
사과를 받을 수도 없는
모호한 상황이었다.
그 아기의 엄마에게
“아기가 제 얼굴에 침을 뱉었어요.”라고
정중히 말할 수도 없었다.
소심했던 15살의 나는
그냥 1층까지 오렌지 사탕 냄새를 참다
조용히 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한 번 하면 끝이라 생각했다.
세상에 무해한 건 없다.
대부분은 다만,
그걸 애써 웃으며 넘길 뿐이다.
그날 이후,
‘웃는 얼굴엔 침을 못 뱉는다’는 말을
듣게 되면 혼자 피식 웃는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