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되는 삶, 체험되는 의미

AI 시대의 실존적 딜레마

by 임찬수

한 개인이 자신의 모든 데이터를 분석하여 삶의 최적 경로, 즉 ‘삶의 나침반’을 스스로 찾아내는 과정이 있다. 다른 한편, 양자-AI 시스템이 동일한 데이터를 입력받아 수학적으로 동일한 ‘삶의 나침반’을 계산해 주는 상황이 있다. 함수적 관점에서 이 둘은 완벽히 동치(同値)다. 처치-튜링 명제에 따르면, 동일한 알고리즘을 수행하는 시스템은 계산적으로 등가이며, 입력과 출력이 같다면 계산 주체가 인간이든 AI든 수학적으로는 구별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계산주의 철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핵심 딜레마의 시작점이다.

그러나 이 수학적 동치성은 현상학적 차원에서 거대한 균열을 드러낸다. 데이비드 차머스가 제기한 ‘의식의 어려운 문제(Hard Problem of Consciousness)’는 이 균열의 본질을 꿰뚫는다. 개인이 직접 고뇌하고 성찰하며 결론에 도달할 때 발생하는 주관적 체험, 즉 퀄리아(qualia)는 AI의 객관적 정보 처리 과정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설령 결과가 같더라도, “내가 선택했다”는 자기 소유감(Sense of Agency)과 “AI가 계산해 줬다”는 수동감은 전혀 다른 실존적 의미를 갖는다. 이는 신경과학의 자유의지 연구가 보여주듯, 인간에게는 결과의 합리성만큼이나 과정의 주체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는 보편적 기본소득(UBI)이 실현될 포스트-워크(Post-work) 사회에서 더욱 첨예한 문제로 부상한다. 생존을 위한 노동이 사라진 시대, 인류는 “왜 사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때 AI-양자컴퓨팅은 개인의 유전자, 뇌 활동, 과거 경험을 총망라하여 개인화된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기술적으로는 개인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사회적 기여를 최적화하는 경로를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이데거의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타인(AI 포함)이 제시한 삶의 방향은 본질적으로 ‘비진정성(inauthenticity)’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과정의 주체성이 결여된 최적화는 결국 정교한 결정론에 불과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가 암시하듯, 자기 참조적 시스템인 ‘나’에 대한 완벽한 객관적 계산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 개인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과정은 정적인 계산이 아니라, 성찰 자체가 자아를 변화시키는 동적인 상호작용이다. 양자역학의 관찰자 효과처럼, 계산 주체(나)가 계산 대상(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AI의 계산은 이 동적인 자기 생성 과정을 포착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AI 시대에 인간의 고유한 역할은 재정의될 수밖에 없다. AI가 ‘계산 가능한 최적화’의 영역을 담당한다면, 인간은 ‘체험적 의미 부여’의 영역을 전담하게 될 것이다. 미래의 AI는 완벽한 삶의 나침반을 제공하는 ‘오라클’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과 가능성을 제안하고 성찰을 돕는 ‘의미 탐색의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AI가 수많은 옵션을 제시하고, 최종적인 선택과 그 선택에 대한 의미 부여, 그리고 그에 따르는 책임은 온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이 역설적 공존 속에서, 우리는 기술과 인간성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 하는 과제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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