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하다”라는 감정은 다루기가 힘들다. 서운함을 자주 내비치면 그릇이 작은 인간으로 보일까 봐 애매한 사이에서는 내가 그에게 서운함을 느낄 자격이 있나 서운함의 자격을 따져보다가 애써 감춰두는 감정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상대에게 서운함을 정확한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행동이나 표정에서 티가 날까 봐 그 감정 자체를 부정하기까지 한다. 그럴 정도의 일은 아니야 서운해하지 말자. 하고. 서운함은 내 감정들 중에서도 가장 애물단지 취급을 받으며 “너는 나서지 마”라는 질책을 가장 많이 받는 아이이다.
부정적으로 분류되는 감정 중에서도 화를 내거나 슬퍼하거나 우울해하거나 이런 감정들은 때론 “너도 발산해야 할 때가 있어야지” “왜 그 순간에 표현하지 못했어” 하고 밖으로 표출될 욕구로 존중받지만 서운함은 감춰두고 싶은 나의 치부처럼 내 안의 가장 후미진 곳에 방치하고 홀대받는 감정이다.
서운함이라는 감정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지만 그 감정을 나에게 느끼게 하는 “상대”가 있다. 그리고 상대가 엄청나게 큰 잘못을 나에게 저질렀다기보다 내가 그에게 기대하는 바를 그가 충족시켜주지 못할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기대와 서운함은 짝처럼 같이 다니는 아이들이라 기대가 없는 이에게는 서운함도 느끼지 않는다. 그 기대라는 감정은 내가 타인에게 내 멋대로 부여하는 것이기에 서운함이라는 감정을 극복하려면 심리 전문가들은 타인에게 무엇인가 줄 때 기대를 내려놓고 돌려받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온전히 주는 기쁨에 집중하라거나 인간관계에 너무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하면 타인에 대한 서운함이 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서운함은 타인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 내가 일방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때가 많아서 밖으로 표출된다고 하더라도 정확하고 분명하게 표현되지 않고 시무룩한 표정이나 투덜대는 행동에서 유추되는 정도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걸 삐졌다고 얘기한다. 잘 삐지는 사람은 앞에서 얘기했듯이 속이 좁은 사람, 감정적인 사람, 미성숙한 사람으로 분류된다. 내가 충분히 서운함을 느낄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그걸 상대에게 표현하는 순간 나는 나의 감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아직 철들지 못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서운함을 자주 느낀다(고 나는 생각한다). 완전하지 못한 인간이 서로 관계 맺으며 살아갈 때 의도치 않게 서로를 향한 오해가 쌓이기도 하고 내 삶이 팍팍해서 그런 시기에는 가까운 이들에게 소홀하기도 하고 내 마음만큼 상대의 마음이 크지 않아서 그 자체가 서운함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서운함은 표출되지 않더라도 마음속에 쌓인다. 그리고 그 서운함을 준 상대와 서서히 멀어지게 한다. 어 하고 너무 멀어졌다고 생각하고 돌이켜봤을 때는 왜 서운했는지 그 상황과 원인은 생각나지 않고 “서운했었다”는 감정만 흔적처럼 남아있는 경우도 많다. 서운함은 기대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감정일까. 내가 마음을 주는 이들에게 기대를 전혀 안 할 수는 없으니 기대를 조절하면 서운함의 감정도 조절되는 것일까. 그래도 효과를 봤던 방법은 기대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타인은 나와 같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연습이었다. 기대했지만 기대한 대로 상대가 반응해주지 않았을 때 예전에는 상식적으로 그이는 어쩜 그럴 수가 있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면 처음에 작게 느낀 서운함이 곱씹을수록 커지다가 눈덩이처럼 마음에 쿵하고 굴러 떨어졌다. 이제는 서운함을 느끼면 우선 나에게 그럴 수 있지라고 해 준 다음에 타인도 그럴 수 있지라고 해준다. 그렇다고 서운함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서운함이라는 감정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잘 꺼내서 들여다보고 다독여준다. 상대가 있기에 느끼는 나의 감정이지만 온전히 “내” 감정이기도 한 서운함을 다른 감정들의 후 순위로 밀어 두지 않고 다독여주면서 돌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서운함이 가시지 않을 때 그 마음은 상대에게 표현해야 한다는 결심이 섰다면 어떤 식으로 말하는 것이 현명한 걸까. 말을 안 해서 타인의 감정을 몰라서 답답한 것만큼이나 타인이 나에게 가지는 깊은 감정은 내가 그만큼 타인에 대한 마음이 없을 때는 받아들이기 부담스러운 느낌으로만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서운함은 감정이지만 우리는 서운함을 얘기할 때 감정을 배제하고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기 위해 애쓴다. 내 서운함으로 인해 상대를 잃을까 봐 상대에게 내가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까 봐 그 순간에도 겁이 나는 것이다.
“서운하다”의 뜻을 찾아보면 “마음이 모자라 아쉽거나 섭섭한 느낌이 있다”라고 나온다. 타인의 마음이 나에게는 모자라게 느껴질 때 느껴지는 감정. 내가 그이보다 상대에 대한 마음이 크다는 것을 끝내 인정해야만 하게 만드는 감정. 서운함을 느낄 때마다 그 감정을 쓰다듬어준다. 그 사람을 많이 좋아하는구나. 네가 그이에게 바라는 것들이 있구나 하고 그 감정의 당사자 대신 내가 위로해준다. 서운함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끄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