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망을 먼저 익힌 마음의 기억
어떤 사람들은
좋은 일이 생겨도 먼저 기뻐하지 않는다.
기대가 앞서기보다는
“아직은 몰라”
“괜히 기대했다가 실망할까 봐”
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마치 마음이
기쁨보다 실망을 먼저 대비하는 것처럼.
사실 그건
낙관적이지 않아서도,
차갑기 때문도 아니다.
그보다는
기대했다가 다쳤던 기억이
너무 또렷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기대는 원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라고,
약속이 지켜질 거라 믿는 일.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
기대는 점점 위험한 것이 된다.
기대했던 말이 돌아오지 않았던 경험,
약속이 아무렇지 않게 미뤄졌던 순간,
용기 내어 꺼낸 마음이
가볍게 흘려보내졌던 기억들.
그런 장면들이 반복되면
마음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기대하면 실망한다.
기대하면 아프다.
그러니 차라리 기대하지 말자.
이건 비관이 아니라
아주 영리한 자기 보호 방식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저는 원래 기대를 안 해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그 말 뒤에는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다.
기대해 봤지만
늘 혼자였던 시간들.
기대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경험들.
그래서 마음은
기대하지 않는 연습을 먼저 시작한다.
실망하지 않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다시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그렇게 기대하지 않는 법은
습관이 되고,
어느새 성격처럼 굳어 버린다.
문제는
그 연습이 어른이 된 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는 데 있다.
연인 관계에서도
기대하기 전에 먼저 거리를 두고,
힘들어도 말하지 않고,
도움이 와도
“괜찮아요”라고 밀어낸다.
마음 한편에서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으면서도,
또 다른 한편에서는
그 기대가 어긋날 장면을
이미 그려보고 있다.
그래서 도움을 받는 순간에도
마음이 편해지기보다
오히려 더 긴장하게 된다.
혹시라도
또 실망하게 될까 봐.
이런 패턴은
머리로 이해한다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은 다르잖아.”
“이 사람은 괜찮은 것 같아.”
아무리 스스로를 설득해도
마음은 과거의 경험을 기준으로
반응한다.
왜냐하면
그 마음은 한 번 다친 게 아니라,
여러 번 같은 방식으로
실망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대를 다시 배우는 일은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풀어내는 작업에 가깝다.
중요한 건
지금의 내가
과거의 선택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그때의 나는
그 방식으로라도
나를 지켜야 했으니까.
기대하지 않는 마음은
나약함이 아니라
버텨온 흔적이다.
다만 이제는
그 방식이
나를 덜 외롭게 만드는지,
아니면 더 고립시키는지
천천히 살펴볼 때다.
다음 글에서는
이렇게 기대하지 않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이
왜 유독
‘받는 것’ 앞에서 불편해지는지,
왜 도움을 받으면서도
마음 한켠이 무거워지는지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받는 법을 배우지 못한 마음은
어디에서 멈춰 서 있었을까.
그 이야기를
다음 편에서 이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