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있으면 우리나라는 추운 겨울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긴팔을 입은 가족들과 영상 통화를 하고 있으면 실감이 난다. 거긴 겨울이구나.
그리고 호주의 여름은 우리나라의 여름과 꽤 다르다.
우리나라는 덥고 습하지만 호주는 건조하다. 처음 느껴본 건조한 여름, 나에게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강렬한 햇빛에 선크림과 선글라스는 필수이지만, 에너지가 솟는 기분이 든다. 그늘이 진 곳이나 해가 떨어지면 쌀랑한 느낌도 좋다.
호주의 한 가지를 우리나라와 바꿀 수 있다면 나는 '여름'을 고르고 싶다.
우리나라는 건물을 높게 지어 최대한 좁은 땅을 활용한다. 그래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촘촘한 건물에 하늘이 가린다. 퍼스는 번화가로 나가도 높은 건물이 많이 없다. 어디에서 봐도 푸른 하늘이 눈에 가득 찬다.
다이아넬라는 퍼스 시내까지 버스로 20분 정도 걸리지만 조용하고 깨끗했다. 내가 지낸 홈스테이는 단독 주택으로 담장이 높지 않고 아직 열쇠를 쓰는 집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우리 집에도 열쇠가 있었는데... 생각했다. 강도가 들진 않을까, 혹시 내가 열쇠를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친구들도 달랑달랑 열쇠를 가지고 다니는 것을 보면 다른 집들도 비슷한가 보다.
가장 달랐던 생활모습은 화장실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건식으로 화장실을 쓴다고 들었는데, 여기 호주가 그랬다. 홈스테이 첫날 하우스 규칙을 안내받으면서 화장실에서 말이 길어졌다.
샤워는 되도록 늦지 않게,
끝난 후에는 하수구 구멍의 머리카락을 버리고,
고무밀대로 부스 안의 물을 다 정리하고,
환풍기를 틀어둘 것.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깜빡할 때가 있었다.
이 귀찮은 일을 매번, 새삼 호주 사람들이 부지런하다고 느끼기도 했고. 하지만 점점 건식 화장실이 좋아졌다. 눅눅한 우리 집 화장실과 달리 쾌적했다. 나중에 내 집을 꾸민다면 화장실을 건식으로 관리해볼까.
여기는 외식물가가 비싸다.
대신 콜스나 울월스 등 마트에서 식료품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하다. 특히 과일과 빵이 저렴했던 것 같고, 이벤트를 하면 참치캔이 천 원을 하지 않았다. 내가 머문 홈스테이는 따로 식사를 제공하지 않았다. 그래서 저녁에 밥을 해 먹고 남은 것을 다음 날 어학원에서 먹을 점심으로 가져갔다.
내가 머문 홈스테이의 주방은 자유분방한 편이었다.
식료품과 주방도구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기보다는 제 나름의 질서가 있었다. 또 어찌나 뭐가 많은지, 냉장고와 선반은 항상 그득했다. 유통기한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주방에서 볼 수 있는 개미들이었다.
(친구들 홈스테이는 이렇지 않다고 했으니 집마다 다른 것 같다.) 내가 과일을 깎고 있으면 어느새 개미들이 도마 위로 기어 온다. 파리는 한 두 마리씩 항상 곁에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스스로 비위가 강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서는 그냥 그렇게 살아졌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
낮은 하우스의 담장처럼 내가 만난 퍼스 사람들은 친근했다. 버스에 타면 기사님과 굿모닝 하고 인사를 주고받는다. 내가 기사님께 인사를 먼저 받았던가, 아니면 주변 사람들을 보고 따라 했던가 잘 모르겠다.
또 한 번은 버스에서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왔는데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문화가 신선했다. 스몰토크가 그렇듯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루는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하던 중이었다.
카드로 계산을 하고 점원이 나에게 영수증을 건넸다.
검지와 중지에 영수증을 끼워 한 손으로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어학원 친구들과 선생님께 이야기를 하며 그 행동에는 아무런 의도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보다 우리가 예의를 차려서 하는 무언가가 많을 것 같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새롭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