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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지선 Jun 25. 2024

폴더와 태그의 종말

지적인 훈련의 기회가 줄어든다? 

최근에 재미있는 토론을 했다. 이메일을 분류하는 방법으로 무엇이 더 나을까? 

- Directory?
- Tags?

이 질문을 처음 생각해본 것은 아마 200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지금의 AI처럼, 당시의 키워드는 Web 2.0이었다. 이 시기부터 소셜 미디어, 사용자 생성 콘텐츠, 그리고 크리에이터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신문이나 TV 같은 미디어를 소유하지 않은 평범한 개인들이 각자의 채널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와 콘텐츠를 세상에 쉽게 퍼블리싱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소비자의 행태도 변했다.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보거나 듣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댓글로 피드백을 남기거나 크리에이터 또는 다른 사용자와 소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콘텐츠에 태그를 달고 분류하는 행동도 이때부터 시작되었고, Flicker나 Del.icio.us. 같은 태그기반의 프로덕트들이 인기를 끌었었고, 첫 직장인 Yahoo!에서는 이들을 인수했었다. 사람들은 막연히 태그가 정보 분류의 새로운 미래이고, 태그를 기반 프로젝트들이 잘 나갈거라고 생각했었지만, 결과는 ... 다들 아시죠? 

또 하나의 변화는 구글 지메일의 등장이다. 기존에는 Windows 데스크톱에서 파일을 정리하듯이, Outlook 이메일에서도 트리 구조를 이용해 메일을 분류했다. 계층 구조의 특성상 한 메일은 한 경로, 한 폴더에만 속할 수 있다. 반면, 지메일의 레이블(=태그)은 하나의 메일을 여러 분류(=태그)에 속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이 장점일 수 있지만, 나는 쓰지 않았다. 이미 계층 구조를 사용해 정보를 분류하는 방식에 익숙했고,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앱도 Outlook이었기 때문이다. 지메일의 레이블은 몇 번 시도해봤지만,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첫 질문으로 돌아가서, 토론의 결과는 "소수의 유저들을 제외하면, 아마 둘 다 필요 없을 것이다"였다.

폴더 트리든 태그든, 나만의 taxonomy(정보 분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개인의 지적 판단과 수작업을 요구한다. 나만의 분류 체계를 만들고 각각의 항목을 대표하는 이름을 지어야 한다. 분류 체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중복되지 않아야 하며, 목표 범위 내의 모든 요소를 포괄해야 한다. 각자가 정의한 분류 체계에 따라 일일이 폴더에 파일을 이동시키거나 레이블을 달아야 한다. 이메일의 경우, 필터를 걸거나 규칙을 설정해 반자동화할 수 있지만, 완전 자동화는 어렵다.

나부터 두 가지 방법 모두 쓰지 않는다. 태그는 원래부터 안 썼고, 언제부터인가 폴더도 쓰지 않게 되었다. 메일을 분류하는 유일한 기준은 "읽은 메일" vs "안 읽은 메일"이다. 메일이 워낙 많아 한 번 이상 읽는 메일이 드물다. 메일을 읽으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판단하고 바로 실행하면 끝이다. 예전 메일을 찾아봐야 한다면 검색해서 찾는다. 첫 번째 검색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부분 "보낸 사람" 검색을 한 번 더 하면 해결된다.

이메일뿐만이 아니다. 데스크톱에서도, 클라우드 드라이브에서도 파일을 찾을 때는 대부분 검색만 한다. 제어판 속 메뉴에 접근할 때도 검색으로 찾는다. 폴더 트리 경로를 따라가는 것은 최초로 폴더를 생성하거나 파일을 저장할 때뿐이다. 파일 이름의 일부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서 검색을 못할 경우에도 종종 그렇게 한다. Windows 8부터 시작 버튼과 사이드바에 검색창이 추가된 이후, 웹 검색뿐만 아니라 데스크톱의 파일, 앱, 설정까지 모두 검색의 범위에 포함된다. 사용자 리서치 결과들이나 몇몇 아티클들을 읽어보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방식으로 행동이 바뀐 것 같다. 

(Reference: https://www.theverge.com/22684730/students-file-folder-directory-structure-education-gen-z )

개개인이 택소노미를 구축하는 노동을 대체한 것은 검색 엔진 덕분이다. 사람이 일일이 키보드와 마우스로 분류하고 이름을 붙여주던 파일 제목을 이미 인덱싱 해놓았기 때문에, 필요할 때 검색창에 쿼리를 입력하기만 하면 된다. 제목뿐만 아니라 파일 내용도 텍스트 데이터라면 추출 후 인덱싱 된다. 항상 노출되는 영역에는 어느샌가 모두 검색창이 생겨서 수시로 접근하기도 편하다.

직장 생활 초년에는 나만의 택소노미를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해 주간 30분~1시간 정도 사용했던 것 같다. 이제는 이 시간을 절약해 다른 곳에 사용할 수 있으니 좋은 일일까? 개념을 구분하고 정리할 수 있는 지적 능력은 여전히 중요한데, 이런 능력을 일상에서 훈련할 기회가 사라진다는 생각도 든다. AI가 지식 노동자의 작업 도구로 사용되면서 이런 경우는 더 많아질 것 같다.

예를 들어, AI 어시스턴트 시나리오 중 가장 인기 있는 것 중 하나는 요약이다. 요약은 다양한 주제의 방대한 텍스트를 읽고, 깊이 있게 이해하며, 핵심 내용을 도출해내는 지식의 정제 작업이다. 간결하고 정확하게 소통하는 사람들은 요약을 잘하는 사람들이다. HP의 전 회장이었던 칼리 피오리나는 학부 시절 역사학을 전공했는데, 매주 수천 페이지의 텍스트를 읽고 요약해 리포트를 제출해야 했다. 이 경험은 그녀에게 지식을 집약하고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을 키워줬다는 그녀의 자서전 속 대목이 생각난다.

물론 수학 시간에 사용하는 계산기처럼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 수학에서 중요한 것은 문제를 정의하고 수식으로 변환해내는 것이니까, 실제 수식 계산에 들이는 노동은 계산기로 대체해도 된다. 그런데 정보를 프로세싱하는 전체 과정을 학습하고 훈련할 기회가 없이 AI가 요약해준 결과물만 받아본 사람들이라면, 과연 질문을 정의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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