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중에서
재작년 11월쯤, 배추 농사가 잘 되었다며 남편의 외숙모가 배추를 몇 포기 올려 보내셨다. 식구들 먹을 만큼만 짓는 농사라 약을 치지 않으셔서 새끼손톱보다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배추에 딸려왔다. 내가 풀밭에 놔준다고 달팽이를 들고나가려는데 날씨가 춥고 먹을 것이 없어서 죽을 것이라고 엄마가 나를 말리셨다. "그럼 어떡해?" 엄마는 큰 반찬통에 달팽이를 넣고 봄이 될 때까지 배추, 상추, 당근, 시금치, 사과를 조금씩 먹이면서 달팽이를 돌보셨다. 우리 집에서 그렇게 통통해진 달팽이는 봄이 되어 마지막 특식 고구마를 얻어먹고 나서 볕 잘 들고 먹을 것 많은 밭에 방생되었다.
엄마는 동물권이 무엇인지, 동물복지는 뭘 어쩌란 건지 모르신다. 그냥 숨이 붙어 있어 꼬물꼬물 하는 생명에게 목숨 부지할 기회를 주신 것일 뿐. '동물권'을 주창하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며 비웃는 사람들에게도 무의식 어딘가에는 이런 마음이 똑같이 존재할 것이다. 다만 동물복지의 실천에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무엇인가가 우리 각자의 선한 마음을 억누르고 모진 사람으로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계란을 예로 들면 1번과 2번이 난각 되어 있는 동물복지란은 4번 계란보다 거의 두 배나 비싸다. 동물복지를 실천하겠다고 빚을 내어 1번 계란을 사 먹는 것은 힘든 일이다. 동물 소비는 의식주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내 자금력 안에서 의식주를 해결할 뿐인데 동물복지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 동물학대범과 공범인 사람 취급을 받으면 이것은 내 밥그릇을 건드리는 일이므로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동물복지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도 고기를 먹고 계란을 먹는다. 모든 동물의 소비를 완전히 중단하는 것만이 동물복지는 아니다. 동물실험을 한 화장품과 하지 않은 화장품 중 하나를 선택할 때, 크루얼 케이지를 사용하는 고기로 만든 피자, 햄버거와 그렇지 않은 피자, 햄버거를 선택할 때와 같이 내 예산을 벗어나지 않는 한도에서 실천 가능한 동물복지도 많다.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실천한다고 해서 위선자라 손가락질하고 난 일관성 있는 사람이라며 작은 변화조차 거부하는 이 순간에도 동물들은 불필요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국제 동물보호단체인 '크루얼티 프리 인터내셔널'이 공개한 영상에서는 드레이즈 테스트를 위해 상자에 갇힌 토끼가 목을 돌려 옆에서 같은 일을 당하고 있는 친구의 눈을 정성스레 핥아주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표현에 의문을 품게 만든다. 우리는 '짐승 같다'는 표현을 잔인함으로, '인간적'이라는 표현을 도덕적인 무엇으로 사용하지만 저 영상 속에서 인간적인 것은 누구인가? 극도의 고통 속에서도 같은 처지의 친구를 돌보는 토끼인가, 아니면 토끼를 고통으로 몰아넣는 인간인가?
드레이즈 테스트란 토끼를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하고 눈에 온갖 화학물질을 집어넣는 테스트인데 이 과정에서 토끼들은 고통에 겨워 목뼈가 부러질 정도로 몸부림을 친다고 한다. 사람 눈은 이물질이 들어가면 즉시 눈물샘에서 눈물이 분비되어 씻어내는 기능이 있지만 토끼에겐 이 눈물샘이 없다. 몸이 고정되어 눈을 어디에 비벼 닦지도 못한 채 눈에 주입된 화학물질을 죽을 때까지 견뎌야 한다. 실험 후 살아남아도 결국 살처분된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은 개로 시작된 이야기이지만 개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절대약자인 모든 생명에 관한 이야기이고 여기에는 어린이와 같은 사람도 포함된다. 보호자의 마음가짐에 따라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모든 생명들, 겪어야 하는 고통이 정해지는 생명들에게 가능한 최소한의 고통만 주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는 책이다.
동물권을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개만 보호하면 되냐?"라거나 "사람이 먼저지 동물이 먼저냐?"라고 빈정거리는 사람들 중 약자의 편에 서서 싸워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람들이 절대다수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약자를 위해 목소리를 내보았거나 직접 행동해 본 사람들은 보호하려는 대상이 다르더라도 약자를 위해 행동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난민 어린이에게 기부하는 사람에게 '우리나라 사람이나 도와라, 남의 나라 어린이를 왜 돕냐'라고 반응하는 사람들은 그 누구에게도 기부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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