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

by 소림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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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7의 봉인.


죽음을 담보로 사신과 체스를 두는 기사의 모습은 얼핏 비트겐슈타인의 이미지와 교차한다. 그는 평생을 죽음 충동에 시달리며 삶과 죽음이 매 순간 끊임없이 교차하는 전쟁터에 자원입대해 죽음과 대면한다. 총알이 수없이 빗발치는 전장 속에서도 그는 아랑곳 않고 자신의 수첩을 열어 명제를 써 내려간다. 포로로 잡혀 감옥에 수감된 뒤에도 펜을 놓지 않고 자신의 영감을 글로 옮긴다. 오스트리아 철강왕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선천적으로 우울한 성향을 가진 형들의 자살을 지켜봐야만 했고 자살로 삶을 끝낸 형들과 마찬가지로 자신 또한 평생을 죽음 충동에 시달리며 연명한다. 아버지의 죽음 후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뒤에도 그는 모든 재산을 남은 형제들과 예술가들에게 나눠 주고 청빈한 삶을 산다.


버드란트 러셀을 만나 철학을 공부하며 그는 죽음 충동을 조금이나마 철학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철학은 그에게 삶의 도피처가 되었다. 러셀이"이 방에 코뿔소가 없다는 걸 증명해 보라"라는 약간은 짓궂은 질문에 비트겐슈타인은 증명할 수 없다는 답을 내놓는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대답에도 러셀은 그에게 설득당해 코뿔소의 존재를 심각하게 자문한다. 러셀은 그를 순수한 천재의 전형으로 보았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전기 철학인 <논리 철학 논고>를 세상에 남기고 홀연히 산골로 들어가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그사이 <논리 철학 논고>는 유명세를 떨쳤고 그가 다시 케임브리지로 돌아오던 날 경제학자 케인즈는 자신의 부인에게 "신이 다시 케임브리지로 돌아온다"라고 귀띔한 다음 기차역에 그를 마중 나간다.


그리고 케임브리지로 돌아온 비트겐슈타인의 박사학위 논문 <논리 철학 논고>를 심사하며 버드란트 러셀은 다시 한번 실의를 경험한다. 러셀은 그의 논문을 이해하지 못했고 비트겐슈타인은 러셀에게 예상했다는 듯 위로의 말을 건넨다. 케임브리지에서 그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고 일부 수정하며 세상과 언어의 관계를 다룬 전기철학에 이어 인간과 언어의 관계를 추적한다. 이후 전립선암 진단을 받고 시한부 삶을 통보받은 비트겐슈타인은 “사람들에게 나는 멋진 삶을 살았다고 전해주시오”라는 유언으로 비로소 죽음충동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는다. 사후 그의 이론을 집대성한 <철학적 탐구>로 철학사의 전설이 된다. 비트겐슈타인의 전언.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침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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