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 디자인 속의 UX

보드게임을 프로덕트로 가정하고 UX 실무 기법들을 활용해 UI 개선해보기

by 만식

*원문 출처를 번역한 글입니다.


UX 전문가로서 보드게임 디자인과 UX 사이의 상관관계를 무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페르소나 설정부터 프로토타이핑, 사용성 테스트, 그리고 콘텐츠 계층 구조 설계에 이르기까지... 두 분야의 유사성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만약 당신이 보드게임 디자이너라면, 아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이런 작업들을 수행하고 있을 것입니다.


보드게임 디자인에 UX를 적용해서 얻는 이점은 초기 기획 단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UX 원칙은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에서 유용합니다. 예를 들어, '휴리스틱'을 활용해 최종 UI 요소들을 점검하고 개선할 수 있고, '정보 구조(IA)' 원칙을 컴포넌트 설계나 규칙서 제작에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보편적인 아이콘 체계를 활용하면 플레이어가 게임의 의도를 더 쉽게 파악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보드게임을 디자인할 때 고려해야 할 핵심 요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UX 실무 기법은 보드게임의 완성도를 높여줍니다.

게임을 개선하려면 타겟이 누구인지 명확히 정의하고, 그들과 소통하며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디자인 과정에서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디자이너의 주요 역할은 프로젝트의 방향을 잡고 비전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당신의 게임을 위한 최선인지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더 깊이 들어가기에 앞서, 용어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개발 중인 게임을 직접 해보는 과정을 '플레이테스트'라고 부릅니다. 저는 그동안 수많은 플레이테스트를 거치며 소중한 피드백을 받았고, 수십 명의 사람과 함께 게임을 즐겼습니다. 이 과정에 참여해 시간과 의견을 나누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결과물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 내용은 보드게임의 수많은 구성 요소 중 하나인 '카드'의 진화 과정을 심도 있게 다룹니다. 이 카드는 약 10번의 반복 개선을 거쳤지만 여기서는 3가지 핵심 전환점에 집중해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왜 그런 변화가 필요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설명하겠습니다. 최적의 카드 디자인을 만드는 데에는 확실히 정교한 기술과 감각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이게 진짜 최종이야"라고 생각하며 디자인했던 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습니다(물론 과장이지만 무슨 뜻인지 아시죠?). 디지털 제품과 마찬가지로 보드게임 역시 출판되기 전까지는 진정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출판 이후에도 수정은 계속될 수 있지만요.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죠. '모트'를 소개합니다.
image.png 이분은 모트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죠.


자, 마지막 인사를 나누세요. 모트 큰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엄숙한 자리가 되어야 마땅하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군요.


모트의 저택은 값비싼 유물과 정체가 의심스러운 가업 상속물, 그리고 아무도 원한다고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 탐나는 아주 사적인 물건들로 가득합니다. 여러분은 그의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서 유언장 낭독을 위해 모였고, 각자 자신의 몫보다 더 많은 유산을 챙겨가길 내심 바라고 있습니다.


여기 그 "의심스러운 상속물" 중 하나인 아이템 v1을 소개합니다.



image.png v1 박제된 페럿


이 카드는 4개의 주요 영역으로 나뉘며, 각각 서로 다른 정보를 전달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image.png 왼쪽: 숫자와 문양. 중앙: 재미 요소. 오른쪽: 능력.



왼쪽: 카드의 숫자와 문양을 나타냅니다(다이아몬드 6 같은 구성).

중앙: 카드의 "재미"를 담당하는 부분입니다. 카드마다 고유하고 기발한 아이템 이름과 그림이 들어갑니다.

오른쪽: 플레이어가 이 카드를 획득하면, 해당 플레이어는 특수 능력을 얻게 됩니다.


image.png 왼쪽: 아이템 카드 덱 뒷면, 흑백 여부를 표시. 오른쪽: 상단 박스와 하단 박스.



마지막 기능은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저는 흥미로운 메커니즘을 아주 좋아하는데요. 예전에 카드 덱의 뒷면이 뒤집힌 카드의 효과에 영향을 주는 게임을 접한 적이 있는데, 그 방식을 제 게임에도 도입해 보았습니다. 원래 의도는 이랬습니다. '박제된 페럿' 카드를 뽑아 덱 옆에 놓으면, 다음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로 카드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1. 카드 덱 뒷면에 '검은색' 스페이드가 보일 경우: 가장 높은 점수의 '그림' 아이템을 가진 플레이어가 페럿 카드를 가져갑니다.
2. 카드 덱 뒷면에 '흰색' 스페이드가 보일 경우: 가장 높은 점수의 '조각상' 아이템을 가진 플레이어가 페럿 카드를 가져갑니다.


카드 한 장이 감당하기엔 너무 많은 역할이었죠. 게다가 카드가 놓인 위치 (플레이어의 손안 혹은 테이블 위)에 따라 신경 써야 할 맥락도 너무 많았습니다. 수많은 플레이테스트를 거치며 많은 분과 이야기를 나눴고, 그 과정에서 수집한 주요 피드백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게임의 스토리와 기발한 아이템들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테이블 위의 카드를 획득하는 과정에 제가 더 주도적으로 개입하고 싶어요.”

“카드에 정보가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네요.”

“'흑과 백'으로 구분하는 표현 방식이 직관적이지 않아요.”

“카드는 너무 복잡해서 혼란스러운데, 정작 게임 플레이 자체는 깊이가 느껴지지 않아요.”


UX 관점에서의 해석:

카드의 인지 부하를 줄여야 했습니다.

몇몇 기능들에 대해서는 별도의 UI를 설계하는 것을 고려해야 했습니다.

디자인 프로세스 모델을 활용하여 피드백을 이해하고, 반복 개선하며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한 가지 뼈아픈 조정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제 '첫 번째 애착 기능'이었던 '카드 덱 뒷면이 뒤집힌 카드에 영향을 주는 방식'을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거든요. 결국 덱 뒷면에 의존하는 대신, 플레이어들이 자신의 카드를 사용해 투표하는 메커니즘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그럼 다음 주요 개선 버전인 v2를 살펴보겠습니다.



image.png v2 박제된 페럿



실수였습니다. 카드 한 장에 네 가지, 아니 그 이상의 역할을 욱여넣으려 했던 것이죠. 문양과 숫자, 특수 능력, 두 가지 승리 조건, 그리고 그 이상의 것들까지... 저는 사용자의 핵심 목표를 우선순위에 두는 데 실패했습니다. 카드 안에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말이죠!


이 버전의 카드는 5개의 주요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다른 정보를 전달합니다.



image.png 왼쪽: 숫자와 문양. 중앙: 재미 요소. 오른쪽: 승리 조건.


1. 왼쪽: v1과 동일합니다. 카드의 숫자와 문양을 나타냅니다.
2. 중앙: v1과 동일합니다. 카드의 "재미"를 담당하는 부분입니다.
3. 오른쪽: v1의 네 번째 특징과 동일하지만, 이제 카드 하단으로 통합되었으며 색상이 '골드 vs 레드'로 변경되었습니다.


참고: (v1의 세 번째 특징이었던) "특수 능력"은 별도의 토큰으로 분리하여 카드 디자인을 간소화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플레이어들이 요구했던 요소인 '스토리'를 더 추가할 기회로 삼았습니다.



image.png 왼쪽: 퍼즐 구성 요소. 오른쪽: 레드(또는 골드) 테두리 색상.


4. 퍼즐: 모든 카드를 메타 게임의 조각으로 변환했습니다. 이제 게임의 일부는 살인 사건 미스터리가 되었고, 다른 일부는 탈출 게임의 성격을 띠게 되었죠. 저는 이런 '진전'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5. 투표: 이제 플레이어들은 레드 또는 골드 중 하나에 투표하여 테이블 위에 놓인 카드의 승리 조건을 직접 결정할 수 있습니다.


당시 저는 카드가 이제 완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플레이어에게 승리 조건을 투표할 권한을 주었고, 숫자와 문양을 한데 모아 가독성을 높였습니다. 승리 조건들도 하단에 모아 투표 시스템과 색상을 맞췄죠. 게다가 아주 멋진 방탈출 스타일의 살인 사건 미스터리 요소까지 더해졌으니까요.


모든 피드백을 반영했다고 믿었습니다. 사람들이 원했던 풍성한 스토리, 카드 혼란 감소, 게임의 복잡성(깊이) 강화, 그리고 불편했던 '흑백' 대결 구도 제거까지... 하지만 저는 가장 결정적인 피드백을 간과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카드가 너무 정신없다'는 점이었죠.


이제 저는 이런 피드백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카드가 여전히 혼란스러워요.”

“카드에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은 정보가 너무 많아요.”

“그럼 이 미스터리는 한 번밖에 못 푸는 건가요?” (음, 네, 방탈출 게임이니까요!)

“토큰(이전의 '특수 능력')이 정말 재미있어요!”


저는 한 걸음 물러나 이 게임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내가 똑똑하다는 걸 사람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게임인가, 아니면 플레이어들이 유언장 낭독 현장에서 투덜대는 탐욕스러운 친척이 된 것처럼 '느끼며' 즐거움을 만끽하게 하는 게임인가? 당연히 제가 목표로 한 것은 후자였습니다.


또한 이 게임의 타겟 독자가 누구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윙스팬(Wingspan)'이나 '아크 노바(Ark Nova)' 같은 무거운 게임들 사이에서 가볍게 분위기를 환기하고 싶은 캐주얼 게머와 취미 게이머들이었죠. 따라서 게임은 덜 복잡해야 했고, '재미'라는 본질에 더 집중해야 했습니다. 저는 타겟 유저가 원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그들이 원치 않는 요소는 과감히 걷어내며 카드를 다시 살펴봐야 했습니다.


UX적 관점에서의 해석:

페르소나를 명확히 정의하고 그들의 사고방식에 몰입하여, 오직 그들만을 위한 설계를 해야 했습니다.

더 많은 사용성 테스트가 필요했습니다.

콘텐츠 계층 구조가 사용자의 목표 및 카드를 사용하는 맥락과 일치하는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전문 지식(SME)의 개입이 과도한 기능 추가(Feature creep)를 초래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진심으로 카드의 인지 부하를 줄여야 했습니다.

일부 기능들을 위해 더 많은 UI 요소를 별도로 분리 설계하는 것을 고려해야 했습니다.


덧붙이자면, 제 "두 번째 애착 기능"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바로 살인 사건 미스터리 탈출 게임 요소였죠. 정말 아끼던 아이디어였지만, 너무 과했습니다. 무엇보다 제 타겟 독자에게 맞는 옷이 아니었죠. 아마 나중에 다른 게임에서나 활용하게 될 것 같네요.


자, v3를 공개합니다.



image.png v3 박제된 페럿


이 버전의 카드는 크게 2가지 영역으로 구성됩니다.

이름과 숫자: v1, v2와 동일합니다. 카드의 숫자와 문양을 나타냅니다.

스토리: v1, v2와 동일합니다. 카드의 "재미"를 담당하는 부분으로, 이제 더 많은 유머가 추가되었습니다.


다들 궁금하시겠죠. 나머지 요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특수 능력: v2에서 이미 토큰으로 옮겨졌습니다.

탈출 게임/살인 사건 미스터리: 완전히 삭제되었습니다.

투표: v1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삭제되었습니다.

승리 조건: 새로운 카드 유형인 '보물' 카드로 분리되었습니다.


image.png 왼쪽: 보물 카드 덱의 뒷면, 골드 또는 레드를 표시. 오른쪽: 골드 박스와 레드 박스.


매 라운드 (새롭게 디자인된) 보물 카드가 한 장씩 뒤집히며, 덱 맨 위의 상태에 따라 가장 높은 카드를 낸 사람이 이길지, 혹은 가장 낮은 카드를 낸 사람이 이길지가 결정됩니다.


마침내 카드를 간소화하고 나서야, 제 첫 번째 애착 기능(안녕, 오랜 친구!)을 다시 넣을 공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더 좋은 점은, 이 기능이 게임에 완벽하게 녹아들었고 제가 원래 구상했던 대로 작동했다는 것입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덕분에 사람들이 원했던 스토리를 더 많이 담을 수 있었고, 플레이어들이 쫓게 될 '보물' 요소도 도입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공금을 횡령하는 집행인 캐릭터까지 추가해 게임의 규칙을 전면 개편함으로써, 마치 탐욕스러운 유언장 낭독 현장 같은 느낌을 더 실감 나게 구현했습니다. 모든 요소가 딱 맞아떨어지기 시작했고, 게임은 훨씬 더 즐겁고 몰입감 넘치며, 탐욕스러운 친척들이 티격태격하는 분위기가 잘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훨씬 덜 혼란스러워졌죠.


전반적으로 (카드 한 장에 과도한 역할을 부여하는 대신) 카드 디자인에 미니멀리즘 접근 방식을 취한 덕분에 카드를 이해하기 더 쉬워졌고, 테마의 재미를 위한 공간도 더 확보할 수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게임 전체의 완성도가 높아졌습니다.


여전히 더 많은 플레이테스트가 필요하겠지만, 최신 버전에 대해 받은 피드백을 바탕으로 볼 때 적어도 '카드'만큼은 이제 "준비가 되었다"고 믿습니다. 이 여정을 통해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신의 게임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명확히 정의하고, 오직 그들을 위해 만들어야 합니다.
피드백에 열린 마음을 가질 때만 게임은 발전할 수 있습니다. (설령 그것이 정말 아끼는 요소를 보류하는 것을 의미할지라도요. 그 요소는 이번 게임 혹은 다음 게임에서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자신의 비전에 집중하세요.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안된다고 해서 그것들을 모두 구현하는 것이 게임을 더 낫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의 게임이니, 결정은 당신의 몫입니다.


유언장 낭독 현장에 참여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궁금하시다면, 이 게임은 '아임 더 보스(I’m the boss)', '포 세일(For Sale)', '하이 소사이어티(High Society)'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점을 참고해 주세요.


보시다시피 보드게임 디자인과 UX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타겟 독자를 고려해 디자인하는 것은 페르소나 설정과 같고, 플레이테스트는 사용성 테스트와 같습니다. 플레이테스트에 임하는 사고방식은 디자인 프로세스 모델 그 자체이며, 부정적인 피드백을 식별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확산과 수렴을 반복합니다.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드게임 디자인이나 사용자 경험(UX)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면 언제든 연락해 주세요. 모든 카드는 제가 직접 디자인했으며 NounProject의 아이콘들을 사용했습니다. 다만 박제된 페럿, 모트, 두루마리, '모나리자' 일러스트는 임시 이미지로서 AI로 생성한 것입니다. 이 게임이 출판된다면 해당 이미지들은 아마 퍼블리셔를 통해 교체될 것입니다.


원문 출처: https://uxdesign.cc/ux-in-board-game-design-97bfcdb1d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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