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재를 파헤치다
『존재와 시간』을 읽으며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이 책이 생각보다 조용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거대한 개념과 낯선 용어들로 가득하지만, 그 중심에는 늘 하나의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하이데거는 인간을 추상적인 이성이나 영혼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을 ‘세계-안에-존재하는 존재’, 즉 이미 삶 속에 던져진 존재로 봅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어떤 선택도 하지 않은 채, 이미 하나의 세계 속에 놓여 있습니다.
가정, 언어, 시대, 역할
이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하기 이전에 나를 규정합니다.
하이데거는 이를 ‘던져짐’이라 불렀습니다.
이 개념을 읽으며 저는 이상하게도 위로를 받았습니다.
삶이 가끔 버거운 이유는,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완벽하게 선택할 수 없는 조건 속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던져진 존재라고 해서,
그저 흘러가며 살아도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묻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그 조건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는 흔히 ‘남들처럼’ 살아갑니다.
하이데거는 이를 ‘세인(das Man)’,
즉 ‘그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삶이라 부릅니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다들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 익숙함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자기 자신을 잃어갑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개념은 단연 ‘죽음에의 선행’이었습니다.
하이데거는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나를 나로 돌아오게 만드는 사건으로 봅니다.
죽음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오직 나만의 가능성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을 자각하는 순간, 비로소 자신의 삶을 대신 살아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깨달음이 바로 ‘진정성 있는 존재’의 출발점입니다.
책을 읽으며 저는 스스로에게 여러 번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선택은 정말 나의 것인가,
아니면 익숙한 기준에 기대고 있는가.
바쁨 속에서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이데거의 철학은 답을 주기보다, 도망치지 못할 질문을 남깁니다.
그래서 이 책은 어렵지만, 동시에 진실합니다.
삶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항상 진행 중인 가능성이라고.
우리는 매 순간 스스로를 선택하며, 그 선택의 누적이 곧 ‘나’가 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삶이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에 책임을 지는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는 위대한 철학 개념이 아니라,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에 깃들어 있다는 것.
우리가 오늘을 어떻게 살아내느냐가, 이미 하나의 철학이라는 사실을
『존재와 시간』은 조용히 알려줍니다.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이기상 옮김, 까치
Martin Heidegger, Being and Time, translated by John Macquarrie & Edward Robinson, Har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