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섭 지음
초등학교 때 동네 길거리에서 사 먹었던 컵볶이와 떡꼬치 맛을 잊지 못한다. 컵볶이 작은 컵은 300원, 큰 컵은 500원, 떡꼬치는 200원이었다. 당시에는 어린아이들이 하나같이 다 길거리에서 떡볶이나 떡꼬치를 입에 물고 걸어 다녔다. 나는 따로 받는 용돈이 없어 내 방에 놓인 플라스틱 돼지 저금통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큰이모네에 놀러 갈 때면 친척 누나들은 내 것과 똑같은 돼지저금통을 거꾸로 들어 동전 넣는 구멍으로 돈을 빼 간식을 사 먹곤 했다. 그리고 난 그 기술을 잘 익혀놓았다가 집에 와 부모님 몰래 저금통에서 돈을 뺐다. 티 안 나게 500원, 1000원씩 빼서 컵볶이와 떡꼬치를 사 먹었고, 그런 나날들이 모이고 모이다 보니 돼지저금통 속 돈은 어느새 반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래도 나는 계속 돈을 빼 간식을 사 먹었다.
시간이 지나 이사를 하게 된 우리 가족. 짐을 싸던 중 꽁꽁 숨겨놨던 나의 플라스틱 돼지저금통을 발견하신 엄마. 그리고 들려오는 사자후. “너 이게 뭐야! 저금한 돈을 언제 이렇게 빼다 썼어!!!” 휘익 휘익 바람 소리를 내며 휘둘러지는 그녀의 회초리. 그 회초리를 민첩하게 요리조리 피하는 나. 피하는 내 모습에 더욱 격분하여 회초리를 휘두르는 엄마.
시간은 더 흘러 돼지저금통 사건이 하나의 추억거리로 접어들었을 때, 엄마는 다시금 그 이야기를 꺼내시며 미약한 분노를 하신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주셨던 용돈들이 하나같이 다 그 저금통에 들어있었는데, 그걸 몰래 다 빼다 썼어 개눔의 시끼. 차라리 간식 사 먹고 싶다고 용돈을 달라 하지.”
엄마의 말을 듣자 어린 시절 군것질에 눈이 멀어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버렸다는 사실이 어릴 때 맞던 엄마의 회초리보다 날 더 아프게 했다. 일찍 돌아가실 줄 알았더라면 저금통 속 구권지폐들을 쓰지 않고 잘 간직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