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일기 Mar 22. 2024

내 인생 최고 영화 중 하나가 된 "듄:파트2"

영국 극장에서 본 첫 영화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재작년에 우연히 "더킹: 헨리5세"를 보고 티모시 샬라메의 팬이 되었다. "콜미바이유어네임"을 보고 입덕하는 것이 좀 더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나는 전투신에서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하는 헨리5세가 뿜어내는 카리스마에 압도되고 또 매료되어버렸다. 마른 몸집에서 어떻게 저런 에너지가 나오는 것일까, 신기하기도 했다.


"더킹: 헨리5세"를 본 후 그가 좀 더 알고 싶어졌고, 그를 톱스타 반열에 올려준 "콜미바이유어네임"을 보았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콜미바이유어네임"에서는 아미해머가 더 돋보였다. 그렇지만 적어도 티모시 샬라메가 왜 할리우드에서 그토록 주목받는 배우가 되었는지 충분히 설명이 되는 영화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보게 된 것이 "듄: 파트1"이었다. 


언젠가부터 영화를 보러 가고자 시간을 내는 자체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고, 유튜브에 있는 요약된 버전을 간간히 보는 것으로 대체했다가, 요즘은 무슨 영화를 보아도 웬만해서 감흥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 것도 있고, 너무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접했었던 터라 이제는 어지간해서는 신선한 자극을 받기가 어려워진 것 같다. 하지만 "듄: 파트1"은 참으로 오랜만에 영화광 세포를 깨워준 작품이었다.


"듄: 파트1"이 좋았던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신선함"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소설의 존재 자체조차 모르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신선한 배경과 이야기가 나를 기분좋게 자극했다. 특히 나는 프레멘족의 샌드워크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아직 풀어내가야 할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기에, 그 뒷이야기가 너무도 기다려졌다. 


그렇게 2년을 꼬박 기다렸다. 작년부터 남편에게 우리는 "듄: 파트2"가 나오면 꼭 영화관에 가서 보아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해두었었다. 도대체 2편은 언제 나오나, 생각날 때마다 확인을 해보았는데, 조금씩 시기가 미뤄지더니 결국 영국에 오고 나서야 여기저기 개봉 예정이라는 포스터들을 볼 수 있었다.  


듄: 파트2 포스터


시험이 끝나고 남편이 잠시 영국에 들어오자마자 개봉일이 되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작은 극장을 찾아냈고, 얼른 표를 예매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Central의 대부분의 극장들이 자리가 꽉 차서 좌석을 구하기가 어려웠다고 하는데, 내가 갔던 극장은 한적한 동네 작은 규모인데다 3D나 4D 상영이 없어서인지 자리가 텅텅 비어있었다. 덕분에 개봉일인 3월 1일에 어렵지 않게 자리를 예매해서 편하게 관람을 즐길 수 있었다.


영화보러 가는 길


영국의 영화관은 뭔가 다른 점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한국의 영화관과 다른 점이 전혀 없었다. 그래도 뭔가 영국에서 처음으로 영화관에 왔다는 설렘에 광고가 나올때 그 화면도 한장 찍어 보았다. 그런데 영화시작 전 광고시간이 정말 길었다. 거의 30분정도 광고를 틀어줘서, 내가 광고를 보러 온건지 영화를 보러 온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광고타임


그리고 영화는 정말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게다가 기대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이렇게 실망을 안시킬 수 있다는게 너무 신기할 정도다.


"본 얼티메이텀"(2007)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거의 10년간 품고 있었던 여운과 환상이 "제이슨 본(2016)"을 보고나서 와장창 깨져버려서 영화보러 간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생각했던 것이, 속편이 기대를 충족시키거나 전편보다 더 좋을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유일하게 그 기대를 충족시켰던 영화가 "스파이더맨3(2007)"였지만, "듄: 파트2"만큼 기대를 뛰어넘은 속편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 영화 내내 예측한대로 흘러가지 않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들이 너무도 예측할 수 있는 형태로 흘러가서 쉽게 지루해지곤 하는데, "듄: 파트2"는 다음장면에 항상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플롯이 진행되어서 3시간 가까이 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이 없었다. 


단순히 영웅을 만들어가는 스토리로 구성하지 않은 것도 너무 맘에 들었다. 티모시 샬라메가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추앙받고, 한편으로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생겨나 그들이 모두 자신을 따르게 하고자 계산을 하는 모습이 정말 설득력있게 그려졌다. 그리고 실제로 영화가 끝을 향해갈때쯤 이 영화가 "영웅스토리"가 아님을 분명히 드러내는 장치가 등장했을 때, 나는 입을 틀어막은채 그 장면을 감상했다. 


티모시 샬라메는 전쟁터에서 사람들을 이끌어 가는 신에서 다시 한번 "더 킹: 헨리5세" 때 보여주었던 매력을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다만, 티모시 샬라메의 폴은 이미 관객들이 익히 알고 있는 캐릭터인데 반해, 오스틴 버틀러의 페이드 로타는 이번에 새롭게 등장하였고, 그의 캐릭터 분석이 워낙 출중하다보니 영화 중반부까지는 오스틴 버틀러가 좀 더 돋보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 영화는 페이드 로타를 최대한 활용하지는 못한 느낌이 들었다. 승부를 낼때 야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센 캐릭터인데, 마지막에 티모시 샬라메에게 너무 속절없이 당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듄: 파트2"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주인공이 권력도 사랑도 모두 쟁취하고 마는 일반적인 할리우드 영화와는 달리, 폴이 인생의 기로에서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선택을 하는 과정도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챠니에게 너무 감정이입된 나머지 영화가 끝날 때까지 펑펑 울고 말았다. 


크레딧이 올라가고도 자리에 앉아 눈물을 쏟고 있으니, 남편은 멜로영화도 아닌데 왜 이렇게 우는거냐며 의아해했다. 개인적으로 멜로 영화를 볼 땐 오히려 눈물이 안나는데, 액션영화나 SF영화에 작은 비중을 차지하는 멜로가 이상하게 오히려 더 감정을 뒤흔들 때가 많은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 집에 가는길


바로 다음 주에 출근하니 회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온통 듄 얘기 뿐이었다.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호평 일색이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듄의 원작 소설이 영미권에서는 꽤 유명한 것이어서 내가 얘기를 나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책을 읽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SF영화광인 미국인 튜터와도 듄 얘기를 꽤 오래 나누었는데, 그도 듄의 원작을 이미 모두 읽었다고 했다. 


다만, 책의 경우 3권부터는 내용이 조금씩 이상해져서 5권쯤에는 정말 심하게 이상해진다면서, 책을 한번에 한권씩만 사서 보라고 추천해주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해서 내친김에 Dune Messiah를 오디오북으로 구매했다. 다음 이야기가 도대체 언제 나올지 조급해지는 마음을 오디오북으로 달래볼 생각이다.


영화 끝나고 먹은 쌀국수와 볶음밥


3편의 근간이 될 책 내용이 이상한 것은 조금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드니 빌뇌브 감독을 믿어본다. 앞의 2편만큼 그는 다시 한번 관객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엄청난 작품을 들고올 것이라 기대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사랑하게 된 런던의 베이글: 브릭레인 베이글베이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