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복싱 다이어리 - 1. 시작

나의 운동 역사

by 서울일기

모든 이야기엔 서론이 있다. 나는 어릴적 운동을 참 싫어했었다. 지독한 집순이 성향인 나에게는 집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항상 큰 도전이다. 하지만 나는 서른셋이라는 늦은 나이에 운동의 매력을 알게 되었고, 이제 운동은 내 인생의 동반자라 여기고 있다. 운동을 몹시도 싫어했고 잘 하지도 못했던 내가 어떻게 복싱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풀어보고자 한다.


운동 젬병이었던 내가 운동을 좋아하게 된 이유


나는 어릴때부터 운동엔 늘 자신이 없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달리기를 하면 늘 함께 달린 아이들 중 꼴찌였고, 중학교 때 뜀틀 수업에서는 단 한번도 뜀틀을 넘지 못했다. 뜀틀 수업을 하면 꼭 뛰다가 뜀틀 위에 앉아버리는 애들이 있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 수영장에선 늘 다른 아이들과 따로 떨어져서 거북이 등을 메고 배워야 했다. 심지어 고등학교땐 수행평가 과제인 앞구르기를 못해서 체육선생님으로부터 체육은 그냥 포기하라는 말까지 들었었다. 중고등학교 6년 내내 체력테스트에서 턱걸이 1개도 채우지 못해 늘 최하등급을 받았다. 뭐든 어느정도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야 재미도 붙는 법인데, 어떤 종목을 시도하든 늘 평균에 못미치다 보니 자연스레 운동을 싫어하게 되었고, 기피하게 되었다.


그렇게 서른 두살이 될 때까지, 나는 늘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운동을 할만한 여유가 따로 없기도 했지만, 내 스스로 운동을 해야할 필요성도 딱히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삼십대 초반 거의 2년동안 몸이 아파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게 힘들 정도가 되자,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됐다. 당시 나는 몸도 마음도 모두 지칠대로 지쳐있는 상태였고, 소화기능 문제로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기 때문에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고 있었다.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고, 그저 아프지 않은 상태로 하루를 살아낼 수 있다면 감사하겠다고 생각했던 나날들이었다. 살아야겠다, 어떻게든 살아내야겠다, 그리고 내가 다시 살아낼 방법은 운동뿐이다. 어느날 내 머릿속에서 이런 목소리가 나를 운동으로 이끌었다.


내 몸의 근육을 깨어나게 해준 필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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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학교에서 월 4만 5천원에 제공해주는 주2회 필라테스 수업이었다. 필라테스 수업을 늘 받아보고 싶었지만 금전적인 부담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좋은 가격에 배워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어서 무척 기뻤다. 시작하기 전까진 뻣뻣한 나의 몸을 떠올리며 두려움이 앞섰지만,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나는 필라테스를 좋아하게 되었다. 생전 써보지도 않았던 코어 근육을 단련하고, 늘상 책상 위에서 움츠려있기만 했던 작은 몸을 이리 저리 쭉쭉 펴볼 수 있는 것도 참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수업 끝무렵 1분간 주어지는 명상 시간이 나는 너무 좋았다. 명상 시간에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고 온 몸을 이완하고 있노라면, 내 몸속에 있던 부정적인 에너지가 조금씩 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명상이 끝날 무렵에 내 눈가는 늘 촉촉해져 있었다.


러닝머신 위에서 인생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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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테스를 통해 생전 써보지 않았던 나의 운동 근육이 깨어나기 시작하자, 다른 시도도 해보고 싶어졌다. 나는 월 2만원인 학교 헬스장에도 등록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의 하루가 끝나면 헬스장에 가서 러닝머신 위에 올라섰다. 처음엔 5.0km/h로 걷다가, 시간이 지나자 점점 속도를 높여 6.5km/h로 걷는 것도 어렵지 않아졌다. 그리고 8.5km/h로 뛸 수 있게 되었다. 꾸준히 무언가를 하다보면, 정말 못하는 일도 잘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배웠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을 때 조금 더 뛰면 내 심장이 조금 더 튼튼해 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우리네 인생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 죽고 싶을만큼 힘든 시간을 참아내고 그 순간을 넘어섰을 때, 비로소 내 인생이 한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고요한 물속은 나의 안식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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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은 마약과도 같이 중독적인 운동이었지만, 내 무릎엔 그리 좋지 않았다. 러닝을 하면서 무릎이 시큰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전신을 단련하면서 체력을 키울 수 있는 운동을 다시 찾았다. 어릴때 슬리퍼로 맞아가며 배웠던 수영이었다. 그런데 신기한건 어릴적 잠깐 배웠던 덕택에 남들보다 빨리 배울수 있었다는 것이다. 어릴 때는 그렇게도 어려웠던 수영이었는데, 한달만에 왕초보반에서 중급반까지 넘어가는게 순식간이었다. 남들보다 진도가 빨라지니 자신감이 붙었고,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깜깜한 새벽에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쾌감도 좋았고,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온 몸의 근육을 깨울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 물 속의 고요함이 정말 좋았다. 할 수만 있다면 하루 종일 그 고요함을 느끼고 싶었다. 물 속에 있는 시간만큼은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요한 물 속은 나의 안식처였다.


현실에선 미운오리새끼이지만, 발레수업에서만큼은 백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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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 동네 생활체육관에서 발레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발레 수업이 1주일에 두번인데 5만 5천원이라니...! 고백하건대 나는 어릴때부터 발레를 하는 애들이 참 부러웠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발레는 꽤 여유있는 집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호사였기에, 가난했던 우리집에선 엄두도 못낼 일이었다. 집안 형편이 뻔했기에 단 한번도 엄마한테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입 밖에 내본 적 조차 없었다. 하지만 초등학생 시절 발레를 배우러 가던 친구들의 레오타드 차림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있었다. 어릴적 한풀이를 하고 싶었던 나는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동작이 너무 빠르지 않아서 좋았고, 우아한 몸짓과 눈짓으로 무언가를 표현해낸다는게 맘에 들었다. 첫 수업만 해도 동작 순서조차도 외우지 못해 우왕좌왕 했지만, 한달이 지나자 그럴듯하게 동작을 따라할 수 있게 되었다. 세달쯤 지나자, 동작을 조금씩 외우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현실에선 미운오리새끼였지만, 발레수업에서만큼은 나도 백조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발레 수업이 매일 기다려졌다.



인대 부상으로 멀어진 아마추어 발레리나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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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겨울날, 나는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인대를 크게 다쳤다. 거의 두달간 깁스를 해야했고, 발레는 고사하고 그 어떤 운동도 할 수 없었다. 물론 의사선생님이 추천해준 운동이 있었지만, 움직이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보니 나는 움직이는 것을 꺼려하게 되었다. 꿈에 그리던 토슈즈를 신을 수도 없고, 좋아하는 운동들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절망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발목의 통증은 생각보다 오래갔고, 나는 천천히 운동에서 멀어졌다. 가끔 산책을 하기도 했지만,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풀며 몸무게가 급격히 불어났고, 몸이 무거워지니 더더욱 운동을 하기 싫어졌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마음속 스트레스는 더욱더 쌓여만 갔다. 이따금씩 헬스장에 등록했지만, 코로나 환자 발생으로 이내 헬스장 문이 닫히기 일쑤였다.


우연히 발견한 집 앞 복싱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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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날 복싱짐 간판이 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지난 몇년간 늘 집 앞 그자리에 있었는데, 한번도 의식을 하지 못한채 지나쳤었던 것이다. 그저 상담이나 받으려고 들어갔는데, 굴욕적인 인바디 측정 후 관장님이 갑자기 PT를 시작했다. 인바디 기계가 보여준 결과는 참 신기했다. 그저 기계 위에 올라가 기계의 양 팔을 잡고만 있었는데 내 복부에 살이 집중된 것을 기가 막히게 맞추는 것이 아닌가. 살을 뺄 수 있고, 중독될 정도로 재밌는 운동이란 관장님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복싱은 나같은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여자 회원들도 많이 보였다. 무엇보다 신규회원을 위한 PPT 마지막 사진이 복싱 글러브를 낀 아드리아나 리마였던 점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내가 아드리아나 리마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망가질대로 망가진 내 몸이 조금은 다듬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그리고, 강해지고 싶었다. 늘 이리저리 치이는 내 자신의 약한 모습이 너무 싫었기에, 몸과 마음을 단련해 강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하여, 회원 등록비에 네고란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 관장님이었지만, 일단 믿어보자는 생각으로 무려 3달을 등록하게 되었다. 내가 여지껏 운동을 위해 지출한 금액 중 가장 큰 42만원이라는 거액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