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스눕피 May 09. 2020

'못 배운'이란 학력의 고하에 따라 정의되지 않는다.

자기 혼자 성숙하고 철들었다는 착각은 별로다.



아름다운 것에서
추한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은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타락한 사람이다.
이건 잘못이다.

아름다운 것에서
아름다운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은
교양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있다.

그들은 선택받은 사람들로
그들에게 아름다운 것들은
오롯이 아름다움만을 의미한다.

-오스카 와일드-




거저 보고 주워듣고 얼결에 배운 걸 자기의 지혜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 사람은 참 못 배운 티를 낸다'라고 말할 때의 '못 배운'이란 표현은 학력의 고하에 따라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단 한두 시간이라도 자기를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은 채 어쩌자고 주관의 세계만을 그다지도 철옹성처럼 둘러쌓아 올렸는가에 비례하여 정의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에리히 프롬 선생님이 '사랑'도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 세계가 결국 단독으로 사는 곳이 아니란 걸 다 같이 깨달은 이상 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각자의 존중을 취향하고 각자의 인정을 가치관하며 사는 법을 억지로라도 배워야 하지 않나 싶은 것이다.




하나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아는 친구나 형 또는 누나의 얘기라고 말문을 여는 건 사실 자기 얘기를 바꿔 말해 사후 책임을 회피하려는 하수들의 빤히 속 보이는 수작이라는 게 언어학계의 정설이지만, 내가 지금부터 말하려는 이야기는 진짜 내 친구의 이야기다.


이야기의 요는 친구가 다니는 회사에 친구보다 나이가 2살 많은 입사 동기가 한 명 있는데, 그 형이 사내 메신저로 틈만 나면 친구의 기운을 팍 죽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마음에 드는 소개팅 상대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친구에게 “그 여자는 보아하니 열등감이 많은 사람일 것 같다. 그런 여자는 거르는 게 좋다, 왜 그런 여자를 좋아하냐?”라며 시원하게 입을 털거나 유튜브를 시작하겠다고 카메라와 관련 장비를 구매한 친구에게 “요즘 직장인들은 능력은 없는데 돈은 쉽게 많이 벌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불쌍하다.”라고 시원하게 내지르며 돌려 까는 식이다. 마치 자기가 축구 선수 안정환 선생님이나 피노키오의 제페토 선생님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실을 말하자면 제페토 선생님은 돌려 까기보다는 돌려 깎는 분이지만.


자기 스스로 철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건 정말 위험한 생각처럼 여겨진다. 내가 웨이트 트레이닝에는 젬병이라 비유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철이란 건 평생을 두고 덤벨이나 바벨처럼 그 단계를 높여가며 반복하여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나도 중등학교 시절을 포함한 학창 시절엔 내가 또래에 비해 철이 꽤 든 되게 성숙한 인간이라고 착각했는데, 해당 착각을 기반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늘어놓은 여러 '개소리'들이 너무나 부끄러워 이따금씩 나를 괴롭게 하였다. 물론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애어른처럼 행동하는 게 그리 자랑할만한 일도 아니고 말이다.


친구의 입사 동기는 아마도 자기의 생각이 되게 괜찮고 심지어 적극적으로 참고할만한 의견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으나, 기본적으로 상대의 심정을 헤아리지 않고 막 던지는 말은 그것이 실상 인생사 정답에 가깝더라도 막돼먹은 아이디어에 불과하다고 본다.


나는 이야기를 펼쳐놓고 늘 여러 주제를 한 번에 다 말하려다가 말문이 꼬이는데, 아무튼 친구의 입사 동기가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도 생각보다 꽤 똑똑하고 철들었으며 내가 하는 생각을 비슷하게 다들 하고 산다'라는 평범한 사실만 알았더라도 저런 하나 마나 한 소리는 함부로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친구의 입사 동기에게 대놓고 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차피 이 글을 볼 일이 없을 것 같아서 여기에서 소심하게 한마디 더 거들자면,


"당신이 꽤 괜찮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까진 좋지만, 말하기에 앞서 상대의 심정을 헤아리는 자세부터 가지기를 주제넘지만 권해드립니다, 석사 학위를 가지고 계신 분이라길래 감히 까불기가 조심스럽지만요."



내가 여기서 뭐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오장춘이 말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널 잘 알아.
넌 현장에 강해.
여기 토익 성적 좋은 애들도 많은데
걔들은 다들 현장을 무서워해.
너처럼 필드를 직접 느끼는 감수성이 필요해.
오토바이 배송은 좋은 경험이 될 거야.

-김훈 <공터에서>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읽고 쓸 줄 모르는 할머니.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