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 성욕, 수면욕 그리고 인정의 욕구
사람들은 두 부류가 있다.
한 부류는 다른 사람의 장점이나 좋은 점, 잘하는 것들을 먼저 보고 인정해 주거나 칭찬해 주는 사람이고 또 한 부류는 남의 잘못이나 단점, 흠부터 들춰내서 지적하고 비판하는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남편은 후자에 속하는 것 같다.
그로 인해 가끔은 나와 아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상담을 하고 부모교육 강의를 하지만 나의 가정이 일 년 365일 행복하고 마냥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대략 360일쯤은 평화롭지만 어쩌다 한 두 번 의견 충돌이 있는 경우도 있다.
물론 대부분은 남편과 나의 의견 충돌이다.
우리 부부는 28년을 함께 살아왔지만 의견 차이로 말다툼을 할 때면 함께 한 햇수와 무관하게 아직도 조율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게 놀랍다.
'우리 부부는 일 년 365일 행복하고 즐거워요. 우리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싸워 본 적이 없어요.'
이런 말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을 수도 있다.
널리 알려진 예로 최수종과 하희라 부부, 그리고 션과 정혜영 부부가 대표적일 것이다.
그들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은 그렇게 사는 부부를 찾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최수종의 경우에는 많은 남편들의 공공의 적이자 지탄의 대상이다.
두 부부를 제외하고 부부싸움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인가 생각해 봐야 한다.
이는 부부 중 어느 한 사람이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내세우지 않고, 상대 배우자에게 일방적으로 맞춰주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고 나 역시 그에 동의한다.
그렇기에 그동안의 행동 패턴을 뒤돌아보고 어쩌면 부부관계를 재정립해 봐야 할지도 모른다.
줄다리기를 할 때 일방적으로 끌려가던 사람이 힘에 겨워 팽팽하던 줄을 놔버리면 힘껏 줄을 끌고 간 사람은 뒤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기 마련이다.
이처럼 부부관계도 한 사람의 양보와 희생으로 유지되는 관계는 그다지 건강한 관계가 아니고 오래 유지하기 힘들 수도 있다.
시소처럼 up & down이 있는 관계가 오히려 건강하고 동등한 부부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상담을 하는 전문가들은 직업의 특성상 내담자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고 내담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비교적 잘 파악을 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전문적인 지식이 있고, 무엇보다도 한 발짝 물러서서 내담자의 문제와 상황을 바라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렇다 해서 상담가가 내담자가 아닌 배우자의 마음도 잘 읽고 원하는 바를 척척 알아차려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줘 부부 싸움도 하지 않고 이혼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이혼을 하거나 혹은 배우자와의 관계가 원만치 않아 속을 끓이며 살기도 한다.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을 공부한 전문가인데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상담가도 본인의 문제에 있어서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한 발짝 물러서서 제3자의 눈으로 봤을 때는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보였다.
하지만 내 문제에 있어서는 당사자이다 보니 문제에 매몰돼 문제와 상황이 한 덩어리로 뒤엉켜 자신의 문제를 볼 수 없다.
같은 맥락으로 나라를 이끄는 위정자나 그들의 자녀가 부모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올바르게 행동을 할 것 같지만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모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부모님의 지위와 자신의 지위를 동일시하여 그 권력을 이용하고 막말을 하거나 악행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다.
또 타인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성직자나 그들의 자녀가 모두 도덕적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기사를 통해 접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의 특성상 그리고 타고난 기질과 성격상 겉과 속이 다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말과 행동을 같게 하려고 노력하고, 배운 것은 실천하고, 한번 뱉은 말은 지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나를 채찍질한다.
내가 배운 지식대로 행동을 하면 남편도 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노력과는 별개로 남편을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알고 보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오만방자한 생각인가.
갓 낳은 아이도 배가 고프면 배고프다고 울고, 기저귀가 축축하면 축축하다고 칭얼거린다.
세 살 먹은 아이도 자신이 좋아하는 장난감이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색의 옷을 입고 싶어 한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독립된 개체로써 각자의 목소리를 낸다.
하물며 자라온 환경과 문화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 형성이 된 성인으로 만난 배우자를 바꾼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아마 이 세상에 이혼하는 부부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했던 오만한 나에게 남편은 보란 듯이 빅엿을 날렸다.
그 사람 때문에 살고 싶지 않아요
상담실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인간관계에 있어 대개 상대방 때문에 괴롭고 힘들어하다가 결국 상담실 문을 두드린다. 그들이 호소하는 것은 한 가지다.
“그 사람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그 사람이 변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 말에 대해 나를 비롯한 상담사들의 말은 단호하다.
“상담소에 오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어요. 죽은 프로이트가 살아와도 절대 못 바꿔요”
맞는 말이다. 상담 장면에 오지 않은 사람을 무슨 수로 변화시킬 수가 있겠는가.
결국 상대방을 변하게 하려면 내가 먼저 변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빠르다.
상담심리와 청소년 상담을 복수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코칭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나에게는 심리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모르고 했던 지난날의 내 행동에 대해 반성도 하고, 입장 바꿔 생각하는 힘도 키우며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나름 노력을 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행동하고, 그러다 보면 아는 만큼 변하는 것이니까.
남편과 의견 충돌이 있을 때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며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하면서 풀어나갔다.
이 역시 심리학에서 배운 것을 현실에 적용하자는 나의 취지와 나의 배움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하는 남편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서로가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대부분의 문제들은 원만히 해결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 사안(부부싸움 I 참고)은 예전과는 좀 다르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방식의 대화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그동안 남편의 행동에 대해 참다가 결국은 폭발해버려서 일방적으로 나 혼자 쏘아붙이고 끝났기 때문이다.
풍선을 누르면 바람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 바람이 몰린다. 그것을 모르고 계속 누르면 어느 순간 터져버린다.
탱탱볼을 세게 누를수록 높게 튀어 오르는 것처럼 나의 이번 행동이 그랬던 것 같다.
남편은 상대방을 잘 인정하지 않는 단점이 있다. 이는 어쩌면 그 시절의 우리가 그랬듯이 먹고 사느라 바빠서 부모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아본 경험이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혹은 과밀학급에서 많은 학생들을 관리해야 하는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부분에 대해 배운 바가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 막내는 똑똑해.
그렇기 때문에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똑똑하다고 항상 인정을 받았기에 쥐뿔도 없으면서 자신감 뿜뿜인 나와는 다른 패턴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그런 단점을 커버해주고도 남을만한 장점이 많다.
또 남편의 입장에서 봤을 때 나에게도 단점이 있고 본인이 많이 참고 산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맞다. 분명 나에게도 내가 인지하고 있는 단점도 있고 인지하지 못하는 단점도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모두 장점과 단점, 강점과 약점, 남들보다 월등히 잘하는 것과 남들보다 조금 못하는 것을 동시에 갖고 있다.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고 사느냐에 따라 삶이 행복일 수도 있고 불행일 수도 있다.
어느 때는 배우자의 단점이 두드러져 보일 때가 있어서 그만 살고 싶은 마음이 왈칵 들다가도 그 고비를 넘기고 나면 단점을 충분히 덮고도 남을 만한 장점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부부들이 삐걱거리고 투닥거리면서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 가지가 맘에 안 든다고 당장 헤어진다면 세상에는 이혼한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할 것이다.
상대방의 사소한 단점이나 약점을 먼저 보게 되면 그것이 상대방의 장점이나 강점을 가리게 돼서 상대방이 정말 잘하는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맹과니처럼 보지 못한다.
말에는 강력한 힘이 있다.
아이들에게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마련이고 잘한다는 말을 다시 듣기 위해 노력을 하게 돼서 결국은 최고가 된다.
하지만 '못한다.', '틀렸다.', '잘못했다.'는 부정적인 말을 지속적으로 듣게 되면 잘하려는 마음이 위축되고, 또 비난을 받을까 봐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어 결국은 그 상태로 멈추거나 철회를 하게 된다.
'이는 어른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의 3대 본능적인 욕구는 식욕, 성욕, 수면욕이다. 거기에 인정의 욕구를 보태 4대 욕구라고도 한다.
인정의 욕구는 본능적인 욕구에 거론될 만큼 필수적인 욕구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특히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는 더더욱 인정을 받고 싶다.
밥상머리에서는 내가 조리한 음식이 맛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고, 공부할 때는 열심히 노력한다는 말을 듣고 싶고, 강의를 할 때는 정말 좋았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남편은 인정에 인색하다.
이번 부부싸움의 발단은 바로 거기에서 시작된 것 같다.
인정을 갈망하는 나와 인정에 인색한 남편의 대환장 파티!
내가 좀 심해서 그렇지 인정의 욕구는 4대 본능 욕구라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바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당연히 인정해주는 것이 좋다.
'그게 뭐가 어렵다고.'
또 인정과 함께 짝꿍처럼 붙어 다니는 것이 칭찬이다.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는 것이야말로 인간관계에 윤활유 역할을 한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에 대해 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습해야 한다.
그렇다면 인정하고 칭찬은 언제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우리 강아지 깜지는 우리가 시키는 행동을 한 뒤에는 칭찬이나 간식을 얻어먹기 위해 간절한 눈빛으로 우리와 눈을 맞추고 모터가 달린 듯 미친 듯이 짧은 꼬리를 흔든다.
그 간절한 눈을 보면 폭풍 칭찬과 함께 간식을 주지 않을 수가 없다.
바로, 지금이야
그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이 듣고 싶은 얘기가 있을 때는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당신과 눈을 맞추고 쳐다볼 때가 있을 것이다.
바로 그때이다.
상대방이 듣고 싶은 순간,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인정과 칭찬을 제대로, 제때에 하려면 먼저 눈부터 마주쳐야 한다. 그래야 적절한 타이밍을 알 수 있다.
"당신 멋진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
내가 남편으로부터 듣고 싶은 말은 이런 말이었나 보다.
그런데 정작 남편에게 들었던 말은
"이런 글은 많잖아. 이런 주제는 너무 흔하지 않아?"
라는 말을 들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이제는 가라앉은 줄 알았는데 다시 흙탕물을 휘휘 저어놓은 것처럼 마음이 뿌옇다.
'젠장, "좋아."라는 말을 하는 게 머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그다지 어렵지도, 힘들지도 않은 인정의 말 한마디.
인정과 칭찬을 위한 눈 맞춤,
이제부터라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당신은 눈을 맞추고 할 준비가 되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