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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 아티스트 Nov 11. 2024

나의 피아노 방랑기 6

사일런트 시스템 설치하다 

 밤에도 피아노를 치고 싶다! 


한동안 내 머릿속에 맴돌았던 문장이다. 밤에도 칠 수 있는 피아노라면 정말 열심히 연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야마하 업라이트 피아노가 있으면 뭐하나. 칠 수 있는 시간이 없는데. 급할 때야 어쩔 수 없이 약음 페달을 밟고 연습하긴 했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그럼 디지털 피아노를 한 대 따로 살까? 좋은 피아노가 이미 있는데 낭비 아닌가? 그럼 뭐해, 칠 수가 없는데? 디지털 피아노 전에도 사봤는데 별로였잖아? 디지털 피아노도 좋은 건 터치가 괜찮다잖아? 집에 무슨 피아노를 두 대나 둬. 자리나 있어? 

이렇게 혼자 몇 번이고 자문자답을 하며 골머리를 앓던 중에 사일런트 시스템이라는 게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사일런트 시스템을 피아노에 추가로 설치하면 낮에는 업라이트 피아노 그대로 사용하고, 밤에는 사일런트 시스템을 활용해서 헤드폰을 끼고 치면 된다는 것이었다.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는 이모는 음대 입시 준비하는 학생들 중에 집의 피아노에 사일런트 시스템을 단 경우가 있는데 쓸 만 하다더라, 했다. 


원리는 이렇다. 피아노 건반을 누른 힘이 해머에 전달되어 피아노 현을 때리면 소리가 나는데, 사일런트 시스템을 쓰면 해머가 피아노 현을 때리지 못하도록 하는 뮤트바를 설치해 소리가 나지 않게 한다. 대신 건반 밑에 센서를 설치해 건반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연주자가 어느 정도 강도로 쳤는지 판별해서 이를 소리로 출력한다. 이 소리는 어쿠스틱 피아노 소리와는 다른 디지털 음원이다. 헤드폰을 끼면 외부에 소리를 내보내지 않고 연습할 수 있다. 사일런트 시스템을 장착하면, 낮에는 일반 어쿠스틱 피아노로 쓰다가, 필요할 때만 레버를 조정해 사일런트 모드로, 그러니까 디지털 피아노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가장 유명한 한 업체의 사일런트 시스템을 집의 피아노에 시공하기로 했다. 비용은 괜찮은 디지털 피아노 한 대 사는 것보다는 저렴했지만, 적은 돈은 아니었다. 설치 기사가 와서 피아노를 모조리 분해해서 모든 건반에 센서를 부착했고, 뮤트바를 설치했다. 설치 시공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일런트 시스템을 처음 시공하고 밤에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된 날, 감개무량했다. 세상 참 좋아졌다 싶었다. 진작에 이렇게 할 걸 그랬다. 헤드폰을 끼고 밤에 연습하기 시작했다. 처음 생각한 것처럼 매일밤 연습하게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늦게 귀가해서도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간혹 늦게까지 술 마시는 약속이 있는 날, 귀가해서 한번씩 피아노를 두드려 볼 때 가장 만족감이 컸다. 별 이유 없이도 야밤에 기분 내고 싶을 때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야마하 업라이트에 사일런트 시스템까지 달았으니, 이제 정착할 때도 되었다 싶지만, 나의 피아노 방랑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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