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한국정치가 왜 이토록 난맥을 보이는지, 이 책은 뼈아프지만 정직한 지도를 내어준다.
부제는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 곧, 한국 민주주의의 출발점 자체가 보수적으로 형성되었고 그 구조적 보수성이 오늘의 위기로 이어졌다는 진단이다.
저자는 해방 이후 냉전이 한반도를 덮치면서 국가 주도의 권위주의적 발전경로가 굳어지고, 권력의 중앙집중과 관료국가 구조가 자리 잡았다고 본다. 이 흐름은 냉전 반공주의와 박정희식 발전모델로 이어져 권위주의적 산업화를 강화했다.
1987년 민주화로 우리는 절차적 틀을 확보했지만, 사회세력이 정당을 통해 정책결정에 안정적으로 포함되지 못한 채 ‘노동 없는 민주주의’가 굳어졌다.
그럼에도 국민은 기존 정치의 한계를 넘어 보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을 선택했다. 셋은 높은 기대 속에 출발해 낮은 지지율로 퇴장했다는 공통의 그림자를 남겼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전과 다른 개혁을 요구받았지만, 정당체계와 국가구조의 보수적 관성 앞에서 번번이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기대가 좌절되면 과거의 정서가 고개를 들고, 다시 보수적 리더십을 부른다.
오늘의 문제는 표정이 달라졌다. 막강 국가 한 손으로 몰아붙이던 시대는 저물었지만, 보수적 정치문화와 재벌중심 경제구조의 지속, 그리고 정당의 대표 기능 부재가 결합하며 민주주의를 왜곡한다. 언론의 영향도 이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핵심은 언제나 매개다. 사회(시민)와 국가를 이어줄 ‘정당’이 약하다—최장집이 수십 년 일관되게 두드린 문이다.
이 책의 결론부는 분명하다. 한국 민주주의의 기원은 보수적이며, 정당체계 또한 보수로 기운 구조다. 그 여파로 계급구조의 심화, 교육 격차, 지역 문제, 혐오정치, 냉전 반공주의의 잔영, 노동의 배제가 되풀이된다. 이를 풀 열쇠는 정당의 재설계다—사회세력(특히 노동·시민)의 이해를 프로그램과 후보, 정책교섭으로 옮겨 싣는 대표의 복원. 감동적인 슬로건이 아니라, 밋밋하지만 실제로 작동하는 정당정치의 기술을 회복하라는 요구다.
저자는 시민사회 개념을 끌어오며 말한다. 서구와 달리 한국은 국가가 먼저 거대한 몸집으로 서 있었고, 사회를 이루는 시민의 힘은 있었지만 그 힘이 정당을 통해 제도정치로 옮겨 타는 관념과 경로가 빈약했다. 그래서 운동으로서의 시민사회는 강했어도, 국가와 시민을 이어 주는 매개가 취약해졌다.
문제의 핵심은 여기다. 국가–시민사회의 정치적 매개로서 정당이 작동해야 하는데, 한국의 정당은 오랫동안 국가주도형, 위로부터의 조직으로 굳어지며 국가의 부속 장치처럼 기능해 왔다. 그렇기에 정당 문제가 곧 핵심이다
2025년의 시점에서 동의하지 않는 지점도 있다.
그럼에도 분석의 뿌리—보수적 기원, 정당의 취약, 대표의 실패—는 여전히 유효하다.